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裸道)

2.상흔(傷痕)-<5>

그 어떤 감상성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더라도 니이타 요시꼬(新田愛子)라는 이성적 존재의 출현은,일본에서의 유학 생활방식이 뿌리채 뒤바뀌어지며 질적 변환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전환점이기도 하였습니다.집안 구석구석에 겹겹히 쌓여진 먼지들이 제일 먼저 퇴출을 당하고,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던 책이며 노트가 가지런히 정리정돈 되었으며,배가 고플 때마다 편의점에서 산 빵이나 김밥 컵라면으로 적당히 끼니를 때우던 식생활도 틈틈히 드나들던 요시꼬의 수고스러운 부지런함으로 인해서,즉 밑반찬 등을 미리미리 충분히 마련해 주었던 관계로 규칙성을 띄우게 되었습니다.그러나 눈에 보이는 이러한 변화보다도 터엉~비어져 있던 저의 내면 공간을 넘치도록 가득 채워주었다는 것이 지금 회상하여 보아도 정말 눈물겹도록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사실을 바로 말하자면 당시에 저는 매우 처치 곤란하고 고약스런 향수병(鄕愁病)에도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땅에 가서 좌충돌하고 우충돌하며 정신없이 분주한 생활에 매진하고는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나갈수록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문득 문득 뇌리를 스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었지요.그런 날에는 가슴이 묵지근해져서 가끔은 밤길조차 마다치 않고,자건거 페달을 헥헥헥~거리며 부지런히 밟아서,주류(酒類) 자동판매기에 쏜살같이 달려가서,일천씨이시짜리 캔맥주를 두세 개 사서,T시의 중심부를 가로지르며 유유히 흐르는 T천변(川邊)으로 나가고는 했었습니다.
그리고 우선 꿀꺼덕~꿀꺼덕~시원하게 맥주로 목을 축이고는 느닷없이 목청 껏,
아아~조국아~아~아~!!!
하고 고래고래 울부짓 듯이 외치다가 외치다가 외치다가 지치면 고개를 푹 수그리고,그리고 얼른 다시 고개를 들고,또 맥주를 꿀꺼덕~꿀꺼덕~마시고 이번에는 분위기를 조금 바꾸어서 애잔하고 처연한 목소리로,
아아~어머니임~~오오~아버니임~~
하고 부르다가 부르다가 부르다가 몸부림을 치는 모우션을 취하면서 허엉엉~허엉엉~울기도 참으로 숱하게 울었네요.

무엇보다도 외로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온 세상에서 홀로 떨어져 있는 듯한 <외롭다>는 느낌은 많은 군중 속에서 오히려 강렬해지기도 하고,연인과 손을 잡고 걸으면서도 때로는 느껴지는 아주 복잡 미묘한 것으로,<쓸쓸하다><적막하다><고독하다><울적하다><슬프다> 등과는 감성적 등질성이 있겠지만,이것이 한 번 가슴에서 소용돌이 치기 시작하니 겉잡을 수가 없더군요.정신 영역의 통증임에 틀림 없을 <외롭다>는 느낌이 이런 생각에 얽히고 저런 생각에도 얽히며 심화 발전되어 가면서 육체에도 실제적인 통증을 유발하더라니까요.무엇인가 바늘 같은 것들이 살갗을 콕코옥콕콕~찌르는 것도 같고,한 겨울의 밤거리를 헤메이 듯이 오한에 벌벌벌~떨기도 하고,정말 별로인 느낌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이러한 <외롭다>는 느낌은 단순히 감정의 문제만도 아니었습니다.실제로 당시 I대학의 우리나라 유학생은 오로지 저 혼자 뿐이었습니다.세월이 좀 흘러서는 우리나라의 몇몇 대학과 자매결연도 맺고 하여서 많은 학생들이 건너오게 됩니다만 제가 입학할 당시에는 중국과 동남아와 남북아메리카 대륙에서 건너온 학생들이 주류를 이루었습니다.환경적으로도 외로울 법한 상황이었지요.그런데 이것도 제가 워낙에 동선을 고정화시키는 성격이여서 그렇지 나중에 알고 보니 주위에 한국 사람도 의외로 많데요.ㅋㅋㅋ~.

어쨋거나 사람이 외롭다는 생각을 너무 심각하고 절실하게 하다보니 지독한 몸살 감기에 걸리게 되더군요.요시꼬와 저의 아파트에서 바둑을 둔 후로 2주일가량 지났을 무렵입니다.꼬로록~깨로록~하며 정신이 들었다 말았다할 정도로 열이 오르고 또 온 몸이 쑤시는 게 은근히 사람의 부아통을 돋구는 거 같데요.그래서 소주를 사다가 고춧가루 좀 듬뿍 넣어서 에잉~하고 꿀꺽~꿀꺽~마시고 잤습니다.그대로 혼수 상태에 빠지게 되었던 모양인지 눈을 뜨니 병원이데요.
사실 혼자임을 가장 뼈저리게 통감하고 절감하는 게 아침에 눈을 뜨고 일어날 때입니다.정체를 알 수 없는 서늘한 냉기가 가슴을 전신을 일시에 싸악~훑고 지나갑니다.오싹합니다.으휴우~.
그런데 눈을 뜨는데 그 날은 외롭다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더란 말이지요.
눈을 오른쪽으로 돌렸습니다.요시꼬가 환자용 침대 옆의 보조용 침대에 걸터 앉아서 저를 근심어린 눈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있더군요.속으로 좀 뜨악~하였지만 저도 방긋 웃지도 않았고,빙그레~빙그레~ 미소조차도 없이 가만히 마주 바라 보았습니다.당연하지만 그 순간 눈빛과 눈빛이 쨍그랑~쨍쨍~하고 맞부딪쳤습니다.요시꼬가 의외로 강자더군요.제가 좀 어찔했네요.
입원은 제가 조간판을 배달하던 쥬니치신문 판매소장님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더군요.소장님이 우선 좀 의아했던 모양입니다.내규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은 쉴 수가 있는데 그것마저도 반납하고 열심히 일하던 사람이 사전 예고도 없이 무단 결근을 하더란 말이지요.그래서 학교에도 연락하고 아파트 주인에게도 사정 이야기을 해서 문을 열고 들어와 보니 사람이 꼬로록~꼬로록~하고 있더라네요.바로 응급차를 불러서 입원시켰다더군요.그러고도 하루를 더 잤던 모양입니다.
그 소식을 접한 요시꼬가 머리카락과 눈섭을 휘날리며 맹렬하게 달려왔는지 어떤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만 줄곳 옆을 지키고 있었다더군요.배시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