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우리는 중고등학교를 6년간 같이 다녔지, 아마 2년은 같은 반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를 한 것도 똑 같았지. 재수 시절에도 자주는 못 봤지만 그래도 간혹 얼굴을 보면서 외로움을 달래고 의기투합한 적도 있었지..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도 예쁜 여자아이를 소개해 준 것도 새삼 기억에 새롭다. 그 당시 얼마나 순진 했던지 직접 얼굴 맞대고 여자애한테 말을 못했지. 편지를 써서 너의 여친에게 몇 차례 그 편지 전달을 부탁했던 추억에 이르면 지금도 얼굴이 불그스래진다.

그러던 우리가 서로의 길을 달리하면서 만나던 횟수가 뜸해졌고 나는 후에 네가 학생운동에 들어갔고, 끌려가서 군대와 감옥중 택일하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군대를 택했고, 그리고 영 오랫동안 너를 보지 못했다.

서슬 퍼런 독재 정권에 맞서 대학시절 민주화 투쟁에 네 자신을 희생하는 동안, 나는 자질도 부족한 자신을 알아채지도 못하고 사법시험 한답시고 고시원에서 절에서 공부를 했었지. 민주화는 남의 나라 이야기이고.. 그렇다고 공부를 열심히 한 것도 아니고 시간 나면 여색잡기에 빠져서 귀중한 젊은 4년을 허비한 것을 생각하면 후회를 넘어 그리 부끄러울 수가 없다.

너를 포함한 많은 선배와 동료들의 값진 희생으로 차곡차곡 우리나라는 그토록 바라던 민주화를 이루어 갔지.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언제나 빚을 진 기분으로 산다.

너는 우여곡절 끝에 대학을 졸업한 후에는 노동운동에 뛰어 들었지. 참으로 이해를 하기 힘들었다. 너희 아버지는 너희 4남매를 대학 보내기 위해서 사우디에서 아프리카 우간다까지 10년 이상을 가족과 떨어져서 말로 못할 고생을 하면서 보냈는데, 그런 아버지의 눈물을 뒤로 하고 또다시 이번에는 노동운동에 뛰어들었다니 참말로 한심해 보였다.

정말로 배우지 못해서 자기의 권리와 인권을 찾아 주기 위해 힘없는 노동자들의 편에 섰다는 너의 말에 한편으론 공감을 하면서도 자신을 희생하면서까지 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인가라는 물음에는 내 선뜻 동의를 하지 못했다.

 명문대 중문과를 졸업한 네가, 당시 중국과 수교가 가까워 지고 대중국 무역이 엄청 활성화 되면서 그 계통의 졸업생들이 몸값이 금값이었는데 너는 학생운동을 했다는 이유로 서류전형에서 전부 탈락했었지…

결혼을 하고 애들이 생기면서 네 자신도 스스로의 기본적 경제활동의 필요성을 느꼈을 때는 이미 너무 늦어 버렸다는, 그래서 할 것이 그나마 할 수 있는 것이 학습지 가정교사였다는 세월이 오랜 후에 너를 만나 알게 된 나는 참으로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리고 또 10년이 넘게 흘렀다. 참 세월 빠르다. 중동고 다닐 적에 학교는 종로 1가에 있는데 광화문에 소재한 예원여중의 그 귀여운 애들을 볼려고 거기까지 어슬렁 어슬렁 걸어가면서 서로 시시컬렁한 농담이나 주고 받고 하면서 그 광화문 거리를 걷곤 했던 우리가 벌써 50 이다.

친구야!

오늘 유달리 네가 생각난다. 신문에 어느중공업 근로자 해고문제로 35m 고공 크레인에 올라 홀홀단신으로 6개월 넘게 투쟁하고 있다는 김진숙이라는 환갑이 가까웟을 법한 그 여자분의 인생역정과 거기에 얽힌 다른 노동자분들의 주검을 알게 되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고 착잡하고 갑자기 숨이 막히듯이 답답하면서 네가 무척 생각난다.

작년에 동네에 있는 어느 대형 유통업체가 매장 확장을 하는 와중에 불이 났단다. 금방 개장할 것 같이 하더구만 2달이 훨씬 지나 오픈을 다시 했다. 와이프와 같이 물건을 산 후에 계산대에서 그곳 캐시어에게 여쭈어 보았단다.

“3달 가까이 문을 닫은 동안 월급은 받으셨나요? “

“정규직은 70% 받았지만 비정규직은 한푼도 못 받았어여”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못 배우고 머리가 나빠서 남들처럼 좋은 학교 못갔고 그래서 겨우 얻은 직장도 임시직인 그들…  그 분들의 찌들린 일상과 힘에 부친 삶은 네가 더 잘 알겠지..

