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프로 되려고 노력했었다. 10대 말 고교 3년을 바둑으로 보냈다. 책은, 구할 수 있는 것은 모두 다 구했다. 힘들었지만 밤도 새웠다. 즐거웠기에 집중할 수 있었으며, 그러기에 다시 또 밤을 밝혔다.

프로가 되니 제일 좋은 것은 아무도 바둑 두자고 청하지 않는 것이었다. 입단 전에는 누구나 한 판 두자고 해서 아주 곤욕을 치렀다. 잘 둔다는데 어디 한 번 두어봅시다. 이런 청을 한두 번 받은 것이 아니었다. 다행히 프로가 되니, 모두들 다른 세계임을 인정해주었다.

그러나 일단 경계에 들어서면 그 대가는 반드시 있는 법. 머릿속에 바둑이 떠올라 매우 힘들다는 게 요즘 느끼는 것. 한마디로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바둑 배울 때는 누구나 자리에 누우면 돌이 천장에서 오간다고 하는데, 나는 이제야 그런 현상을 몸으로 느낀다.

왜 이제야 강박을 느낄까. 바둑에 집중할 때는 그것이 기꺼워 흑백이 천장에서 오가든지 꿈에서 나타나든지, 그리 문제될 게 없다. 아니, 그런 현상은 오히려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 승부에서 멀어지고, 세상에 대해서도 약간 시큰둥해지니까 비로소 바둑이 나에게 하나의 경계가 되고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아는 것이 경계. 경계에의 인식은 자각의 출발.

기보는 얼마 전 꿈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 것. 상변 흑이 사는 것이 문제고 하변은 답. 흑3 다음 백A는 흑B 이하 흑F까지 산다. 흑3에 대해 백C는 흑A 백E 흑1 백3 흑a 백1 흑b까지 백이 되려 잡힌다.

저 정도야 어려운 거 아니지만, 문제는 잘 알려진 저런 맥점이 시도 때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일상이다. 이제 바둑은 내 주된 관심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래 전에 공부한 것이 현재의 의식을 헤집고 다니는 것이다.

그야말로 소외현상이라 할 만한데, 물론 모든 프로기사가 이런 현상을 겪는 것은 아니다. 승부에서 멀어진 프로기사가 겪는 힘든 점 하나가 이런 것일 뿐이다. 아마 우리의 노력, 꿈, … 그 모든 것의 종착점도 이와 큰 차이 없을 것이기에 돌아보는 프로, 그의 아픔 하나가 잡힐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