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 일그러진 청춘 2











다음날 일어났을 때에는 정오가 다되어 있었다. 

꿈속에서는 아름다운 장미빛 사랑의 빛줄기가 비추는가 싶으면 암흑 터널 속으로 빨려드는 

악몽이 교차하고 있었나 보다. 왜 그런 불길한 꿈이 이뤄졌던 것일까 ?



토요일 우리 문학부는 그 주일의 활동을 종합 토론하는 시간을 갖곤 했었다. 작품들을 합평

회도 하고 독서감상을 주고받으며 다양한 토론을 벌였기에 그녀가 나타난 시간은 모임이 끝

나갈 즈음이었다. 통상 우리는 2차 모임을 식사 후에 다양한 오락거리로 채우곤 했었다. 그

렇게 한주일의 활동을 홀가분하게 정리하면서 한주일을 마감했다는 실감을 얻곤 했었다. 아

마도 그녀가 그날 나타났던 것도 그녀의 오래된 습관으로 인한 어떤 아쉬움과 관성 때문은 

아니었을지. 



그날 예기치 않은 술자리 그리고 더더욱 예기치 않았던 열락의 시간들. 그건 정말 꿈에서도 

이룰 수 없었던 환희의 찬가였으리라. 먹지 않아도 배고픈 줄을 몰랐지만 열정의 시간이 끝

나고 시간이 흐르며 배는 고픔을 하소연하고 있었다. 안주거리만으로는 부족했기에 우린 11

시 넘어 한 차례 대학 앞 포장마차에서 배고픔을 해소했고 다시금 캠퍼스 산책을 했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그날 밤 그 산책을 잊지 못하리라. 내 시야에 들어오는 저 아름다

운 여학생을 정복했다는 어떤 뿌듯함이 가득했었나 보다. 그녀의 표정 또한 행복감으로 가

득찬 사랑스런 연인이기에 충분했었다. 



그런데 문득 그녀에게 스치는 어떤 어두운 그림자가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고 생각

했던 건 왜일까 ? 아직도 그녀는 내면의 갈등을 다 떨쳐내지 못했단 말인가. 그런 순간들은 

아주 짧았기에 내가 잘못 생각했고 내 자신감의 부족이라 넘기고 싶었지만 그런 느낌은 몇

번이나 스쳐지나가곤 했었나 보다.



나는 그녀와 영원의 사랑을 맹세하곤 했었다. 그러나 그녀는 어떤 확신있는 답변을 하지 않

고 말머리를 돌리곤 했었다. 우린 또 한차례 긴 열정의 시간을 또 가지며 평생 그날을 기억

하자는 약속을 했건만 왜 나는 아직도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하는 것일까. 

 

  호수 옆 나무가에 그녀를 밀치며 펼쳤던 아름다웠던 열락의 시간들. 나는 몇 번이나 수없

이 속으로 맹세하곤 했던가. 이 여인을 영원토록 내 사랑으로 놓치지 않겠노라고. 하늘과 별

님과 달님과 나무와 스치는 바람과 모든 신들에게 맹세하곤 했었다. 

그녀는 아직도 수줍고도 아름다운 한떨기 꽃과도 같았다. 뜨겁게 타오르는 열락과 환희의 

탄성을 참아내려 안감힘 쓰면서도 밀려드는 쾌락의 물줄기에 온몸을 던져 뜨겁고도 뜨겁게 

화답하고 있었다. 그 뜨거움 몸과 살과 탄성이 아직도 뜨겁게 느껴져 바람을 고통스러울 정

도로 흥분시키고 있었다. 그럴수록 다시금 간절히 보고싶은 그녀.



그녀는 어디서 어떤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집에서 자신과 같이 어제밤이 일들을 회상하고 

정리하고 있을까. 불쑥 전화를 해보고 싶은 강렬한 충동. 그러나 의식은 아직은 너무 이르다

며 타박하곤 한다. 



