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I. 돌아보고 내다본다

글이 쌓인다. 한 달 반이 지났으니 흔적이 없지 않다.
이쯤에서 그 동안 대략 다루었던 것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1) 반상의 언어는 은유
2) 세모와 네모는 심층 언어
3) 바둑은 명상의 도구가 되기 힘든 속성을 갖고 있다
4) 세계관이 다르면 수법의 발전방향이 달라진다
5) 공간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관 아래에서 연역적 추론의 요구가 나타나기 쉽다
6) 천원지방(天圓地方)은 바둑을 표현하는 적절한 이미지가 아니다

충분한 설명이 되었을까. 문제의 제기 정도일까. 두서없는 글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까. 그럼에도 이제 보다 큰 희망을 갖는다.

1) 우리는 어떠한 방식으로 반상을 그리느냐? 반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노느냐?
반상 언어, 그 속성을 여러 가지 확인했으니, 이제 이 문제를 보다 잘 다룰 수 있게 되었다.

2) 바둑문화, 그 본질과 힘에 대해서 이제 보다 넓은 이해를 할 수 있다.
문화는 의식과 언어의 산물. 이제 언어에 대한 이해의 기초를 하나 마련했으니, 문화에 대한 이해도 넓어질 것이다. 바둑과 바둑계를 의도적으로 변화시킬 수 있는 안목 하나를 갖게 된 것이다.

3) 수법과 의식을 보다 잘 다룰 수 있는 희망을 갖는다.
의식과 반상은 언어로 연결된다는, 새삼스런 확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제인 “끊는 것의 내면화 - 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는 그 하나의 사례 - 수법과 의식의 관계에 대해 - 가 될 것이다. 물론 이 사례는 일반화될 수 있으리라 본다.

II. 끊는다, 그 무서운 신화

프로의 수준에 다다른 사람들은 반상에 자유자재할 수 있을까.
아마추어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그러하다고 하겠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프로들도 애초부터 자유자재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두 개의 길을 걸어야 했다.
하나는 공부와 연습을 통한 길.
다른 하나는 심리적으로 저항선을 넘어서는 길.

심리적 저항의 대표적인 사례가 끊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다.
프로들은 지금도 끊는 것에는 약간의 부담감을 남겨두고 있는 듯하다.
자신이 끊기는 것에도 두려움을 느끼지만 상대를 끊는 것도 어려워하는 것이다.

그들은 뚜렷이 기억한다.
프로의 실력이 되기 전에
한번은 거쳐야 했을 심리적인 저항선이 여럿 있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끊는 것에 대한 심리적 부담을 의식하고 그것을 넘어서는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빈3각에 대한 부담보다 훨씬 원초적인 것이었다.

약간 과장해서 말하면, 일종의 의례
예컨대, 성인식을 치르는 것과 비슷한 심리적 터널을 넘어서야 했던 것이다.

왜 그럴까.

설명1. 생존의 본능과 “끊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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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시인에게 있어 생존은 그 언제나 모든 행동의 제1준칙이었다.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어떤 포식자가 나타날지 몰라 항상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만 했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먹고 자는 것은 그 다음 문제였다.

만약 그 원시인의 그 생존에의 긴박감이 본능으로 우리에게 전달되어 있다면, 우린 반상에서 어떤 태도를 보일까. 반상은 아직 문명화된 언어로 충분히 정제되지 않은 세계. 우린 어떤 태도로 반상에서 세상을 대할까.

수비가 먼저일까, 공격이 먼저일까.

아마도 수비가 먼저일 것이다. 공격을 해서 수렵에 성공하는 것도 생존에 중요할 것이나,
강한 포식자나 적들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것이 더욱 급한 일이다. 
만약 이런 수비본능이 우리에게 남아있다면, 그것이 반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날 준비가 되어있다면, 우린 잇는 것을 선호할 것이다. 끊는 것을 선호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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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 만년에 걸쳐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 적어도 수만 년에 걸쳐 몸에 배인 습성. 그 본능을 논하지 않더라도 반상에서 자신이 강할 때 끊는 거야 쉽다. 그러나 서로가 비슷한 힘을 가졌을 때 - 자신이 약할 때는 물론이고 - 상대를 끊는 것은 어렵다. 공격은 생존까지 위협하고 위협당하는 것이 되기 쉽기 때문이다.

