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한 권 내려한다. 가제(假題)는 『상수의 하수 접기』. 나로서는 꽤 생각해둔 것으로, 오래 전에 사이버 오로에 연재했던 내용을 알기 쉽게 논리적으로 정리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친구 왈, “그거 팔리겠어? 하하. 상수(上手)가 책을 사 볼까. 하수(下手)야 실력을 늘리려고 책을 사지만.”

아마도 책을 사는 독자의 관점에서 보면 하수를 다루는 책에는 관심이 아니 갈 것이다. 하수와 두고픈 맘은 누구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맛을 약간 다셨는데…. 만약 그러하다면 어떤 출판사에서도 나의 책 출판을 기꺼워하지 않을 것이다.

자, 그런데 사람들은 진정 실력이 늘기를 원하는가? 아마 그럴 것이다. 그렇다면 바둑이 전개되는 논리를 제대로 알아야 하지 않을까?

바둑에서는 결국 전체를 내다보는 안목이 실력의 핵심이다. 그렇다면, 반상이란 어떤 것인가를 내다보는 데 있어서 상수가 하수를 어떻게 접어야 하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 하면, 상수가 하수를 다루는데 있어서는 정석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석을 정의하면, 주변의 조건이 아무 것도 없는 상태에서 얻어지는 쌍방 최선의 응접의 집합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접바둑은 이미 하수의 돌이 반상에 놓여있다. 즉, 주변의 조건이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리 된다. “정석이란 없다”는 것이 반상의 잠언이고 실제이니, 접바둑의 적응이야말로 “정석이란 없다”는 주제의 핵심을 다루는 훈련이 될 것이다.

기보는 1930년 슈사이 명인과 오청원(흑)의 석점 접바둑. 백1은 정석에 없는 수. 백11도 백13 모자도 반상을 넓게 이끄는 수. 백19 백21은 변화. 백의 태도가 자신만만하고 폭은 넓다. 주도적인 전략으로 넓어지는 반상이다. 천재 오청원을 접해서 반상 전체를 정석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반상의 논리에 대해서 알고 싶은가? 그러면 백이 접바둑 다루는 논리를 이해하도록 하라. 그래, 그러면 제목을 『정석이란 없다』로 할까. 부제(副題)는 “상수의 하수 접기”로 하고. 그래도 의문이다. 책이 과연 잘 팔릴까. 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