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알았다. 대국에 임할 때의 마음과 바둑이 끝난 후 일어서는 마음,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을. 왜 그럴까. 그토록 오랜 시간 바둑을 두어온 내가 왜 그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을까.

마음이란 것이 본래 머물지 않는 것이라 그런 건가. 그러고 보니, 바둑만이 아니다. 내 무엇을 하더라도 할 때의 그 마음이 잡히지 않는다. 묘수를 두고서 즐거워했던 것도 그냥 ‘즐거웠으리’ 정도만 그려진다.

그래서 확인한다. 문용직이 이 칼럼을 오늘로 끝맺고자 하는 것을 확인한다. 왜 끝내는가. 얼마 전부터 감정이 달아나고 지식이 무뎌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비늘이 떨어져 나가듯 꺼풀이 벗겨지듯 인식이 사라져간다. 당연히 글맛은 없어지고, 쓰기 또한 힘들다.

그래서 그 동안 읽어주신 독자에게 말씀 드린다. 감사! 9년 동안의 읽어주심에 감사! 부족한 글, 넉넉히 넘겨주심에 감사!

자, 그러나 바둑은 나의 일부. 나의 일부를 만든, 기억에 가장 오랜 바둑은 1970년 5월 대구에서의 대국이다. 나를 9점 접고 가르쳐주신 분은 작고하신 정창현 사범님. 10여 집 졌는데, 저 상변 흑20 흑22에 대해서 스스로 자부했던 기억이 있다. 하! 초등학교 6학년 꼬마가 감히 자부를? 하하.

그렇다. 나는 자부심이 강한 편이다. 그러나 스스로 거만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데, 이런 판단이야말로 사실 어리석은 자아를 드러낸다고 하겠다. 어쩌랴. 자신의 생각은 자신의 수중을 벗어난 것. 생각은 나와 따로 노는 것.

실로, 바둑을 둘 때는 자만심이 특히나 멋대로 논다. 대국 처음부터 끝까지 머리를 꼿꼿이 드는 것이다. 이겨보자! 그것이 자만. 아, 아까 그 수가 문제였구나. 한심하다 한심해. 패배를 확인했을 때의 자책은 자만심의 다른 얼굴.

벗어던질 수 있을까. 벗어던지는 마음은 바둑에서 찾을 수 있는 걸까. 바둑을 업으로 사는 내가 참으로 모르는 것 하나가 바로 이것이다. 그나마 바둑에서는 그 자만심을 확인하기 쉬우니, 그것이 우리가 바둑 두는 행위에서 얻을 수 있는 최고의 덕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