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사러 가는 밤
오늘도 컴퓨터 앞에서 밤을 샌다.
시간이 새벽 두어 시쯤에 이르면 출출해져 오는 뱃속을 달래기 위해 냉장고 문을
열어보나 마땅히 먹을 게 없다.
그러면 흔히 찾는 것이 라면이다.
참 이상한 것은 출출할 때면 의례 술 생각도 함께 간절해진다는 것이다.
밤새는 일이 잦다보니 한밤중에 음식을 먹거나 술을 마시는 일도 덩달아 많아진다.
이런 식 습관이 결코 좋을 리 없다는 것쯤이야 어찌 모르겠는가 만은 번번이 나는
그 독약 같은 유혹을 이기지 못한다.
나의 영원한 금고 책상서랍을 뒤져본다.
내 서랍은 동전이 가득하다. 쓰고 남은 잔돈을 항상 서랍에 넣어 놓는 까닭이다.
동전을 하나 둘 세면서 정확히 1100원을 들고 소주 한 병을 사러 밤길을 나섰다.
손으로 동전을 짤랑거리면서 집 아래에 있는 가게로 걸어갔다.
[짤랑~ 짤랑~~]
"헛"
[땡그랑~~ 또르르르르르~~~~~]
"헉 이런 띠그랄!!"
오로 기우 한 명이 생각난다.
까불거리면서 손으로 장난치다가 그만 동전 하나(백원)를 손에서 놓쳐 버린 것이다.
내리막길이라 동전이 한참 밑으로 굴러 가는데다 어두운 밤이라 찾을 것을 포기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백원을 더 챙겨 주머니에 넣고(또 잃어버릴까봐) 가게로 갔다.
헉~!!!
이런 또 띠그랄, 그새 가게는 주인아저씨가 셔터를 내리면서 영업 끝을 알려주었다.
아아~ 슬슬 짜증이 강물처럼 밀려오려 한다.
이대로 돌아가기엔 너무 아쉬워 다시 제법 멀리 있는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
편의점 거리는 약 오 백 미터, 아니 더 될지도 모른다.
터덜터덜 슬리퍼를 끌고 겨우 편의점에 도착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그러나 기쁨도 잠시,
"아저씨 소주 한 병 1250원 인데용!"
'허거거거걱~~'
속으로 무척 당황했다.
편의점 알바 학생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는데 갑자기 뒤통수에서
뜨끈한 것이 올라온다.
현재 내가 가지고 온 돈은 1100원....
왜 이 생각을 못했을까, 편의점은 비싸다는 것을....
그리고 왜 나는 바보같이 1100원만 들고 온 걸까.
아까 잠시 설명했듯이 우리 집은 조금 언덕배기다.
(동전을 떨어뜨리면 사정없이 굴러갈 정도로)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 집으로 돌아온 나,
이번에는 서랍의 동전을 몽땅(거금 오천원) 들고 다시 편의점으로 갔다.
그리고....
좀 전의 쪽팔림을 만회라도 하려는 듯이 동전을 모두 꺼내 보여주며 일일이 세어
소주 한 병 값 1250원을 치렀다. 돈 많다고 자랑하듯....
역시나 알바학생은 그런 나를 쳐다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자식, 지금 속으로 비웃는거야 그런거야!!'
장장 2키로(편의점 두번 왕복)에 걸친 한밤의 여정을 마침내 끝내고 집으로 돌아온
나는 가스렌지에 불을 붙이고 라면을 끓이기 시작했다.
[보골보골~~]
끓는 물에 면발이 꿈틀거리며 스프와 더불어 익어가면서 아름다운 냄새를 풍긴다.
아~! 그래 바로 이 냄새야~ 쩝~~
흐흐흐~! 면발아 기다려라! 그리고 소주 너도~~~
흐뭇하게 그 광경을 즐기며 상을 차렸다.
가만..행주를 깔아야지. 그리고 김치도... 참 소주잔도 가져다 놓아야 한다.
드디어 라면이 완성, 라면냄비를 행주 위에 살포시 내려놓고....
고생하며 사온 소주는 밥상의 우상귀에(이것이 최후의 패착인 줄도 모르고)...
주방에서 먹기엔 너무 깊은 밤이고 혼자라 상을 들고 작은방으로 가야한다.
바둑을 보면서 라면에 소주한잔이라....
캬... 이보다 좋을 순 없는거야
상을 가볍게 들고 작은 방의 문을 발로 살짝 열었다.
문을 조그맣게 열고 몸을 옆으로 돌려 방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철푸덕~! 쨍~~~]
으악~ 이게 웬일인가.
방문의 손잡이(돌출되어 있음)에 소주병이 딱 걸려 그만 바닥으로 추락을
하고 만 것이다.
불쌍하고 연약한 소주병은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자신의 몸을 수십 조각으로
분해하며 내용물을 거실바닥에 다 쏟아내고 말았던 것이었다.
오호 통재라~!
이렇게 슬픈 일이 또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어떻게 사온 소주인데....
그 조그만 소주병의 내용물이 그렇게 많은지는 그날 처음 알았다.
걸레를 들고 와 바닥을 닦고 걸레 빨고 다시 닦고 반복하기를 오 분여...
무정한 라면은 퉁퉁 불어터져 우동처럼 변해있었다.
눈물 젖은 라면을 먹으면서 백수의 밤은 깊어만 간다.
그녀도 이걸 보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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