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인은 의식적으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나

앞의 글을 이어서 한 걸음 더 걸어가 보겠다.

그 “의식적인 名人됨”을 여기서는 - 잠정적으로 주제를 더욱 좁히는 기분으로 - “가치관의 변화”라고 하자. 안목의 변화 즉 가치관의 변화가 따를 때에만 반상은 진정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기풍은 그 가치관을 잘 대변하는 단어.

예를 들면서 걷도록 하자. 기타니와 다께미야. 

조치훈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역사에 남을 바둑입니다. 다케미야를 빼놓고 현대의 바둑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다케미야에게도 방황이 있었다. 그러나 결단 끝에 오늘의 다케미야 바둑을 만들어내었다.”

‘좋아, 이것으로 간다’는 결단이 있어서,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에 걸쳐 다케미야류 - 이른바 우주류 - 가 만들어졌다. 이 우주류는 젊을 적의 그것과는 취향이 달라, 치훈이 높이 평가하는 것은 이른바 재생 후의 우주류이다. 이는 이전과 같이 대세력 일변도가 아니라, 다양한 가능성을 내포하여 유연함이 풍부해졌다.

그러나 조치훈 본인은 정작 아직도 방황 중으로 ‘이것으로 간다’는 승부의 모델을 갖고 있지 못하다. 그때마다, 상황에 따라 자유자재로 바둑을 만든다. 아마도 치훈은 일생 계속해서 ‘모델 없는 기사’일 것이다. 다케미야나 고바야시와 같이 모델을 가진 치훈의 모습은 우린 상상할 수도 없다. 다만 치훈에게도 다케미야와 고바야시에 대항하는 마음가짐은 있어서,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고백에도 드러나 있다. “우주류라고 해도, 결국 판은 좁다. 거기에는 다른 타법도 있을게 틀림없다. 나는 또 다른 재미있는 바둑을 보여주겠다.” 그 마음, 의지나 굳셈으로서, 그렇다면 치훈의 바둑은 ‘반우주류’라고 이름붙일 수 있으리라. 바둑판은 넓지는 않지만, 틈이 가득 비어 있다. (조치훈 걸작선 3, 無冠, 새로운 출발 pp. 106-7)

그럴 것이다. 프로는 - 대성하려면 - 결단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물론 그 결단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기타니(木谷).

1보 (木谷 저단 시절의 바둑)

기타니 저단 시절의 바둑인데 세력을 크게 펼치는 기타니다.

2보 (木谷 고단 시절의 바둑)

흑을 잡은 이가 기타니. 백은 사까다. 좌하귀 흑의 집이 - 이는 반상의 사실인데 - 작지 않다. 틈실하다.

기타니의 기풍에 현저한 변화가 있었던 것을 알겠다.
그런데 기풍은 바둑에 대한 이해가 변화했기에 변화되었겠지만, 기풍의 저변을 이루는 안목과 기풍을 실천하는 구체적인 수법을 나누어 고려할 때 과연 그 순서라는 것이 있는가. 정형화된 순서.

두 가지 가능성을 생각할 수 있다.

1) 반상에 대한 관념의 변화가 수법보다 먼저다
2) 수법의 습득 후 관념이 변한다

기타니와 다께미야는 1)에 속한다고 여겨진다.

“젊은 저단시절에는 누구나 싸움에 자신을 갖는다. 지금은 컴퓨터로 통하는 지구전에서는 대표급인 石田芳夫 9단도 4단 때까지는 대단히 역전형이었다. 나도 예외일 수 없었는데 정상의 선생들과 대결할 기회가 많게 되자 단순한 힘바둑만으로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뭔가 방법을 찾는다는 것이 바둑의 스타일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고 그것이 본국(3보)이다.”
 

3보 (우주류의 原点局: 1969년 제6회 프로10걸전 순위결정전)

그 이전에는 어떻게 두었나. 다음 4보처럼 두었다. 흑을 잡은 이가 다께미야. 3단 때의 대국이다.

4보 (다께미야 3단 시절)

우상귀 굳힘! 좌하귀 실리 선택!
다께미야의 바둑이라고 누가 짐작할 수 있을까.

그러나 누가 감히 자신의 바둑 그 반상의 구조를 바꿀 수 있을까.
성패를 알 수 없는 미래. 현재의 자신을 버리고 불확실한 미래의 자신을 누가 선택할 수 있을까.

“동문의 형인 가또오(加藤正夫)씨는 ‘전 타이틀을 독점하고 싶다’고 한 모양이지만, 나의 꿈은 좀더 커서 ‘지금보다 두점 더 느는 것’을 염원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누구나 상대가 안될 것이고, 딴청을 부리더라도 모든 타이틀은 저절로 수중에 들어올 것입니다. 농담이긴 하지만 진심도 들어 있습니다. 어차피 꿈인 바에는 큰 것이 좋겠지요. 어떻든 나의 바둑은 이제부터입니다. 훨씬 세어질 것입니다. 많이 지켜 봐 주시기 바랍니다.”

1986년에 쓴 것이니 28살 본인방 때의 이야기다. 욕심이 크면 바뀌어지는 걸까. 바뀌면 얻어지는 걸까.