그날을 어이 잊을까. 그 뜨겁고도 아람다웠던 열정의 밤들을. 그 뜨거움과 달콤함이 영혼을 

녹여버리는 심정이었다. 그의 모든 것들이 타들어가 그녀에게 녹아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뜨겁고 황홀했던 키스의 진공시간들. 거룩했던 그녀의 얼굴이 내 것인 듯한 깊은 포만감. 



온 몸이 하나가 되듯 압착하고 압착하며 그녀의 귀엽고도 거룩한 젖가슴이 내 가슴속에 뿌

듯이 느껴지고 내 강한 남성이 그녀의 깊은 곳을 찌르는 듯한 강렬한 쾌감들. 녹색 물방울

무늬의 플레어스커트 밑에는 그녀의 탐스러운 엉덩이가 숨어 있었다. 



내 손은 용기를 내어 스커트 밑으로 살큼 들어갔었다. 아, 거기 또 놀라운 부드러움과 굴곡

미. 여인의 온몸은 모두 풍만한 부드러움과 굴곡미의 소유자였던가. 팬티라는 단어를 느끼자 

어떤 강렬한 느낌이 뇌리를 때렸다. 강하게 강하게 히프의 쾌감을 만끽했지만 더 이상은 용

기를 낼 수 없었나 보다. 



갑자기 그녀의 몸이 경계심으로 곤두서고 있음을 느꼈고 자신도 어떤 두려움과 공포심이 더 

이상의 진도를 나갈 수 없게 했던 것이다. 더 이상 진도는 나가지 않자 서서히 그녀의 경직

됨도 이완되고 있었다. 두손에 닿는 히프의 쾌감과 가슴에 안기는 그녀의 풍만한 유방, 그 

느낌이 너무 좋아 서로의 온몸을 부디치며 뜨겁게 뜨겁게 타오르던 밤. 나무와 바람만이 그

들의 행복한 율동을 시샘하고 있었다. 



그때의 뜨거움이 그를 또 괴롭히고 있었다. 날마다 날마다 평생을 그런 행복감 속에 머무르

고만 싶었다. 그 무엇을 또 바라리요. 내 모든 행복은 핑크빛 티 속에 느껴지는 황홀한 젖가

슴과 녹색 플레어스커트 속의 그녀의 풍만한 히프와 핑크빛으로 뜨겁게 타오르는 거룩한 아

르다움의 얼굴에 있을 뿐. 



아, 사랑은 이런 것이었구나. 이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만 같았다. 남자의 모든 행복을 품

에 안은 듯만 싶었다. 



몇 번의 전화 충동을 포기하고 그날 오후 늦게 자전거로 캠퍼스를 모두 뒤졌다. 그리고 일

요일엔 텅 비었을 학교문학부에도 나가보았다. 그녀가 갈만한 행적을 모두 찾아보았지만 어

디에도 그녀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아 안타까울 뿐. 



탈진한 기분으로 집에 돌아왔을 때, 엄마가 묘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하셨다. 

"문학부 여학생이라는 애가 전화를 해왔었는데, 어떤 사이니 ? "

내 눈은 어떤 표정이었을까. 기쁨과 놀라움으로 너무나 커졌던 것일까 ?

" 어제 만났던 그 곳에서 그 시간에 만나자던데... 너, 사귀는 애이니 ? "

엄마는 아들의 여자에 대한 묘한 호기심을 숨기지 않은 웃음을 여전히 짓고 있었다. 

"그...그래요 ? "

그는 들어가던 발걸음을 돌려 삽시간에 자전거를 들고 대문으로 뛰쳐나갔다. 

"얘~~ 밥은 먹고 가야지~~ "



그 캠퍼스 그 벤치에서 20분 정도 기다리고서야 그녀는 나타났다. 밝고도 화사한 그녀, 사랑

의 요정 ! 저 여자가 내 여자라니 아직도 믿기지 않았다. 뿌듯한 행복감이 밀려들고 있었다.