실로 그러하다. 우리의 경험도 우리가 끊는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낀다고 말한다.
실력이 뛰어난 프로들의 토로도 그 불안감을 숨기지 않는다.
“끊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프로는 잘 끊는다. 냉정하게 끊는다.
젖히기도 잘 한다.

젖힌다? 그건 끊길 것을 각오하고 두어지는 것이다.
잇는 것이 수비의 본능으로 인간에게 매우 절실한 본능에 가깝다면 프로들의 젖힘은, 그 중에서도 2단젖힘은, 실로 쉽지 않은 수법이다. 몸에 체득하기 어려운 수법이다.

      1도 (2단젖힘의 맥, 문제)

1도는 유명한 2단젖힘의 맥이 나온 대국. 흑2가 실수. 중앙 흑이 끊겨 승부가 끝났다. 그렇지만 과연 쉽지 않은 묘수로 문제로 주어지지 않았을 때 실전에서 발견하기는 만만찮을 것이다.

      2도(2단젖힘의 맥,답)

2도가 답이다. 백은 스스로 끊길 것을 각오하고 상대를 끊으려 나섰다. 대단한 묘수. 백3 이후 흑A는 백B에 이은 후 C와 D를 맞본다. 백3에 대해 흑C는 백D 흑A 백B.

      3도(흑9 젖힘이 새로운 실험)

뭔가 앞뒤의 논리가 아니 맞는다는 기분을 가질 것이다.
“끊는 것”이 인간의 본능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그런 어려운 수법이라고 주장한 다음에, 프로들은 그 끊는 것을 그렇게나 자유스럽게 하다니, 하고 말이다. 게다가 젖히기도 잘 하다니 말이다.

왜 그럴까.

III. 심리적 저항을 이겨내다

왜 그럴까.
하나의 변수를 중간에 넣으면 설명이 쉽게 된다.

프로들은 훈련을 한 것이다.
어떤 훈련?
심리적 저항을 이겨내는 공부를 한 것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그 과정은 두 단계로 나뉘어진다.

1) 수많은 기보를 접하고 실전으로 단련해서, 끊어야 바둑이 생동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 한 켠으로는 자신할 수 없는 불안감이 여전히 도사리고 있음을 알았다. 그것을 어떻게든 극복했다.

여기 글 쓰는 사람도 그런 심리적 경계를 겪었던 것이 기억난다. 끊는 것에 따르는 심리적 감정의 뭉치 같은 거. 보통 콤플렉스(complex)라고 부르는 그런 감정을 느끼곤 했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감정을 이겨내려고 의식에 그 문제를 확인시켰었다.

과연 가능했다. 쉽게 그 저항하는 감정을 인정할 수 있었고, 그 후 그 거부감은 많이 사라졌다. 끊는 것이 용이해졌다.

수많은 기보를 접해서 자연스럽게 넘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건 지나치게 고지식한 노력이 들어가는 것으로, 그다지 권하고 싶지 않다.
재삼 말하지만, 이번에 글 쓰면서 기사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들이 말했다.

“그런 심리적 저항이 있었다. 그것을 의식했다. 의식하는 노력이 필요했던 듯했다.”

권한다.
끊는 장면이 나오는 때에 자기 내면에서 솟아오르는 저항하는 감정을 인식하시라. 그런 다음 자신에게 속삭여주시라. “끊어야 바둑이래.” “끊어도 괜찮대.” “끊는 것이 반상을 풍요롭게 한 대.” 그리 말씀하시라. 그리고 가만히 기다리시라, 자신에게 들려주는 은밀한 대화는 급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천천히, 그리고 나직히 가슴에 대고 말씀하시라.

그 동안 프로들이 그토록 힘든 과정을 거쳐야만 얻을 수 있었던 심리적 저항의 경계선을 보다 쉽게 넘어설 수 있으리.

살아있는 바둑을 둘 수 있을 것이다.

