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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편이 계속 나오나요? |
| 글쓴이 술래잡기7 조회 3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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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짜로 읽고 가기에는 너무 재미있어서 좀 미안한 마음이 드는군요...
계속 이어지는 후편이 있나요?
기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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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이 며칠 지나지 않은 어느 날,
> 온 세상을 태워버릴 듯한 폭염이 쏟아지고 있는데도 밭에 나가 일하고 있는 부모님께 새참을 갖다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마을입구 샘터에서 빨래하고 있던 순옥이년이 나를 부른다. 전에 없던 생글생글 웃음을 띈 얼굴로 샘터에 내려서는 나를 보더니 웃통을 벗어라 하였다. 등목 시켜주겠단다. 괜찮다며 쑥스러운 듯 머뭇거리는 나에게 바가지에 물을 가득 담아 손으로 나의 얼굴에다 뿌려대고는 깔깔거리며 재미있어한다. 이놈의 가시나가 요즘 들어 왜 이토록 나에게 살갑게 구는지 모르겠다. 날이 갑자기 더워져서 실성을 하지 않았나 싶다. 어제는 저의 텃밭에 있던 단 수수를 두 개씩이나 매어 가지고 와서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며 먹어 보라 하였다. 단맛이 듬뿍 들었다나 어쨌다나. 저년의 가슴속에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하여튼 요즘 들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사뭇 달라져 있음은 분명하였다. 전에는 툭하면 괴롭힐 궁리나 하던 못된 계집애였는데....
>
> " 점심 먹고 꼴 배러 가지 않을래?"
>
> 얼음장처럼 차가운 물을 등 짝에 사정없이 쏟아 부어놓고는 두 손으로 뿌득뿌득 요란하게 등짝을 문질러대며 묻는다. 연이은 순옥이년의 물바가지 질에 못 견디겠다는 듯 등허리를 이리저리 꿈틀대며 어디로 갈 거냐 물었다.
>
> "내 좋은 곳을 보아두었다. 붉은 재 너머에 풀들이 제법 많이 자랐더라"
>
> "뭐? 붉은 재까지?"
>
> "응, 왜?"
>
> "너무 멀다."
>
> 학교 가는 길의 반밖에 되지 않는 길인데 뭐가 멀다고 엄살이냐며 손으로 내 등을 철썩철썩
> 때리며 핀잔을 준다. 하지만 학교 가는 길은 책보만 등에 메면 되었지만 오늘은 좀 다르다.
> 가득 찬 꼴 망태를 짊어지고 와야 하기 때문이다. 무거운 꼴 망태를 짊어지고 오리길이 짱짱한 길을 걷는다는 것은 그리 호락호락 한일은 아니었다. 더구나 오늘처럼 푹푹 삶아대는 날씨임에야...나는 마뜩치 않다는 듯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순옥이년은
>
> "하여튼 점심 먹고 너의 집으로 갈 테니 기다려."
>
> 매사 이런 식이다. 언제나 결정은 제가 하고 나는 따라가는 식이었다. 정해진 공식처럼
> 일상화 되어있었다. 젠장! 퉁명스럽게 볼멘소리를 주워 던지고 돌아서려는데,
>
> "얘! 그곳에 가보니 황 첨지네 수박 탐스럽게 익었더라"
>
> 집으로 돌아와 허겁지겁 꽁보리밥으로 뱃가죽을 채우고 나니 나른한 하품이 몰려오며 며칠
> 전부터 헐기 시작한 오른쪽 입가상이를 사정없이 찢어놓는다. 눈에서 불이 번쩍 나며 소스
> 라칠 듯한 통증에 황급히 입가를 손등으로 쓸어보니 빨간 피가 묻어 나온다. 몇 번이고 배
> 어 나오는 피를 손등으로 닦아내며 내 스스로의 멍청함에 투덜거리며 한심해하였다. 그러는
> 동안 또다시 졸음이 몰려온다. 툇마루기둥에 등을 기대었다. 눈까풀이 점점 무거워진다. 스
> 르르 눈이 감기며 순옥이년의 가슴이 눈에 어른거린다. 언제부턴가 순옥이년의 양쪽 가슴
> 이 봉긋하게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른봄 수줍은 듯 살그머니 땅을 들이밀고 솟아오르는 노
> 란 새싹처럼..그것은 당시 나에게는 신비롭고 기이한 호기심의 대상이었다. 머릿속에서 스
> 멀스멀 안개가 피어오른다. 곧이어 순옥이년의 얼굴이 사라지더니 아스라한 꿈속나라로 빠
> 져들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
> "개똥아! 애, 개똥아."