" 너 밥도 안 먹고 나와 기다렸구나 ? " 

장난기 어린 웃음이 너무나도 귀엽고 사랑스럽다. 



"그럴 줄 알고 볶음밥을 김밥으로 말아왔지 ~ ! ^^"

웃음 짓는 그녀가 너무나도 사랑스러워 꽉 안아주고만 싶었다. 아, 1시간만 지나면 어둠이 

찾아오고 안아줄 수 있을 텐데. 



소풍 나온 기분으로 김밥을 먹었고 아름다운 그녀의 얼굴과 표정들과 느낌들도 같이 먹었

다. 그럼에도 뭔가 허전한 듯한 이 느낌은 소주가 없어서였을까 ?



"좀 걸을래 ? "

그녀는 말하며 앞장섰다. 

어제의 녹색 플레어스커트와 분홍빛 티는 아니었다. 청바지에 하얀 티. 낭만에서 건강함으로 

바뀐 듯한 느낌. 율동하는 히프와 충렁이는 젖가슴이 가슴을 때린다. 흥분을 안은 내 발걸음

은 구름 속 산책 마냥 가벼웠다. 



한참의 캠퍼스 산책을 돌고 돌았지만 그녀는 더 이상 장난스런 미소를 짓진 않았다. 조금은 

차분하고 차가운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래선지 내 입도 쉽게 열리진 않았다.



"나, 중 2때부터 좋아하는 오빠가 있었다 ~! "

멀리 하늘을 바라보면서 거닐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교회에서 만난 오빤데, 나보다 세 살이 많았어. "

나도 모르게 어떤 질투의 심장이 느껴졌다.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고 참 다정다감했었지. "

질투심 반 호기심 반의 아픔이 스치고 있었다. 



"그 오빠가 너무 멋져보이는 거야. 나이 차가 많아서 좋아하지 않으려 그렇게 노력했는데, 

또 그 오빠는 여자친구가 있었걸랑. 그런데도 맘대로 안되더라. "

어떤 우수가 흐르는 얼굴. 조금은 허허로운 미소 스치며 말을 잇는다.

" 그 오빠 영향으로 문학을 시작했어. 기타도 배웠구. 작년에 한번 프로포즈했는데, 내가 대

학생이 되면 생각해 보겠다나 ? "

눈길을 한번 돌려 바람의 표정을 훔치더니 다시금 먼 하늘로 향했다. 



" 이젠 교회에도 안 나와. 서울로 대학을 갔거든. 난 그 오빠가 여기 이 대학을 다녔으면 했

었는데. "



우리는 조그만 야산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캠퍼스 풍경과 시내가 넓게 펼쳐보이는 시

원한 전망. 내 시선이 시원히 트이는 기분과는 달리 어떤 본능적 불안감을 느낀 건 왜였을

까. 



"지난 겨울, 그 오빠하고 이곳에 온 적이 있어. "

불길한 예감으로 내 가슴은 쿵!하고 무너질 것만 같았다.



"난 프로포즈를 했고... "

불룩, 침 넘어가는 걸 느끼며, 갑자기 내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다.



"오빠는 또 거절인지 보류인지를 했지. 자신에게는 여자친구가 있고 내가 여자로 느껴지지 

않은다나 ? "

시니컬한 웃음이 묻어있었다. 

후~~ 비로서 안도의 한숨이 새어나왔다. 



"난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있었어. 그래서 내가 그동안 써온 시랑의 시를 전

했지. 몇 편 그가 읽어보더니, 조금은 곤혹스러워 하더라. "



그가 너무 부러웠고 얄미웠다. 그런데 왜 그녀는 새삼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일까 ? 모르면 

더 편했을 것을.



" 결국 많은 얘기를 하면서, 내 첫 키스를 하고 그를 떠내보냈지. "

그녀의 아픔과 괴로움, 그에 대한 질투심이 내 가슴을 복잡하게 흔들었다. 



"재우, 걔한텐 많이 미안해하고 있었어. "



걔 얘기도 이젠 별로 듣고 싶진 않았다. 



