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의 관전 맛은 어디서 오는 걸까. 그것은 우리가 바둑을 어떻게 즐기는가를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대체로 우린 관전의 맛을 인상(印象)에서 얻는다. 그 첫째는 기능적 측면. “아, 저 수가 맥점이군요!” “아, 저 경우엔 한 수라도 수를 조이는 것이 보다 뒷맛이 좋지 않나?”

둘째는 반상의 형태로 잡는다. “멋지군. 저 전자(田字) 행마 말이야. 가벼운데!” “맘이 넉넉한데. 하변 흑 말야. 쌍립으로 이은 형태가 언뜻 보기엔 비효율적인 것 같지만, 실은 대단히 두텁군. 자세가 탄력 있어.”

그 맛은 시각과 기능에만 그치지 않는다. 적절한 추상은 다른 세상을 거울로 해서 반상을 청신하게 새겨준다. 비유는 그 대표적인 형식. 인생은 물론, 무협의 세계라든가 푸르른 대지의 기운까지도 비유의 대상으로 삼아 바둑의 맛을 이끌어낸다. 요컨대 다양한 표현력이 관전의 맛을 깊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해본다. “고졸(古拙)”이라는 표현, 쓰면 어떨까 하고. 예컨대 기보의 우하귀 흑의 수법에서 그런 인상 받지 않으신지? 고바야시가 둔 것인데, 나는 고졸한 수법이라는 인상을 받았었다. 그러나 같은 빈삼각이라도 상변의 흑9는 고졸한 기분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매우 예리한 수로 느껴진다.

같은 형태인데 어디에서 그 차이가 오는 걸까. 우하귀 흑의 착상은 머리를 세상 밖으로 내밀고자 해서 그런가. 상변 흑은 삶과 죽음에 급급해서 그런가. 기교는 없어도 소박한 맛을 즐기면 생사에도 점차 초연할 것이니….

그런데 말이다. 재밌는 것은 - 내 좁은 경험에서 - 수법이 고졸하다는 인상을 연륜이 있는 프로의 대국에서만 얻는다는 점이다. 10대나 20대 바둑에서는 못 느끼는데, 대국자의 나이가 선입견으로 작용해서 그런 걸까. 아니면 나이가 들면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넓어지고 세상에 대해서도 너그러워지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 걸까. 그럴 때 반상의 안목 또한 달라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일까.

인간 이해의 폭이 바둑에 반영되지 않는다고는 믿기 힘들다. 아니, 믿고 싶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반상도 마음의 반영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