IV. 끊는다, 반상의 생동 언어

그러하다.
끊어야 바둑이다. 끊어야 바둑은 산다.

그러나 끊는 것,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알려주는 사례는 적지 않다.
그것은 “끊는 것이 바둑”이라는 명인들의 조언과 감탄에서 잘 드러난다.
그럼에도 명인들도 어려워하고... .

1973년 임해봉과 이시다의 명인전 대국에서 오청원과 사까다가 이구동성으로 주장했다. 다음 4도를 두어야 살아있는 바둑이라고. 끊어야만 한다고. 바로 이런 자리는 끊어야만 바둑이라고.
 

      4도 (이 장면에서의 한 수 - 白先)

4도는 문제로 보여드린 것이다. 백이 둘 차례인데, 어떻게 두어야 할까.

      5도 (틀린 답 - 실전)

5도는 약하다. 백1 패착. 흑2로 지키니 반상에 어려운 곳이 없다. 흑이 편하다. 기백이 약하다고 질책 받은 그림이다. 참고로 하변에서 흑12를 눈여겨보시라. “속수(俗手)의 묘수”라고 할 만한 묘착이다.

      6도 (추천되는 답 - 끊어야 살아있는 바둑)

6도는 오청원이 주장한 그림. 사까다의 응답은 이랬다.
“나도 그것이 살아있는 바둑이라고 생각한다.”
표현 좋다. 생동하는 기운이 반상에서 뿜어져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는가보다.

“잇는 것을 생동하는 바둑이라고 하는 예는 들어본 적이 없다.”

명인들은 불안정하고 변화가 많은 그런 반상을 지향한다. 생동하는 바둑이란 것이, 그들에게는 물처럼 바람처럼 자재(自在)로 흘러가고 불리고 불려가는 그런 것인 듯하다. 의식 밑바닥에서 그리 인식하고 있는 듯이 여겨진다.

“예민하다”는 것은 미묘한 그 어떤 기운을 감지하는 것을 말할 터인데, 튼튼하게 이어져 있는 형태에서 그 어떤 미묘함을 감지하겠는가. 그런 곳은 그들이 놀 곳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그들은 그들이 놀 곳을 생득적으로 감지하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곳은 끊고 끊기는 곳이다. 자신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곳. 그 무서운 곳.

V. 은유에서 얻은 성과

심리적 저항, 그것은 반상에서 참으로 만만찮게 등장한다. 과거를 돌아볼 때 몇 번이나 수법의 저항이 있었던 것이 기억난다. 역시 인간적인, 그래서 인간의 본성에 따르는 문제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하다. “끊는 것”만이 우리의 내면을 힘들게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수법들이 그러하다. 그러나 생명과 불안은 서로가 놓칠 수 없는 끈으로 연결된 현상. 불안하더라도 그 불안감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삶의 원초적 조건. 그 원초적 조건을 부정해서야 생생한 삶을 똑바로 바라볼 수는 없으리.

다행히 우리는 우리의 본능에 자리 잡은 몸짓을 “어느 정도”는 통제할 수 있는 문을 열어젖혔다. 오늘날 널리 알려진 내면화가 바로 그 문으로, 굳이 그것이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는 것은 반상이 은유의 세계라는 사실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반상은 우리의 몸짓이 은유로 살아있는 세상이기에 우리는 내면화를 활용할 수 있는 것이다.

반상은 우리의 오래된 의식이 살아있는 곳. 그러므로 그 우리의 의식 밑바탕에 깔린 그 오래된 본능을 우리는 인식만 하면 어느 정도 통제가 가능한 것이다.

물론 본능이라고 해서 바람직하다거나 거부해야 한다거나, 그리 일률적으로 규정할 것은 아니겠다. 문명은 본능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럼에도 문명은 본능에 또한 기대고 있다. 본능과 문명은 2분법적으로 나뉘기에는 너무나 인간적인 요소들인 것이다.

VI. 천재들은 어떠한가

그렇지만!
천재들은 어떠한가.

