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인생에서 마지막이 될 것 같은 이사를 했다.

랑과 나는 젊은 청춘 학생 부부처럼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처럼 이사를

했는데 그 과정이 참 재미있었다.

쇼파는 부도난 공장을 일부러 찾아가서 주문했는데

아직까지 그 물건을 받지 못했다.

15일정도 기다리면 된다고 했는데 그 15일이 지나간지가

무척 오래 되었다.

12자 장농을 놓고 장농 가장 자리 장식을 안하자니 참 이상했다.

그래서 장농 한짝을 드레스룸에 놓았다.

그렇다고 반품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랑과 나는 13자 반도 들어갔다는 언니의 말에 좀 더 신중을 기하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이사하게 될 나에게 주변 사람들은 이삿짐센타의 달인같은 말을

한마디씩 하였다.

빈집이고 가까우니 짐을 하나씩 싸서 옮기라고..그러면 견적이 적게

나온다고...

주방싱크대와 냉장고 물건도 미리 다 옮겨 놓으라고...그러면 짐싸는

주방아줌마 안오셔서 이사비용이 절감된다고...

이삿짐 물건을 최대한 적게 만드라고...그렇지 않으면 추가비용이

든다고...

옷도 부지런히 날라다가 장농속에 채워 놓으라고...

화분도 미리 옮겨 놓으라고...그렇지 않으면 화분 실어 나를 트럭 한대가

더 있어야 한다고...

옮길 수 있는 물건은 최대한 다 옮겨 놓으라고...

나는 위의 말을 그대로 다 실천하였다.

이사하는 사람으로서 절대적인 수칙인냥 모두 다 실행에 옮겼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발에 물집이 잡히고 살도 빠지고...이사하고나서 넉다운 되었다...

갑자기 집중호우로 내린 물이 역류하여 콸콸 솟아나는 것도 모르고

쿨쿨 잠을 잤다...ㅎㅎ

대한민국의 건축업 부실공사를 직접 겪고나니 붕붕 떠있었던

내 마음이 허탈해지기도 했다.

이삿날이 확정되고나서 가장 먼저 한 일이 장농 꼭대기에서 천장을

받치고 있는 솜이불 덩어리부터 내렸다.

7-8년동안 먼지를 뒤집어 쓴 솜이불 덩어리가 괴물처럼 보였다.

시골집 갔다 줘라는 랑의 말이 솜이불 덩어리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를 수 년...나는 들은 댓구도 않했다.

왜냐하면 그 솜이불 덩어리는 혼수이불이었기 때문이다.

연두색과 진분홍으로 만들어져 랑과 나의 단꿈에서 꽃이 되고

나비가 되고 꽃밭이 되고 선녀의 이불같은 모습으로 내 행복을 약속하는

 증표처럼 보여왔었기에...

그 솜이불 덩어리에 대한 애착이 한 때는 있었다.

세월따라 변한 내 마음은 그 이불을 별로로 취급하기 시작했고

2-3만원짜리 가벼운 이불과 친해지며 솜이불 덩어리를 멀리 해 왔다.

이사할 때마다 귀찮은 물건이 되었고 볼 때마다 타박을 하였다.

저런 솜이불을 왜 했는지 몰라, 돈이 참 아까워~~하면서 투털대는

아줌마 인생의 말을 황야의 무법자 말발굽소리처럼 하였다.

아무런 생각도 미련도 없다는 듯이 아파트 복도에 제일 먼저

보란듯이 내놓고 재활용품 수거하는 날이 되어도 외면하며

그 자리에 그냥 모셔 두었다.

솜이불 덩어리를 내놓은지 3주가 되었을 때 4호에 살고 있는 숙자씨와

커피를 마시며 솜이불 이야기를 하였다.

숙자씨는 솜이불을 잘라서 벼개 만들면 아주 좋다고 버리지 말고

벼개속 만들어 보라는 거였다.

얼씨구나 잘 됐구나!