"나도 짝사랑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 괴로움을 잘 알고 있었거든. "

다시금 그녀 눈길은 먼 곳으로 향했다. 



"글쎄, 잘 모르겠더라. 어떻게 살고 처신해야만 하는지. 걔 프로포즈가 곤혹스러웠었거든. "

한숨을 토하며 말을 이었다.

"그런데 있지, 걔가 죽으니까 꼭 남의 죽음 같진 않더라. 내가 그 오빠를 더 치열하게 사랑

했다면, 더 치열하게 도전했다면, 그 오빠가 더 매몰찼다면 나도 그럴 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는 생각도 들더라구. 그래서 더더욱 미안했고 더 혼란스러웠을지 몰라. "



그녀는 힘겨운 표정을 풀고 내 표정을 살폈다. 

나는 뭐라 답변해야할지 정리가 되지 않았다. 어떤 충격과 괴로움으로 머리가 멍해져버린 

기분이었다. 머리를 흔들며 정신을 모으려 노력했다. 

그녀의 어떤 미소가 스쳐지나갔다.



"그래, 미안해. 많이 놀래고 당혹스러울 거야. 나, 어제 잠을 이룰 수가 없더라. 노력을 해도 

잠이 오지 않았어. "



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들뜬 심정이 되어 자리에 누워도 뒤척이기만 했었다. 



"오늘 고민 많이 했었거든. 솔직히 감정정리가 쉽진 않았어. "

그녀는 또 그를 탐색하듯 바라보았다. 난 여전히 어떤 말을 해야할지 정리할 수 없었다. 



"나, 그 오빠 잊기로 했었어. 좀 더 빨리 포기했더라면 재우에게 더 잘해줄 수 있었을 것 같

았걸랑. "

재우, 또 거기로 돌아갈 수밖에 없구나. 



"그런데 있지, 난 그 오빠를 바라보면서 어떤 인생의 지주가 되어주는 느낌으로 살았걸랑. 

그럴 잃으니까 내 자신이 갑자기 무기력해지더라구. 기둥뿌리 뽑힌 집처럼 무너져내리는 기

분, 이해할 수 있니 ? "



".... ! "

알 것도 갔았다. 나 역시 재우의 죽음으로 그리 될 수도 있었을 테니까. 그의 일기장과 문학

노트가 그런 상실감을 메워준 셈이리라.



" 그래서 방황도 했고 탈선도 좀 했었어. 힘들어서 견딜 수 없었으니까. "



이젠 좀 더 그녀를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뭔가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 그런데 왜 갑자기 내가 널 찾아갔을까 ? "

그녀는 갑자기 퀴즈를 던지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게 신기하기도 하고 신통스런 행운으로 

느껴진다.



다희는 코웃음으로 쓰게 웃더니 말을 이었다.

" 음.... 이건 정말 말하지 않고 싶었는데, 내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얘기해야할 것만 

같아. "

어떤 말일까, 나는 갑자기 신경을 집중했다.



" 나 있지, 널 처음 보았을 때 상당히 놀랬어. "



" ... ?? "



"고교 들어오면서, 그 오빠 생각하지 않으려 했는데, 그럴 수 없는 날 알게 되었지."

" .....?? "



"그 오빨 좋아한 건 2년 전이지만 첨 본건 내가 중학 1학년 때 그 오빠 고교 1학년 때였어. 

지금은 탤런트 이영하처럼 살도 좀 찌고 넉넉해졌는데, 당시엔 꼭 네 모습 같았걸랑. 순수하

고 깨끗하고 조금은 경직된 듯한.... "



".....!!! " 

내 가슴은 갑자기 심하게 뛰기 시작했다.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고백이었던 것이다.



" 많이 놀래는구나. ^^ 나도 많이 놀랬지. 그래서 나도 너에게 관심이 많았지만 재우 때문에 

차마 내색할 순 없더라. "



기쁘기도 무섭게 또 내 가슴이 아파지기 시작했다. 재우, 너에게 나도 상처를 줬던 것일까 ? 