천재라고 불리는 기사들은 그렇지 않을지 모르겠다.
오청원의 바둑도 그렇게나 격렬하며 조훈현 이세돌 역시 그러하다. 하긴 전투의 천재들이 심리적 저항 때문에 끊는 것을 못한 데서야 말이나 되겠는가. 이미 소년 시절에 변화에 능한 천재성을 보이고 있으니, 내면화 없이도 심리적 저항을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한 그들.

天才란, 본능에서 자유로운 거, 그 재능을 말함인가.

그러나 우리 凡才도 천재에 가까이 갈 수 있다.
이해를 통한 학습이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이론을 되새기면서... .
저항하는 수법을 가슴에 가만히 속삭이면서 받아들이는 그런 ... .

내면화.
그것이 우리에겐 있다.
마음이란 우리가 갖고 놀 수 있는 것이기에 내면화는 가능한 현실이다.
마음을 갖고 노는 것이다.
마음이란 갖가지. 그 중 하나를 갖고 논다고 해서 부담될 거 없다.

이 내면화는 어른들에게만 어울릴 것으로 생각될지 모르겠다. 어린 아이에 비해서 추상적인 개념을 갖고 놀 수 있는 힘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아이들도 부드러운 기억, 따듯한 가슴을 필요로 한다. 필요로 할 뿐만 아니라 충분히 내면에 받아들일 수 있다.

약간 더 부언하자.
우리는 생래적인 생득적(生得的)인 그 어떤 본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같은 이름으로 불리더라도 본능은 문명화 과정에서 동일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끊고 싶지 않은 충동, 그것은 바둑의 진보와 개인의 실력에 따라서 다르게 의식될 것이다. 모두에게 공통된 것이지도 않으며, 같은 무게도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이리 말해도 될 것이다.

끊는 것과 잇는 거, 동전의 양면이다.
그러므로 부족한 것을 내면화하도록 하라.
우리는 동일한 무게의 본능을 갖고 있지 않다. 스스로 힘든 것을 만나면, 심리적 저항이 엿보이는 그런 수법을 만나면, 그것을 내면화의 대상으로 삼도록 하자. 어루만져 넘어서도록 하자.

VII. 효율과 이해

바른 근거에 기초한 이해는 학습에 요긴하다. 이해 없는 학습은 맹목적인 반복에 불과한 것.

바둑에서 우리는 활기찬 생명력을 얻을 수 있다.
그것은 본능을 약간 억제하면 더욱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끊는 것.
“바둑은 끊는데 있다.”
“끊어야 살아있는 바둑이다.”

그러나 끊으면 대개의 경우 하나를 버려야 하는 입장에 선다. 그건 우리가 싫어하는 바.
버리는 것은 아깝고 끊어서 싸우는 것은 겁나는 것.

생존을 위해서는 잇는다. - 자칫하면 한심하게 된다. 잇는 것은 효율적이지 못한 때가 많기 때문이다.
공격을 위해서는 끊는다. - 두려운 일이다. 상대가 살아가면 - 공격에 실패하면 - 손실이 크다. 

그 어느 것이나 두려울 수 있다.
우린 문명화된 존재. 굳이 끊고 잇고 할 필요 없이도 잘 살아갈 수 있다. 공동체의 권고를 받아들이고 삶을 살아가면 굳이 모험 없이도 인생 편안할 수 있다. 문명의 뒤안에서 오는 불안과 위험은 문명을 받아들이는 경우보다는 작을 것이다. 그 이점은 충분히 근거가 있다. 반상이라고 다를까.

그러나 효율이라는 개념을 알면 끊는 것도 보다 쉽게 이해된다. 받아들이게 된다.

전투는 본능적인 것. 반상의 본질에 속한다.
그럼에도 전투는 - 끊는 것은 - 두려운 것.
다행히 전투를 통제할 수 있는 개념이 하나 만들어졌다.
효율. 본능을 다루고 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만든 개념의 하나가 효율이다.

17줄 바둑, 15줄 바둑을 생각하자.
그 세계에서는 전투가 효율을 앞서는 개념이 된다. 반상이 그렇게 꾸려진다. 필연적이다. 첫수부터 돌이 매우 근접해지기 때문이다. 여백은 비할 수 없이 제한된다. 그러나 19줄 하에서는 타협이 가능하다. 효율의 개념이 등장할 여지가 있다. 전투와 효율이 동등한 가치의 무게로 대치될 수 있다.