>
> 몽롱한 꿈속 저편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고있다. 순옥 이다. 순옥이년이 내 어깨를 거세게 흔들어대며 나를 부르고 있다. 차마 눈이 떠지지 않는 내 얼굴을 찰싹찰싹 두들기고있다. 한참 단잠에 빠져있던 나는 손사래를 치며 마루바닥으로 들어 누워 버렸다. 개똥이는 내 어릴 적 아명이었다. 순옥이년은 내 이름을 부르지 않고 항상 별명을 불렀다. 난 개똥이라는 별명을 몹시 싫어했다. 하필이면 개똥이 뭐야. 제기랄... 하지만 순옥이년은 한번도 내 이름을 부르는 법이 없었다. 순옥이년의 성화에 할 수 없이 비몽사몽간에 눈을 비벼대며 일어나 꼴 망태를 찾아 어깨에 걸치고 사립문밖을 나서는데,
>
> "얘! 세수하고 정신 좀 차려라."
>
> 비틀거리는 내가 위태하게 보였는지 순옥이가 말한다.
> 별 쓸데없는 걱정을 한다는 듯 못마땅한 눈빛으로 흘깃 한번 쳐다보고는 일부러 당당하게 걸어 보였다. 하지만 비틀거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잠을 덜 잔 뒤끝이라 몹시 기분이 가라앉아 있었다. 한참동안을 순옥이 뒤에서 몽롱한 상태로 비틀거리며 따라가고 있었다.
>
> 순옥이가 노래를 부르며 앞장서서 걸어간다. 요즘 순옥이년은 엉덩이만 부쩍 커지는 듯 했다.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꽃밭에서>는 노래는 순옥이가 즐겨 부르는 노래다. 이 노래를 부를 때면 순옥이의 눈가에는 언제나 촉촉이 물기가 젖어들곤 하였다. 난 순옥이가 그 노래를 부르는 마음을 잘 아는 터라 노래가 끝날 때까지 조용히 기다려주곤 했었다. 순옥이는 노래를 잘 부른다. 목소리도 참 곱다. 몇 번을 들어도 애절하고 고운 목소리로 불러대는 노래 소리는 나의 가슴속으로 깊숙이 파고들었다.
>
> 순옥이는 이곳이 고향이 아니다. 그녀가 초등학교 일 학년 때 할아버지의 손목을 잡고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고향인 이곳으로 내려왔다. 서울에서 사업을 하는 부유한 부모님 밑에서 행복한 생활을 하였었는데 이곳에 오기 얼마 전부터 순옥이의 가족에게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 지기 시작하였다. 어느 날 갑자기 순옥이의 어머니가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어버린 것이다. 설상가상 아버지의 사업도 점차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마침내는 정리를 하게 되었다. 어쩔 수없이 순옥이는 할아버지의 손에 맞기여 졌고 아버지는 다른 여자와 재혼하였다. 아버지에 대한 배신감에 순옥이는 아버지와 마주치는 것을 한사코 피했다.
>
> 언젠가 아버지와 순옥이의 새 엄마가 할아버지에게 인사차 왔던 날, 순옥이는 집에 들어가지 않고 산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렸다. 다음 날 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날밤 순옥 이를 찾느라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었다. 꽁꽁 얼어있는 순옥이를 산 속에서 찾아온 그 일이 있은 뒤 순옥이의 아버지는 몇 년 동안이나 한번도 그녀를 찾아오지 않았다. 순옥이는 엄마 생각이 날 때면 가끔 이 노래를 부른다. 그 때 난 어쩌면 순옥이가 아버지를 보지 않으려 했던 것을 후회하고 있는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꽃밭에서> 노래 속에는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간절한 순옥이의 마음이 스며들어 있었다. 한참동안 노래를 부르며 앞장서가던 순옥이가 눈가를 쓱 훔치고나서 나를 돌아보더니 씩 웃는다.
>
> "?"
>
>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하고 있는데 손가락으로 저쪽을 가리키며 또 다시 씩 웃는다.
>
> "응, 뭘..?"
>
> "바보.. 저길 봐"
>
> 아! 그때서야 난 순옥이가 뭘 가리키는지 알았다. 우리는 어느새 황 첨지네 수박밭에 와있었다. 두말 가웃 지기는 실히 되어 보이는 널 다란 밭에 크고 탐스런 수박들이 여기저기 주렁주렁 열려있었다. 군데군데 가끔은 샛노란 참외도 보였다.
