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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에 관하여
글쓴이 파수꾼3 조회 598

노래에 관하여 박영희 너희들 고등학교에 다닐 때 나는 가방공장 시다였다 단 한번도 그 바닥을 드러내 보인 적 없는 샘물 마셔가 며 너희들 얼굴 그을릴 때 나는 수도꼭지 빨던 서울의 공돌이였다 이런 내가 설날이나 추석에 내려오면 수자네 집이나 윤봉이네 집에 모여 나를 불러냈던 너희들, 열여덟 공돌 이가 담배 피우고 술 마시면 괜찮아도 너희들이 그러면 이상해 보였던 그 시절, 공화당 시절 보해소주에다 환타 섞어 너희들 노래라는 걸 불러댔지만 그 노래는 그다지 오래가지 못했다 레퍼토리가 뻔했다 오동잎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던가 낙엽 지던 그 숲속에 파란 바닷가만 철썩 거렸다 바로 그때부터였다 바로 그때부터 나의 노래는 시작 되었다 열여덟 그 봉긋한 유방을 가진 계집애들 앞에서 나는 스타 아닌 스타가 되어갔다 순전히 노래 때문이었 다 너희들의 노래는 모두 합해 스무 곡 정도에서 마침내 그 바닥을 드러냈지만 나의 노래는 서른 곡이 넘어가고 쉰 곡이 넘어가도 끄덕없었다 두만강 푸른 물 따라 흘러 가버린 한물 간 노래도 척척 뽑아댔고 서너 곡의 팝송쯤 이야 식은죽 먹기였다 그러면 너희들은 놀란 토끼눈으 로 어떻게 그 많은 노래를 알고 있느냐며 부러워했던가 그날밤 미수는 단둘이만 있고 싶다며 바닷가 쪽으로 슬 며시 내 손을 끌기도 했었지 그러나 나는 말해줄 수 없었다, 그 비밀을 왼종일 라 디오를 틀어놓고 일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박영희, 팽이는 서고 싶다, 창비시선 209, 창작과 비평사, 2001년--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