강하다(세어진다)는 것은 모든 명인들의 열망인가.
강하다는 것은 모든 명인 모든 바둑의 절대적 기준인가.

오청원에 대해서 다까가와도 그런 희망으로 그리 평했다던가. “우리가 先으로 될까.” 그 말을 들은 후지사와 호사이(藤澤朋齊), “그리 강하다고 생각지 않소.” 그것이 오청원 - 후지사와 10번기 대결의 심지 역할 하나를 했다던가.

강하다는 것은 무엇인가.
어떻게 강해지는가. 강해지는 방법은 찾으려면 찾을 수 있는 것인가.
강해지기 위해서는 안목을 변화시키는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건가.

방법이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문제를 다루는 하나의 방법은 먼저 “기풍의 변화에서 명인은 스스로 어떤 역할을 하나.”를 규명하는 데에서 출발하는 것일 게다.

바둑을 둔다는 것이 상대 착점에 대한 논리적인, 그래서 기계적인 반응만은 아닐 것이다. 만약 그렇게 기계적인 반응으로 착점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다면 대국자에 대한 인간에 대한 의문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의문이 일어난다. 그것이야말로 존재가치를 인정할 수밖에 없는 조건의 하나.

우리가 바둑에의 능력을 의도적으로 바꾸고자 할 때, 이해하고자 할 때, 반상의 조감 능력(분석 능력, 이해 능력)이 명인의 발전을 규정할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 능력이 스스로 갖고 노는 그 세계 그 변화의 한계를 지울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반상의 언어, 그 본질을 아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적지 않기에, 아마도 인간의 내면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는 필요할 것이다.

돌아보면 명인들은 말했다. 그리고 말한다. 마음이 문제라고 흔히 말한다.
그러나 “마음”은 어려운 말. 대단히 모호한 말. 마음의 쓰임새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는 그런 이야기가 아니다. 너무나 문화적 색채가 강한, 그래서 모호한 선입견에 크게 휘둘리는 개념.

“마음으로 영향을 준다.” 그리 말하고 싶지만, 이 역시 너무나 무책임한 표현.

“왜 우리는 마음에 자유자재하지 못 하나?” 역시 어려운 이야기.

“대국자는 수법은 물론이고 안목의 확대에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마음을 조정할 수 있나?”

“마음은 어떤 방식으로 경계에 영향을 미치지?”
 
어디선가 들은 거 같은 말을 옮겨본다.

문득 안목의 열림이 올 때가 있다.
자기 자신이 보일 때가 있다.
반상과 대국자 자신이 객관화 될 때가 있다.
그 때 한 걸음 더 나아간다.

아닌가. 쌓이고 쌓여서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걸까.
글쎄다. 반드시 그렇게 점진적인 과정만이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다행히 이 문제에 희망을 던져주는 회고가 적지 않게 쌓여있다.
자신과의 싸움.
그것이 승부에 앞서 반상의 수법에 앞서 먼저, 라고 술회들 한다.

널리 알려진 오청원의 말씀.
거울의 비유.

“수단의 연구와 정신의 수양, 그것을 거울의 예로 비유하자면 수단의 연구는 거울 표면의 먼지를 닦는 작업이다. 매일 열심히 닦지 않으면 안된다. 그에 비해 정신의 수양은 거울을 밑바닥부터 깨끗이 하는 일이다. 바탕이 깨끗하지 않으면 표면을 아무리 닦아도 거울은 빛나지 않는다.”

그러하다. 거의 모든 명인들이 토로한다.
 
예컨대 제9기 명인전(1984년) 도전권을 얻었을 때, 大竹은 “이틀제의 바둑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며 바둑에의 도전이다. 이번 7번승부를 통하여 자신의 역량을 차분하게 관찰하고 싶다.”

“3연패 하고 자기의 약함을 알고 안심했다.”는 조치훈. 이후 4연승. 물론 이는 절망이라고 체념한 것과는 다르다. "있는 힘을 다 쏟았다는 충실감“과는 다른 것.

기풍의 변화이든 또는 다른 가치관의 혁변이든, 사실 많은 아마추어들도 가치관의 바뀜을 느끼곤 한다. 안목이 바뀌면 수법의 활용과 이해 역시 변화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아는 정도가 아니라 몸으로 깊이 느끼는 정도에 이르렀을 것이다.

그러한 변화를 어떻게 이끌어 갈 것인가. 가치관의 변화까지 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건 너무나 어려운 일.
어떻게 우리는 변화를 이끌어내고 자기 것으로 내면화 시키는가.
그것만 해도 벅찬 과제임이 틀림이 없다.

그래도 희망한다. 그 과제를 희망한다. 그 희망을 다음 (표1)로 요약하자.

(표1) 바둑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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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바둑의 경계, 그 내용은 무엇으로 이루어지는가.1) 반상
2) 대국자

b) 어떤 수단으로 이해할 수 있는가.
1) 반상의 言語, 그 경계를 다룸(이해)으로써
2) 대국자의 경계를 다룸으로써

c) a b의 결과로 우린 말할 수 있다.
1) 반상이란 무엇이냐
2) 대국자란 무엇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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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표1)에서처럼 a, b, c를 문제로 보고 풀어가면 될 것인가.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