>
> "들키면 어떻게 하려 구?"
>
> "흥! 겁쟁이. 날 따라와."
>
> 엉덩이를 흔들어대며 앞장서서 걷는다. 황 첨지네 수박밭을 휘 끼고 돌아 저쪽 산등성이 너머로 갔다. 꼴 망태와 낫을 풀밭에 숨겨두고 황 첨지네 수박밭 한 가운데 있는 원두막이 보이지 않는 밭 가장자리를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나는 긴장한 탓인지 얼굴이 하얗게 굳어 있었다. 순옥이년이 바짝 줄어든 나를 돌아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
> "바보! 겁쟁이.."
>
> 놀리며 킬킬거린다. 순옥이 년은 참 겁도 없다. 창피했다. 그래도 사내 대장부인데 내 스스로가 한심하였다. 한심한 마음에 애꿎은 소나무 뿌리를 걷어찼다. 거세게 있는 힘껏 걷어 차버렸다.
>
> "윽!"
>
> 발가락을 감싸쥐며 낮은 신음소리가 나의 입가에서 흘러나온다.
>
> "푸훗!"
>
> 순옥이년이 입을 가리며 재미있다는 듯 키들키들 웃는다.
> 젠장! 머쓱한 마음에 수박밭으로 먼저 들어가 가장 큰 것을 잡아들었다.
>
> "얘"
>
> 속삭이듯 낮은 소리로 순옥이가 부른다
> .
> "?"
>
> "그건 설익었다."
>
> "뭐?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
> "난 안다. 그 옆에 걸로 따."
>
> "하지만 이게 훨씬 큰데..."
>
> 말꼬리를 흐리면서 꼭지를 똑! 따 버렸다.
>
> "바보!"
>
> 눈을 흘기면서 밭으로 들어오더니 바로 옆에 있는 조금 적은 수박을 따들더니
>
> "이건 내가 먹을 거야."
>
> 순옥이가 옳았다. 내가 딴 수박은 선분홍색을 띠며 비릿한 맛이 났다. 하지만 순옥이년의 수박은 낫을 갖다대자마자 쩍! 하는 소리가 나며 갈라지는데 빨갛게 드러낸 속살에는 서릿발이 하얗게 서려있었다.
>
> "참 맛있다!"
>
> 먹어보라며 한 조각 내밀었다. 난 못들은 척 한 입 가득 내가 딴 수박을 베어 물고 맛있다는 듯 어석어석 씹어댔다. 순옥이년이 피식 웃는다. 옅은 우유 빛 하늘에는 솜털처럼 몽실몽실 탐스러운 뭉게구름이 여러 가지 동물의 모양을 만들었다가 다시 지우며 흐르는 듯 마는 듯 조용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
> "소나기 올 것 같지?"
>
> 조금 떨어진 곳에서 열심히 꼴을 베던 순옥이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묻는다.
>
> "글쎄.."
>
> 저 멀리 남서쪽에서 커다란 먹장구름 한 조각이 우리를 향해서 다가온다.
> 아직은 멀리 떨어져 있으나 이따금 섬광이 번쩍거리고 약하게나마 천둥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곳을 지나갈 것이다. 구름조각의 크기와 색깔로 보아 심상치 않다.
>
> "아무래도 수상하다. 준비를 해야되겠어.."
>
> "어떻게?"
>
> "저쪽 우산처럼 생긴 소나무 보이지? 그 소나무를 우산으로 만들자."
>
> 말을 마치고 숲으로 들어가 다른 소나무의 줄기를 잘라서 그 소나무 위에 갖다 얹기 시작하였다. 우리는 열심히 작업을 하여 제법 아늑하고 그럴싸한 원두막 비슷한 것을 만들어냈다.
> 그 나무 밑에 앉으면 웬만한 소나기쯤은 피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 "이리 와서 앉아."
>
> 이곳 저곳에서 낙옆을 끌어 모아 나무 밑에다 깔아놓고 그 위에 쪼그려 앉더니 옆을 가리키며 순옥이년이 나를 부른다.