어떤 아픔이 얼굴을 찡그리게 했으리라.



"그래, 너도 아파할 것만 같아서, 정말 말하지 않고 끝까지 모른 척 할려고 했었어. 그런데 

나도 모르게, 내 힘겨움으로 널 찾게 되었고 어제 예상치 못한 많은 일들이 일어나 버렸지. 

"



아, 웬지 길몽이 악몽으로 변해가는 것만 같아 두려웠다. 깊은 한숨을 참을 수가 없었다.



"미안해. 혼자 정리 못하고 이렇게 아픔을 준데 대해서. "



그녀는 차마 더 그를 바라보지 못하고 눈을 감고 말았다.

한동안 깊은 침묵과 정적의 강이 흐르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가 어렵게 입을 열기 시작했다.



"몰랐어. 정말 상상도 할 수 없었다. "

아직도 괴로운지 머리를 흔들며 힘겹게 말을 이었다.



"나만 좋아하는 줄 알았지. 일찍 알았다면 큰 기쁨이었을 텐데 지금은 재우에게 너무 미안

할 뿐... "



"그래... 알아. 네 마음. 비밀 간직하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

그녀도 깊은 한숨을 토해냈다.



" 그런데, 내가 너무 힘들어서, 견딜 수가 없는 거야. "

그녀는 다시금 괴로움을 참을 수 없어 힘겨워했다. 

내 가슴도 고통으로 얼룩지며 무너져 내리고만 싶었다. 



"............"

"..............."



"인생, 참 묘하다."

한참 후, 보람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

" 재우를 만나 너무 행복했는데, 너무 일찍 떠나버렸고, 널 만나 너무 행복했는데, 또다시 

암흑의 터널로 들어간 기분. 악몽이라면 차라리 깨어나고만 싶어. "



"그래, 내 힘겨움을 너에게 전가한 기분.... 그 막막한 기분 잘 알지. 너무 미안해.... "

또 깊은 한숨의 얼굴이 측은하다. 나도 힘들어서 도와줄 힘도 없는데...



"혼자서 정리했어야 옳았어. 그런데 자신이 없어. 차라리 네가 그를 닮지 않고, 내가 널 좋

아하는 마음이 없었으면 편했을 텐데.... "



둘은 또다시 깊은 침묵의 터널로 들어서고 말았다. 그 시간은 꽤나 오랜 마음 달리기의 시

간. 한숨 쉬며 고통스러워하고 또 마음 달래기...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답답한 가슴은 트이지 않았다. 



"그만 하자. 더 얘기해봐야 힘들기만 할 것 같아. "

그의 결론이었다.



"그래, 더 힘들었던 때도 많았는데, 시간에 맡겨봐야지. 아픔도 시간이 해결해준다고들 하니

까. "



"어제는 그렇게 행복했는데, 웬지 잠자리에서 악몽을 꾸더라구. 다희에게 어떤 불길함을 느

꼈었나 봐. "



"후훗~~ 생각보단 감수성이 있었네 ! 난 이제 퀴즈를 포기해서인지 조금은 살 것 같아. "



벤치에 몸을 떨구고 하늘을 바라보는 그녀. 바람도 같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어제 보이지 않

던 먹구름이 많았지만 구름들 사이로 영롱한 별을 보노라니 조금 힘을 얻는 기분이었다.



갑자기 그녀가 바람에게 몸을 기대왔다. 

"어제 나도 정말 잊을 수 없을 만큼 행복했고 감격했었어. 그냥 잠들지 않고 언제까지나 그

렇게만 있고 싶더라. "



오른팔을 돌려 그녀를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갑자기 사랑스런 느낌이 밀려들어왔다.



"아~~ 나도 어제 평생 잊을 수 없는 행복과 감격을 안았어. 네 옆에 이렇게 있는 것만으로

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남자인 것 같아. "



그녀의 눈이 바람의 얼굴을 쓸었다. 그리고 다시금 그에게 더 몸을 기울려왔다. 

