(4)장 닭

기회를 놓칠 리 없는 김 하사가 짧은 리치를 이용해 훅을 치려고

내 가슴 안쪽으로 깊이 파고 들어왔다.

빠르고 강한 주먹이 내 창자들을 등 쪽으로 콱 밀어왔다.

뱃속이 뒤틀리게 강한 주먹을 맞았지만 혼신의 힘을 다해 참으며

내 머리 한 뼘 아래쪽에 들어와 있는 김 하사에 턱을

팔꿈치를 직각으로 세워 짧지만 강하게 돌려 치며 힘차게 가격했다.

“뻑”하는 소리가 들렸다,

이겼다!

한데 아득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아찔함을 느끼며 나도 정신을 잃었다.

숨도 제대로 못 쉬고 배를 움켜쥐다 간신히 머리를 들고 허리를 폈다.

제대로 맞았는지 아직 김 하사는 일어서지 못하고 누운 채로 뻗어있다.

담배를 하나 물고 김 하사 옆에 풀썩 주저앉았다.

양키 놈들과 창녀들이 득실거리는 기지촌에서 살면서

어머님 속을 무던히도 썩이며 철없이 지낸 숱한 싸움판에서도

흔히 만나지 못한 싸움꾼을 군대에서 만났다.

조금만 더 세게 맞았으면 내가 저렇게 누워 있었을 것이다.

부 시 럭 거리며 김 하사가 몸을 일으켜 내 옆에 앉는 기척이 들렸다.

담배 한 개비를 뽑아 불을 붙여 김 하사에게 건넸다.

말없이 담배를 몇 모금 뿜어대더니 녀석이 나를 보고 씨익 웃었다.

“형님 뭐 하던 분이세요.

무슨 군인이 깡패보다 더 깡패 같아요.“

대뜸 듣는 형님 소리는 나를 파주 어두운 뒷골목으로 데려다 준다.

입대 후 처음 듣는 형님 소리지만 전혀 어색함이 느껴지지 않았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내 막내 동생 보다 더 귀엽게 보인다.

어깨를 툭툭 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선임 김 하사님이 먼저 가셔야지! 당나라 군대도 아닌데”

내가 웃자 김 하사가 뒷머리를 득득 긁으며 따라 웃었다

“에이 형님은,,,”

멋쩍게 김 하사가 웃으며 뒤를 따라 왔고 내무반에 돌아가 다시 시작한

술판은 당직사관 박 상사의 재촉이 오면서 겨우 끝이 났다.

조금만 그 자리가 길어졌다면 작은 체구에 어디로 그렇게 들어가는지

빨리듯이 막걸리와 소주를 빨아들이는 김 하사와에 대작을 이기지 못하고
나는 술잔을 든 채로 인사불성이 되어 옆으로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

깡통처럼 구겨진 형님의 쪽 팔린 체면을 끌어안고 말이다.

전날 밤 원주에 도착해 밤을 새우신 어머니는 동네가 다 아는

극성스러움을 여지없이 발휘해, 지구 끝에서 온분 마냥

새벽 댓바람부터 면회실 문이 열리지 않는다고 사단 정문 헌병들 을

콩 볶듯 들들볶아댔다.

사단 주번 총사령과의 면담에서 특별 명령까지 얻어내

전례가 없는 아침 8시에 외출을 할 수 있는 쾌거를 이뤄주신 덕분에

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머리는 무거웠다.

어둔 새벽 점호 때는 세심한 인사계의 눈을 피할 수 있었지만

나오기 전 내가 본 김 하사의 턱은 누구라도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 수 있도록 보기 흉하게 퉁퉁 부어있었다.

한시도 떠나지 않는 안경 넘어 매섭게 빛나는 인사계 박 상사의 눈동자는

종일토록 나를 괴롭히며 떠나지 않았다.

“내가 있는 부대는 한 번도 구타가 없는 명예로운 부대였다.

만약 그 명예를 더럽히고 먹칠을 하는 놈은

30년 군 경력으로 빛나는 본인에 명예를 걸고 결코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점호 때마다 반복 되는 인사계의 훈시 내용이다.

정말 빛이 나기는 하는 걸까?

퇴직을 1년도 남기지 않은 6.25전쟁의 산 증인으로

적진 속이던 구월산에서 유격대로 활약했던

켈로 부대 출신의 인사계는 다른 것은 대충 넘기기도 하지만,

퇴역 후에 받을 연금에 작은 지장이라도 주는 일이라면 그야말로

목숨을 걸었다.

구타 자체만으로도 큰일인데 더욱이 총애에 눈길이 가득 실려 있는

새끼 중사를 때린 일이 발각되면 상급자 폭행이라고 길길이 날뛸게

자명한 일이다.

몰라! 죽일 래면 죽여라 하는 배짱으로 미뤄두고 어머니와의

면회를 즐기고 돌아왔지만,

부대로 향하는 발길은 도살장 앞을 걷는 소처럼 발길이 무겁다.

들어가자마자 호출이 있을 꺼라 각오를 단단히 하고 들어온 부대는

이외로 평온했다.

아부 성 뇌물인 인사계가 제일 좋아하는 미제 과일 통조림 몇 개를

일부러 들고 귀대 신고를 마치긴 했지만 아직 밤은 지나지 않았다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빙긋 웃고 돌아서는 김 하사를 보니 위안은 되지만,

마음을 놓기에는 너무 이른 시각이다.

모든 군대내 구타의 역사는 점호가 끝난 한밤에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軍이라는 거대한 힘의 집단속에서 우리는 그 힘에 기대어

기생하던 작은 권력자들을 너무도 많이 만났다.

그들은 지휘관이라는 이름으로 때론 수단을 집행하는 완장에 부여된

갖가지 이름에 명령수행이라는 수단을 이용해 쥐꼬리만 한 권력을

수도 없이 양산하고 휘둘러 댔다.

스스로 절대자가 된 듯 착각한 어리석음과 오만에 칼을 휘두르던

꼬마 권력자들.

우리는 그들의 개인감정이 수반된 물심양면에 수탈과 착취를

軍의 이름을 앞세운 명령아래 무조건 허용해아만 했고,

복종을 강요당했으며 3년이란 굴레의 시간동안 무수히 많은

희생을 감수해야만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