>
> "으..응"
>
> 망설였다. 왠지 망설여졌다.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었는데 요즈음은 어쩐 일인지 순옥이년을 대하기가 조금은 부자연스럽다. 특별히 그럴만한 이유는 없는데.. 아마 잘은 모르겠지만 순옥이년의 가슴이 부풀어오르면서부터 일게다. 예전에는 순옥이년의 손을 잡아도 아무렇지 않았었다. 하지만 요즈음은 어쩌다 순옥이년이 손을 잡아올라치면 슬그머니 손을 잡아 빼버리곤 하였다. 후드득.. 빗방울이 든다. 툭! 툭! 떨어지는 빗방울은 조금 과장하면 어린아이 주먹만하다. 갑자기 주위가 스산해지며 거센 바람이 소나무를 마구 흔들어댄다. 수박밭의 수박 잎들이 모두 한쪽 방향으로 뒤집어져 처음의 색깔과는 또 다른 색깔을 만들어 놓는다.
> 우르릉! 쾅! 고막을 찢을 듯한 천둥소리에 공포감이 엄습한다.
>
> "뭐 하는 거야?"
>
> 순옥이가 다그쳤다.
>
> "알았어!"
>
> 못이기는 척 순옥의 옆에가 앉는다.
>
> "많이 올 것 같지?"
>
> "글쎄..."
>
>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금방 엄청나게 뿌려댈것 같던 소나기는 호들갑스러운 변죽만 울린 채 다른 곳으로 비켜 가버렸다.
>
> "야! 이 멍청한 소나기야. 그쪽으로 가면 어떻게 해."
>
> 순옥은 멀어져 가는 구름을 향해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삿대질을 해댄다. -쳇! 바보 같은 소나기 같으니 시원하게 한줄기 뿌려줄 것이지 괜 시리 댑다 겁만 주고 꼬리 잘린 도마뱀처럼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을게 뭐람.- 한참동안 고함을 지르다 돌아오며 투덜거린다. 나도 여태껏 공들여 만들어 놓은 소나무 우산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토록 열심히 공을 들여 만들어 놓았었는데....써먹어 보지도 못하고 어쩐지 손해 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전에 먹은 수박이 드디어 오줌보로 내려 왔는지 아랫배가 팽팽하게 부풀어올라 있다. 옥수수 밭으로 들어갔다. -어디 가는 거야?- 하는 순옥이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허리 괘 춤을 풀어놓는다. 한동안 시원하게 쏟아내고 나니 몸서리 쳐질 듯 짜릿한 쾌감이 몰려온다. 부르르 몸을 떨어대며 바지춤을 추스리며 옥수수 밭을 나오는데 순옥이년이,
>
> "얘! 네 고추 이만하니?"
>
> 언제 따왔는지 뒷 춤에서 커다란 고추를 꺼내들고 흔들어 보이며 헤실헤실 헤픈 웃음을 흘린다.
>
> "못된 가시나..!"
>
>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외치고는 얼굴을 붉혔다. 순옥이년의 얼굴도 홍조를 띠고 있었다. 아마 저녁노을 탓이었는지 모른다. 도대체 부끄럼하고는 어울리지 않는 계집 아이였다. 오늘 따라 발그스레 홍조 띈 순옥이의 얼굴이 몹시 아름답다고 생각하였다.
> 어느덧 서쪽 하늘에는 태양이 붉게 타오르고 있다. 소나기의 뒤끝에서 낙오된 구름들이 태양으로부터 쏟아지는 붉은 물감으로 점점 짙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 하루 일과를 마친 고추잠자리들이 안식처를 찾아 이리저리 노을 속을 어지럽게 날아다녔다.
> 어느덧 나의 꼴 망태는 가득 차 있었다. 꾸역꾸역 밟아서 얼마나 쑤셔 넣었던지 망태의 새끼줄이 끊어질 것만 같다. 순옥이의 꼴 망태 역시 가득 차 있다.
>
> "갈까?"
>
> 순옥이를 쳐다보았다. 그러나 고개를 흔든다.
>
> "?"
> 의아해 하는 나를 보고
>
> "너 저기 보이는 초분 구경가지 않을래?"
>
> "초분?"
>
> "응"
>
> "미쳤니! 거길 왜가?"
>
> "궁금하잖아."
>
> "너 초분 안에 뭐가 있는지 알아?"
>
> "시체."
>
> "그런데도 거길 가? 냄새도 고약 할텐데..."
>
> "그래도 가보자"
>
> "안가! 너 혼자가"
>
> "같이 가자"
>
> "안 돼! 절대 안가"
>
> "흥!"
