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냥하세요.까꽁~!
하며 첫 상면한 이후로 묘하게도 요시꼬와는 매우 많은 동선(動線)이 겹쳐지기 시작했습니다.사실 처음에는 생기 발랄한 젊은 처자에게서 흔히 느낄 수 있는 귀엽다,이쁘다는 생각은 했었지만 뭐 그 이상으로 보는 순간부터 빠지직~찌리릿~하는 전율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나이도 아홉 살이나 차이 나고,생활적으로도 서로 간에 무척 분주하고 바쁘던 시기여서 이성에 눈길을 돌릴 만한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전생에 무슨 인연이 있었던지,아니면 개인의 능력 밖을 조율하는 신의 장난이었던지,그도 아니라면 대상에 대한 내면의 강렬한 끌림의 운명적 함성들이 무의식적으로 표출된 결과물의 하나였는지는 전혀 알 수가 없었습니다만,100년이 넘는 목조 건물로 지방문화재였던 본관에서,여러 강의동(講義棟)에서,게시판 앞에서,국제교류부 사무실이나 그 옆에 붙어 있던 유학생실 등에서,아무튼 자주 만나게 되더란 말이지요.
더우기 5월 중순 경에 대학내의 복지관이란 곳에서 개최하던 유학생들의 신입생 환영회 때는,제가 나이가 많아서 그랬는지,유학생별과에서 2명 뿐이었던 추천 케이스로 입학한 때문인지는 몰라도 학교측의 국제교류부로부터 선배들의 환영사에 이은 답사를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부터는 답사문 작성에 도움을 주겠다고 요시꼬가 자청을 해와서 더욱 빈번하게 얼굴을 맞대게 되었습니다.
진실을 토로하자면 저는 사실 답사문을 미리 작성해야 한다는 필요성이나 당위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어서 좀 망싯거리기도 하였습니다만,대학 고위층도 많이 참석할 뿐만 아니라 I대학이 소재하던 T시의 시장과 부시장도 참석한다고 법석을 떨며 넓게 열린 공간의 많은 청중 앞에서 갑자기 이야기를 하게되면 사람이 긴장을 해서 말을 더듬는 경우도 많고,제대로 말을 못하게 되므로 해야할 말들을 미리미리 준비하고,정성스럽고 이쁘게 다듬어서 부지런히 연습을 하는 것이 백 번도 천 번도  만만 번도 좋을 것이다,라고 젊디 젊은 아가씨가 수줍어하고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이,정말 얼굴마저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열성적 변을 토하는데야 별 수 있나요? 또 제가 타인이 애써 도와 주겠다는 것을 공연한 자긍심을 내세워서,아니? 왜에 이러세유우~?~? 이러지 마세유우~~! 하고 저어하는 그런 성격도 아니고,또 더군다나 대학 고위층이나  T시의 관계자들은 별과에 재학하던 시절부터 이미 여러 유학생 관련 모임에서 안냥허세유우~까꽁~!하며 뵈었던 분들로 제가 그렇게 겁나게 생각하는 경우도 별로 없었지만,뭐 대충 사교적인 측면도 많이 고려해서 그러쥬우~머어~꾸우벅~하고 받아 들였었지요.
그런 경로를 더듬으며 요시꼬와는 거의 매일,때로는 길게,때로는 짧게 얼굴을 맞대고 있게 되었습니다.그러니까 은근히 정다워지는 느낌도 들데요.
아무튼 그렇게 미리 준비하고 연습도 해보았던 때문인지,본래가 긴장을 잘 안하는 저의 성격 때문인지 또는 일본어 만큼은 깊숙히 고급의 영역까지 파보자는 작심으로 열심히 공부하였던 때문인지 실제로 답사를 하는데는 막힘도 거침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시꼬는 저의 답사중에는 안절부절하며 긴장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나도 확연히 들어나서,오히려 제가 좀 안타깝더군요.답사고 뭐고 다 팽개치고 얼른 요시꼬의 앞으로 달려가서 자신의 가슴을 꼬옥 감싸안고 있던 그녀의 두 손을 가만히 보듬어잡고,그리고 느닷없이 뽀뽀를~,아니? 아니 아니이~? 이건 아닙니다.뽀뽀를~까지는 아닙니다. 정말입니다.믿어 주십시요.그저 단순히 두 손만 가만히 잡아 주고싶다는 생각을 문득 강렬하게 하였을 따름입니다.사람이 말이지요,놓여 있는 처지가 처지이고,장소가 장소이고,상황이 상황인데 어디 그런 요상한 생각을 했을리가 있나요? 안타깝기는 하지만 눈물을 머금고 꾹 참고서 답사를 끝마쳤지요.
연단을 내려오며 흘낏 요시꼬를 바라 보았습니다.해사롭고 마알갛고도 또한 폭팔적인 웃음과 함께 오른손을 높이 번쩍 치켜올려서 힘차게 흔들더군요.그 순간 별안간에 요시꼬가 무척 사랑스럽다는 생각이 뇌리에서 가슴에서 번쩍하데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