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기나 게임은 그것이 종료 후 승패를 가르는 기준을 갖고 있다. 어떤 형태로든 계수(計數)하게 마련이다. 계수방법은 결국 그 경기나 게임의 규칙을 결정하는 기준이 된다.
이제 우리 고유의 순장바둑에 있어서 계가법을 소개한다. 현대 바둑과 달리 순장바둑의 계가방식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갖는다.
1. 상대의 사석은 불필요하다. 즉, 계수의 대상이 아니다.
2. 흑백간 최소한의 돌로 그 경계를 확정짓는다.
3. 경계에 필요한 돌을 제외한 나머지 돌들은 다 들어낸다. (역시 계수의 대상이 아니다)
4. 집을 계수하고 승패를 결정한다.
말로만 하면 얼핏 이해가 안될 수 있으므로 다음 그림을 보자.
장면도1
위의 장면도1에서 흑 집 안에 있는 백의 사석은 불필요하므로 제거 대상이다. 백 세점을 들어낸 그림은 다음과 같다.
장면도2 : 백 사석을 제거한 후 모습
위의 장면도2에서 이제 흑백간 경계를 확정짓는데 불필요한 돌들을 제거한다. △가 그 대상이다.
장면도3 : 집 안의 불필요한 돌들을 제거한 후 최소한의 돌로 경계를 확정한 모습
위 장면도3으로 흑의 집은 확정되었다. 흑집은 13집이다.
순장바둑의 계가법 요체는 <오로지 집(영토)만 계수한다>는 것이다. 상대방의 포획한 돌도 필요없고, 내 집에서 상호간 영토의 경계를 구분짓는데 쓰이지 아니한 돌들 역시 불필요하다.
다음과 같이 바둑이 종국되었다고 하자.
이 바둑을 현대의 방식으로 계가한다면, 흑 20집, 백 17집. 흑 반면 3집 승이다.
위 바둑에 순장바둑 계가법을 적용하며 다음과 같이 된다.
상대의 사석을 전부 제거하였고, 경계를 구분짓는데 필요없는 돌 역시 제거하였다. 흑은 21집, 백은 19집. 흑 반면 2집 승이다.
이제 순장바둑의 계가법에 대해서 이해하셨으리라 믿는다.
또 한가지 주의할 점은 공배도 집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종국시 공배를 메울 때에도 주의깊게 착수할 일이다. (중국식도 공배는 1집이 된다. 살아있는 돌이므로)
이 그림에서 △는 현대 바둑에서는 공배지만, 순장에서는 한 집으로 계수된다. 순장바둑 계가법으로는 다음과 같이 된다. (눈뜨고 한 집 도둑맞는 기분이 들 수도 있다.)
이상이 순장바둑에서의 계가법이다. 너무나 단순하지 않은가? 일본식은 사석을 상대방 집에다 메우고, 계가한다. 중국식은 집을 세고 난 후, 다시 살아있는 돌을 센다고 생난리다. 거기에 더해 집 수와 살아있는 돌 수를 합하고, 그 합을 180.5에서 뺀다(한마디로 정신 사납다). 그런데 우리 순장바둑의 계가법은 소박(素朴)하다.
바둑은 집을 다투는 게임이다. 집많은 쪽이 승리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오로지 집만 헤아려 승패를 가리는 것이 바둑의 본질에 부합하는 것 아닐까?
다음은 1995년 10월 6일 고 조남철九단(백) 대 이창호七단(흑)의 순장바둑 실전대국 결과다.
위 대국의 계가도는 다음과 같다.
결과는 흑 75집, 백 68집. 흑 7집 승이다.
다음 회에서 한중일 삼국의 계가법과 그 특징을 비교하려고 한다.
우리 문화의 아름다움은 무엇일까? 혹자는 삼국사기 백제 온조왕 15년조를 들먹이며 <검이불누(儉而不陋) 화이불치(華而不侈)>라 한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
이 여현은 그것을 소박(素朴)함이라고 표현한다. 인공적 가미가 없는 천연(天然)스러움 그 자체, 투박한 듯한 그 무엇.
순장바둑의 계가법에서 그 소박함을 느낀다.
(휴가 다녀오고, 다음 회 글 올리겠습니다. 여러분들도 즐거운 휴가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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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李靑
팔공선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