>
> 코방귀를 뀌어대더니 눈 꼬리를 샐쭉하니 들어 쳐다보고는 홱 뒤돌아서 초분을 향해 걷는다. 너 혼자 가든 말든 맘대로 하라는 식이다.
>
> "어휴! 저 가시나"
>
> 한참동안을 망설이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터벅터벅 그녀 뒤를 따른다. 무섭지도 않나.. 필시 저 가시나의 뱃속에는 간덩이가 없을 거야. 조금 더 있으면 어두워질텐데 어떻게 하려고 저리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나의 간은 콩알만해졌다. 저 만큼 앞서가던 순옥이년이 힐끗 뒤돌아보며 내가 따라오는 것을 확인하고는 살금살금 초분 옆으로 다가간다. 초분 앞에서 이곳 저곳을 둘러보던 순옥이년이 손을 들어 코를 막는 시늉을 한다. 몹시도 겁이 많은 나는 감히 초분가까이 다가서지 못하고 멀찌감치 떨어져서 순옥이의 하는 양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갑자기 초분 뒤쪽에서 하얀 물체가 불쑥 나타나며 벼락같이 호통을 친다.
>
> "꺅!"
>
> 순옥이의 비명이 들려왔다.
>
> "헉!"
>
>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
> "귀, 귀신이다!"
>
> 소리치며 나는 냅다 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하였다. 얼마동안이나 달렸는지 모른다. 한참동안 순옥이가 따라오는지도 모르고 정신 없이 도망치다 또 한번의 비명소리와 함께 순옥이의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보았다. 순옥이가 조금 뒤 논두렁 아래에 쓰려져있었다.
>
> "아!"
>
> 나는 얼른 순옥이한테 달려갔다. 다행히도 귀신이 따라오는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순옥이를 잡아 일으키니 아아! 소리치며 도로 주저 앉아버린다.
>
> "삐었나봐 도저히 못 일어나겠어"
>
> 난감하였다. 어떻게 하나.. 어떻게 하지.. 발만 동동 구른다. 한참 동안 생각하다 슬그머니 등을 내밀었다. 순옥이는 조금은 미안한 듯 망설이더니 이내 순순히 업힌다. 생각보다 무겁지 않았다. 두 손으로 목을 꼭 끌어안는다. 따뜻한 체온이 전해져온다.
> 몹시 더운 날씨임에도 덥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 것은 참으로 이상하였다.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귓가를 간지럽게 만든다. 야릇한 기분으로 점점 빠져들었다.
>
> "개똥아! 미안해!"
>
> "것 봐! 내 뭐 랬어." 퉁명스레 내뱄었다.
>
> 무안했는지 잠자코 가만히 있다. 하지만 싫진 않았다. 순옥이년을 들쳐업고서 처음으로 나도 사내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등뒤에 밀착된 부드러운 솜으로 만든 작은 공처럼 말랑말랑한 순옥이년의 가슴은 기이하고 야릇한 신비의 세계로 나를 깊숙이 끌고 들어갔다. 그렇게 한동안 논두렁길을 따라 묵묵히 걷고있는데 순옥이년이 말을 걸어온다.
>
> "아까 너 봤지?"
>
> "응? 무얼..?"
>
> "봤잖아!"
>
> "글쎄, 뭘 봤다는 거야?"
>
> "시침떼도 다 안다."
>
> "...."
>
> "아무에게도 말하지마!"
>
> 자꾸 추궁하는 순옥이에게 건성으로 알았다고 대답하였다. 그 후로도 순옥이는 몇 번에 걸쳐 다짐에 다짐을 받았다. 그때 나는 보았다. 넘어져 있던 순옥이년의 들추어진 치마사이로 고쟁이가 보였는데 빨간 장미꽃 한 송이가 그려져 있는 것을 얼핏보았다. 순옥이는 나의 눈길을 의식하였는지 황급히 치마를 내렸다. 하지만 하얀 고쟁이에 선명하게 그려진 장미꽃 한 송이가 무얼 의미하는지 나는 몰랐다. 어느덧 슬금슬금 땅거미가 몰려와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둘 모습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저 멀리 초승달아래 논두렁 위에서는 주인 잃은 꼴 망태 두 개가 나란히 얼굴을 마주 보며 영문을 모르는 채 의아한 눈길을 주고 받고있었다.
>
> 그 날밤 우리 집 누렁이와 순옥이네 얼룩 이는 속절없이 저녁을 굶어야만 하였다.
>
> ...............nou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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