因緣 有感

추석이 지났는데도 뭉그적거리고 떠나지 않은 여름이

한 낮에는 더위를 훅훅 뿜어내며 계절 자리를 꽉 꿰차고

심통을 부리며 떠나지 않자 이제 가나 저제 가나

눈치만 보던 가을이 답답했는지 오늘 새벽엔

드센 비를 뿌리며 여름 떠나길 재촉 한다

아쉽겠지만 여름은 이 밤이 지나면 떠날 채비를 서둘러야 할 것 같다

계절이 자연 순환의 법칙을 따라 제 뜻과는 상관없이 오고 가야 하듯이

사람이 만나는 시절 인연도 때가 되어야 이루어지는 가 보다

한 글벗에게서 글보다 더 따듯하고 정겨운 만나자는 전화를 받으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마음으로 몇 번인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에 가고 싶어

마음도 발길도 들썩거렸지만 또 그냥 주저앉고 말았다

참 보고싶은 사람들이 모두 모인다는데 ,,,
공교롭게도 매형의 제일(祭日)과 겹쳐 다음 인연을 기다리기로 했다

부모형제 제사도 볼일 있으면 거르는 세상에 매형 제삿날을

늘 상 챙기다니 보니 때론 좀 별난 사람 취급을 받기도 한다

담을 이어 붙어있던 동네에 한집 건너 이웃 어머니 친구 분 집에

하숙을 들어 살던 매형을 처음 만났을 때 내 나이는 9살 이였다

그리고 어찌어찌 인연이 닿았는지 내 누님을 채어간 이웃 아저씨는

돌아가시는 날 까지 한번 도 처남 소리를 하지 않은 내 매형이 되었다

큰 애를 낳아 어거지로 아무개 아범이라고 불리기 전 까지

애 다루듯 처남 이름을 함부로 줄 창 불러대는 매형에게

처가를 우습게 봐서 그런다고 누님은 쓸데없는 다툼도 많이 해댔다

3살 아래 내 막내 동생도 애 아범이 되기 전 까지는 같은 대접을 받았지만

우리 형제는 처남 소리 한번 해주지 않던 매형을 참 좋아했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어른 노릇하려고 양보가 없던 팔씨름이며

맞수인 장기로 밤을 새우기도 하던 내 큰 형님 보다

두 살 위인 매형은 누님 아래 동생들에게는 큰 큰형 이였다

살아서도 처가일이라면 발 벗고 뛰어 다니던 양반이

자식도 더러 비우는 장인 장모 제사에 한 번 도 빠짐없이 개근을 하더니

돌아가서도 대전에 모신 두 분 따라 대전에 있는 현충원에 묻혀

지금도 처남들 발길을 놓치지 않으니 전생에 우린 형제가 분명 했던가 보다

아버지 계실 때는 한 달을 넘기지 않고 들락거리던 분들이

돌아가시고 나선 일 년에 몇 번 뵙기 힘드니 엄마 형제분이 맞느냐고

외 조카 딸들이 가끔 막내와 내게 투정을 부린다

얼추 알기들은 하겠지만 너희들이 어찌 속속들이 다 알 수 있겠니

50년 가까이 형제로 살아오며 파란만장 사연도 많이 남긴 우리들의 이야기를...

본인도 독자여서 처남들을 동생삼아 평생 곁에 두려고 애쓰더니

돌아가서도 독자인 아들 곁에 삼촌 노릇 잘해달라고 지금도 불러댄다

마누라에겐 늘 목에 힘만 주고 살던 무뚝뚝 경상도양반이라

처남들에게도 겉으로 살갑게 굴지는 못했어도 가슴은

아무 때나 기대면 편안하고 따듯했다

이즘엔 한 생각 일어나면 버리지 못하고 켜켜히 쌓인

세월의 부스러기가 꼬리를 물고 줄줄이 따라 온다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못 만나 섭섭했다는 말을 전한다는 것이

횡설수설 장황스럽기만 하다

밀려있는 인연 길을 지나야 새 인연 길로 들어설 수 있는걸까?

그래! 좋아하시던 술병 두어 개 차고 화투 한 목 들고 가
예전처럼 그렇게 문 따주시며 한하게 웃으시라고
나왔쏘! 하고 소리나  한번 크게 지르고
다음 만날  인연 길에 닿을 때 까지 잊고 기다리자

보고 싶다고 그립다고 어찌 다 만날 수야 있으랴마는

아쉬움은 가슴을 깊게 파고들어온다

인연 줄 닿으면 언젠간 꼭 만나게 되겠지

서로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