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전철역에서 내렸을 때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 지고 있었습니다.

사무실까지는 걸어서 십분…뛰어 간다 해도 삼사분은 걸릴 터인데…

언제까지나 빗줄기만 세고 있을 수가 없을 테니 냅다 뛰기 시작 했습니다.

빗속으로 뛰어 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사정없이 젖어 들었습니다.

“ 이봐요,이봐요, 김훈씨잇…”

뒤쪽에서 누군가가 날 불렀습니다. 그녀 였습니다.

“ 왜 불러욧,”

나는 뜀뛰기를 멈추지 않을 기세로 돌아 다 보며 말했습니다.

“ 왜 부르다니욧, 그럼 이비를 몽땅 맞을 거예요? 얼른 우산속으로 들어와욧.”

나는 그 녀의 우산속으로 들어 갔습니다. 내 젖은 가슴에 그녀의 자그마한 어깨가 

따뜻하니 닿아 왔습니다.

“ 그렇게 대책없이 빗속을 달려 가다니…바보같이…”

나무라듯이 그녀는 나에게 눈을 흘기며 말했습니다.

# 2

부장님은 아마도 내가 기안해서 올린 계획서가 마음에 안들었나 봅니다.

아니면 댁에서 무슨 기분 나쁜 일이 있었던지…

내 계획서를 높이 들어 흔들어 대며 소리를 질러 댔습니다.

덤벼 들기를 포기하고 참기로 했습니다. 참기로 했더니 맘속으로부터 분노가 스물

스물 기어 올라 왔습니다. 그래도 참으니까 미칠 것만 같았습니다. 복도에 있는 자

판기에서 커피를 꺼내 마시며  맘을 가라 앉히려 했습니다.

조금 있자니 그녀가 나왔습니다.

“ 김훈씨 밥 먹으러 가요.”

그러나 나는 지금 이 판국에 점심 밥이 입으로 들어 가겠느냐는 무서운 표정을 지

어 보이며 눈을 흘겼습니다.

“ 부장님께 야단 좀 맞았다고 점심을 굶어요? 바보같이…”

그녀는 메롱~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더니 도망쳤습니다.

아직도 비가 내리고 있습니다.

# 3

퇴근시간

빗줄기는 약간 약해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치지 않고 있습니다.

이 정도라면 걸어도 되겠다 싶은 생각을 하며 민기적 대는데

누군가 내 옆에 서서 우산을 폈습니다. 그녀 였습니다.

그녀는 마치 전철역 까지는 씌워 줄 수 있다는 표정이었지만

나는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에 그녀에게 다가서는 것을 망서렸습니다

“ 에또… 남자들은 비오는 날이면 빈대떡이 땡긴다던데…

비 오는날 저녁, 나도 왠지 빈대떡이 땡기네… 사 주실래요? “

# 4

한끼 식사가 될 만큼 두툼하고 넓다란 녹두전 한 장과 소주 한 병을 시키고

그녀와 나는 마주 앉았습니다.

나는 소주 한잔을 손수 따라서 단 숨에 쭈욱 들이켰습니다.

속이 짜아~하니 뜨거워 왔습니다.

“ 크크, 술 한잔에 마음의 위안을 삼으려 하다니…바보같이 “

그녀는 젓가락으로 쪼갠  조그만 빈대떡 조각을 입에 넣으며

나에게 피식 웃어 댔습니다.

아마도 오전에 부장님의 한바탕을 상기하는 모양이었습니다.

나는 두번째 잔을 비우면서 그녀가 도대체 오늘 하루동안 나에게

바보같이>란 말을 몇번이나 했는가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정말이지 내가 바보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푸시시 웃었습니다.

# 5

두 번째 잔이 비자 그녀가 술병을 잡아 따르려 하였습니다.

나는 황급히 그녀의 손에서 술병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는 스스로 따른 술잔을 약간 들어 보이며 말했습니다.

“ 에또, 여자는 일생에 술잔을 세번만 따르거덩

 아버지한테 한번, 남편한테, 그리고 아들한테…딱 세번 “

“ 그런 심오한 속담이 있었어요?

그런데…아무래도 엉터리 속담 같다…”

우리는 빈대떡 접시와 술 한 병이 비워지자

자리에서 일어섰습니다.

마지막 술잔은 그녀가 따라 주었습니다.

# 6

샤워를 하고 자리에 누웠습니다.

그녀는 부유한 집안에서 자라서 그런지

어딘지 오만해 보이고 , 새침해 보이고, 까다로워 보이고…

어쩐지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 같았습니다.

다른 세상의 사람이니 나도 관심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나더러 자꾸만 바보 같다고 하다니

다른 세상 사람이 보면 나는 정말 바보같이 보이는 걸까?

사르르 잠이 옵니다.

꿈속에서 다시 한번 바보가 되어도 별로 기분 나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밖에서는 약하나마 아직도 비 내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