그들도 가정이 있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 딸이 있을 터인데 돈이 안 나오면 어디서 일용할 양식을 얻을까.. 애들이 중고등학교이면 때가 되면 나오는 육성회비도 아니고 그 뭣인가 하는 학교에서 분기별로 나오는 돈은 어떻게 낸단 말인가.. 하다못해 매월 나오는 급식비도 애들이 좀 많으면 부담이 되는 돈인데 그것은 어떻게 냈을꼬…

미국에도 비정규직이라는 것이 있다. 주재원 시절에 거래 미국은행의 비정규직원과 이야기를 나누어 본 적도 있다. 혹자는 선진국도 비정규직이 있는데 우리가 있는게 뭐 잘못된 것이냐고 한다. 

친구야!

난 경영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나 확실한 차이는 그들은 하루가 다르게 경쟁력을 상실하면서 소위 망하지 않기 위해 생존권 차원에서 비정규직을 둔다. 우리는 엄청 흑자를 내면서도 많은 수의 비정규직을 둔다. 소수의 사주 일가의 부를 채우기 위해 비정규직을 두는 것이라면 이는 다른 문제가 아니겠냐?

엊그제 일산의 대형마트에 근무하는 어느 여자분과 대화할 기회가 있었단다. 그분 말씀이 비정규직도 입사시에 계약을 하고 자유 의사에 의한 서명을 한 후에 들어 온 것인데 이제 와서 당사자들이 그 문제를 들고 나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 것 아니냐고 나에게 반문한다. 그 분 정규직이란다…

너도 알다시피 난 법학을 전공해서 당사자간의 자유의사에 의한 계약의 효력과 적법성 정도는 알고 있다. 허나 그 보다 앞서는 것이 보편적 정의와 인권 아니겠냐? 동네 골목까지 대형마트의 새끼마트가 들어와 동네 슈퍼를 융탄 폭격하듯 다 죽여 놓는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는 것을 보면서 너는 나보다 몇 십배 속앓이를 했을 것이다!

내가 알고 지내는 어떤 넘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적법하게 설립한 기업이 합법적으로 영업망을 확장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며, 대형자본이 소형자본을 경제적 우위에서 점하는 것이 무신 하자가 있냐고 지껄인다. 너라면 이 넘한데 뭐라고 할까?

난 그랬다. 같이 좀 먹고 살자. 자본주의도 좋고 경제논리도 맞지만, 그렇지 않냐.. 슈퍼를 하시는 분들은 힘없어 노가다도 못하고, 배운 것도 그리 많지 않아 변변한  직업도 못 구하고, 그렇다고 돈이나 많아서 요즘 그 많고 많은 프랜차이즈도 못하는 분들이 마지막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 

대형마트들이 적자가 나서 폐업을 눈 앞에 두고 있다면 모를까, 유능한 인재와 초대자본을 가지고 좀 더 크고 가치 있는 곳을 향해 나아가야지, 인생의 마지막에 하는 조그만 슈퍼까지 먹어 삼키면서 무슨 역사에 대단한 업적을 남기려는 것일까??

친구야!

난 우리나라 노동운동에 너처럼 무조건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 약자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항상 무조건적인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더더욱이 과격해지고 남의 직장까지 넘어가서 지원 사격하는 우리의 급진적 노동운동 구조에는 선뜻 동의를 하기가 어렵다. 좀 서운하겠지만 내 생각은 그렇다는 것이다.

그러나 사주의 비도덕적인 경영과 엄청 흑자를 내면서도 수 많은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행태는 용납하기 어렵다. 기업들이 그 동안 유신과 그 뒤를 잇는 군사 정권 그리고 소위 민주정부라는 시절로 넘어 와서도 얼마나 많은 혜택을 정부로부터 받고 지금의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냐?

나는 그것이 배가 아프고 잘못되었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단지 그들이 그 동안 혜택을 받았으니 이제는 사회를 위해서도 기여를 해야 하지 않겠냐는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취직이 되지 않는 수많은 젊은이들, 그들을 경쟁이라는 논리하에 방치해 두어야 옳은 것이냐?

매년 많은 흑자를 내면서도 우리의 노동문화의 경직성과 경쟁력 상실을 미명으로 생산공장을 해외로 해외로 세우는 작금의 추세는 다시 한번 고려해 봐야 한다고 본다. 자발적으로 안 된다면 국민의 대의 기관인 국회가 입법을 하고 정부가 앞장서 그 실행에 고삐를 쥐여야 한다고 본다.

친구야!

너도 알다시피 난 종교가 없다. 그렇지만 신은 있다고 믿는다. 서울시를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어느 정신 나간 목회자는 그렇게 해야만 천국에 간다고 믿겠지만 진정으로 신이 존재하신다면 자신에게 봉사하는 사람보다는, 어렵고 힘들면서도 바르게 살려는 사람들을 도와주고 같이 나누려는 그런 분들을 정말로 천국으로 인도할 것이다.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