솜이불아, 잠시만 기다려라~~

내가 너를 다시 다시 태어나게 해주마~아주 멋있게~흠흠

나는 잘라진 솜이불 조각이 들어갈 주머니를 만들기 시작했다.

사용하지 않는 흰색 큰 천을 네모나게 오려서 열심히 꼬맸다.

나는 그래도 바느질 솜씨가 있는 편이다.

어디 그뿐인가? 수예도 잘하는 편이고 뜨게질도 잘하였다.

그런데 안하던 바느질을 하니 바늘 잡은 손가락이 빨개졌다.

그날 저녁에 솜이불 덩어리를 끌어다가 거실중앙에 놓았다.

랑에게 말했다.

솜이불로 벼개 만들면 참 좋다네요.

이렇게 만들어서 벼개카바만 사면 될 것 같아요.

오래써서 냄새나는 벼게 다 버리고 새로 만들어야겠어요.

가위로 솜이불 좀 자르세요.

벼개속이 하나에 5-6천원은 하니 우리 돈 좀 벌어 봅시당!!

멋지게 자르세여~

그리고 이 자루속에 넣어 보세요.

당신은 선수이니 실력 발휘하여 잘 넣어 보세요.

알았써~~나야 당연히 선수지~

랑은 가위를 꾹꾹 누르며 솜이불을 자르기 시작했다.

솜이여 잘 잘라지지가 않는지 씩씩거렸다.

난 랑을 보며,

에게게!!....가위손이 고장났구나!...엿 사먹어야겠네!

솜이불 잘 못 짜르면 오늘 밥 없다~ 내일도 밥 없다~~

그리고, 이사갈 때 나 혼자만 간다~

알았어영. 마누라님~

랑은 있는 힘을 다해 솜이불을 자르기 시작했다.

잘라진 솜이불 조각을 만든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나서 솜이불 조각이 빠져나오지 않게 꼬맸다.

와아~~~

흰구름같은 벼개가 되었다.

랑과 나는 그 벼개를 베고 누워 보았다.

참 좋았다.

아이에게도 그 벼개를 베고 누워 보라고 하였다.

아이는 빙긋이 웃었다.

어때? 좋지? 좋지?

응...

그 다음 벼개를 또 만들었다.

흰구름 벼개 한쌍이 거실에 놓이니 집안이 훤하게 보였다.

랑의 손이 빨개졌다.

물집이 잡힐 듯 하였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났는데 손이 아파서 머리를 못감겠다고 하였다.

내 손가락도 마비가 된 듯 하였다.  내 손가락이 아닌 것처럼 되었다.

아침을 대충 먹고 랑은 출근하고 나는 봉사하는 사무실로 갔다.

사무실에서 벼개 이야기를 하였다.

랑이 손이 아파서 머리도 잘 감지 못했다고 하였다.

모두들 신기하다는 듯이 웃었다.

고생하지 말고 그냥 사라고 하였다.

헤헤^^...나는 재미있다고 하였다.

이사하기도 바쁜데 무슨 벼개를 만드냐고 하였다.

헤헤^^....날짜가 멀어서 하나도 바쁘지 않다고 하였다.

봉사를 마치고 만들다 남은 재료를 가지고 다시 바느질을 시작했다.

주머니가 완성되면 그 속에 솜이불 조각을 넣었다.

모두 다섯개를 만들었다. 신기한 물건처럼 보였다.

흰색이여서 눈부시게 빛나는 구름벼개였다.

나는 안방 장농 앞에다가 내가 만든 벼개 다섯개를 나란히 늘어 놓았다.

랑이 오면 자랑하며 나 어때? 솜씨 좋지? 으쓱으쓱 하려고.

집에 온 랑은 벼개를 보며 참 좋다며 흐뭇해했다.

벼개카바를 사라고 했다.

시장에서 가장 예쁜 벼개카바를 사서 씌우리라.

이사갈 때 가장 예쁜 물건이 되도록 하리라.

새집에 벼개도 새것이라 생각하니 잠이 잘 오지 않았다.

 2007년 7월 14일 토요일

바둑톡톡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