그러므로 알 수 있다.
19줄에서의 개념이 17줄, 15줄에서도 통한다고 할 수 없다.

하나 더 알 수 있다.
19줄 반상에서의 개념은 19줄 반상에서의 개념일 뿐이다.
적용과 확대 해석은 주의해야 한다.

수법의 결과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효율을 전제하면 끊고 잇는데 따르는 심리적 부담감 - 두려움 같은 거 - 을 상당히 완화할 수 있다.

그러하다.
그러므로 심리적 저항을 약화시키는 방법으로 우리는 두 개의 방식을 가질 수 있다.
첫째는 내면화.
둘째는 이해.

더욱이 이해는 통찰의 첫걸음이다.
통찰은 심리적인 변환을 말함이기에 내면화를 지향할 때 이해는 더욱 더 중요하다. 
이 역시 심리적인 조작을 통해서 울타리 하나를 걷어내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행하기 어려운, 반상에서 만나는, 피할 수 없는
강력한 지침 하나는 - 이는 이론적으로 강력한 명제이다 -
“수습을 하고프면 끊으라.”

끊는 것은 실로 다른 사람들이 잘 선택하지 않는 그 길을 가는 것과 같이 두려운 것. 끊는 것에 여전히 프로들도 심리적 암초를 느끼지만 그래서 어떠한 방식으로든 넘어섰지만 - 그리 스스로 판단하지만 - 그러나 프로들도 감탄한다. 서늘한 감탄. 천재들은 잘 끊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손쉽게 툭툭 끊어서 난관을 타개하는 것을 볼 때면... .

VIII. 반상 언어는 적성을 측정하는 기준이 될 수 있나

현실의 실제적인 문제를 하나 살펴보자.

내면화의 필요성 외에
수법과 의식을 다루는 오솔길에서 앞으로 기대되는 문제 해결 하나는,
반상의 언어가, 바둑을 두고 싶은 소년들의 적성을 파악하는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법과 의식을 가까운 관계로 이해한다면, 우린 바둑 두는 소년들의 적성테스트를 적절하게 다루게 될 수단을 얻게 된다고 할 수 있다. 기력만으로는 적성을 테스트하는데 아쉬움이 많은데, 그래서 보다 넓은 신뢰도를 얻는 방식이 필요한데, 그에 대한 하나의 대안은 언어에 대한 검사를 활용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반상언어에 대한 감각적 소양을 이 소년은 어느 정도 갖고 있는가?” 그것을 밝힘으로서 우리는 소년의 바둑에의 적성을 측정할 수 있다. 충분하지는 않을지라도 도움은 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어느 정도 현실적이고도 실제적인 검사가 될 것이냐 하는 것은 장담하지 못하겠다. 또 그 구체적 방법은 어떻게 얻을 수 있느냐, 하는 것도 극복해야 할 문제겠지만 적어도 보다 신뢰도를 높이는데 도움이 될 것임은 분명하다.

예를 들어 다음 기보를 보자.

      7도 (얼마나 불안을 느끼느냐 - 문제)

7도 흑1은 실수. 자충이 되어 백에게 수를 내주었다. 8도에 답을 두었다. 수순이 쉽지 않다.

      8도 (얼마나 불안을 느끼느냐 - 답)

7도에서 다리 꾸부린 자세가 연상되는, 그래서 그 관절 자리가 마음에 잡힌다는 그런 인상이 얼마나 보편적인 이미지인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그런 인상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대나무 마디가 무너지기 일보 직전의 이미지가 연상될 수도 있겠고. 
 
저 7도 흑 돌의 형태에서 불안감을 느끼는 - 불안감이라 표현하였지만, 불안감의 측정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민함이라는 개념이다 - 소년이야말로 재능이 있는 거 아닌가, 그리 말할 수 있다. 기력과의 상관관계를 도외시하면 아니 되겠지만, 적성을 측정할 때 반상의 언어에 대한 민감도를 확인하는 것은 매우 유력한 이론적 지향이자 근거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