바람의 왼손에 그녀의 가슴이 닿는다. 어제처럼 떨리는 감격은 아니지만 짜릿한 느낌이 뇌

리를 스친다. 느낌이 너무 좋다. 조금씩 힘을 가하여 포근히 넓게 애무해나간다. 아....너무 

좋아. 갑자기 머리가 텅 빈 듯한 느낌. 머리는 비우고 그냥 이렇게만 있었으면....



둘은 말없이 그렇게 오래 있었다. 차갑게 얼어붙은 가슴에 봄바람의 향기가 실려오는 것만 

같았다. 더 강한 뜨거운 충동도 없지 않았지만 동토를 녹이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했으리라. 

몸과 몸을 기대며 두 가슴을 포근히 안을 수 있는 행복감. 더 뜨겁게 나가지 않고 오래도록 

봄바람의 향기에 언 가슴들을 녹였다.



시간이 오래 흐른 후 그들은 키스를 했고 나무에 그녀를 기댄 채 몸과 몸의 대화도 나눴다. 

그러나 뜨겁고도 뜨거운 열락의 세계는 아니었다. 아직도 녹아내리지 않은 마음 속 얼음들

을 녹이려 둘은 몸을 덥혔다. 몸과 몸이, 살과 살이 서로를 그리워하며 애타게 부르는 육체

의 대화와 노래는 뜨거운 소프라노까지 올라가진 않았다. 



둘의 가슴은 훈훈하게 풀렸고 키스는 부드럽고 달콤했다. 영혼과 영혼이 녹아나듯 온 몸의 

감각이 빨려드는 황홀의 키스는 아니지만 차가움으로 경직된 몸을 안단테로 흐르도록 풀어

주기엔 충분했다.



오늘은 이 정도가 좋았다. 둘은 이 정도에 만족할 수 있었다. 뜨거운 고로에서 녹아났던 몸

과 영혼이 급속냉각으로 얼어붙었다가 다시금 풀리는 느낌이었다. 



먹구름이 밀려왔던 하늘이 웬지 시원하게 뚫리는 기분. 다시금 영롱한 별빛이 쏟아질 듯 가

슴에 안겨들고 있었다. 바람의 가슴에 미래와 희망이라는 열차가 다시금 찾아드는 느낌이었

다.



연인의 대화는 이제 제법 살가와지고 부드러웠다. 몸과 몸은 아직도 벤치에 기댄 채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가벼운 애무의 손길을 이어가고 있었다. 장난스럽고 애교있는 몸짓과 감성만

이 그들의 대화에 의미가 있었다. 

어린 연인들에게 필요한 것은 차가운 이성이 아니었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감성만이 그들을 

행복으로 이끄는 의미있는 친구들. 그들은 차가운 얘기를 굳이 찾아나서지 않았다. 오늘 이 

순간은 이렇게 부드러운 감성만으로 족한 것. 차갑고 두려운 미래의 손님은 찾아올 때나 걱

정하기로 하지.



시간의 흐름도, 세상의 모든 것도 잊으며 그들은 행복한 감성의 나라로 빠져들고 있었다.



2004 5 15 토 새벽

산책시간.





이 글을 이어가야만 하나, 어떻게 이어가야 할까 고민이 많았다. 당장 돈이 될 수 있는, 써

야할 글은 이 글이 아닌 것만 같아 다른 글들에 신경이 이전되곤 했지만 이 글에 미련이 많

았나 보다. 서서히 시간을 두면서 감정의 흐름들을 찾아가고 싶었는데, 생각보단 빨리 이 글

을 이어할 수 있어서 기쁘다. 



그런데 글을 쓰다보면, 원래의 구상을 항상 배신하고 마는 결과. 글의 아버지 격인 내 바람

과는 달리 자식들 격인 주인공들은 계속 오바하려 노력하고 해피엔딩 쪽을 바라고 있었다. 

나는 그 감성과 바람을 저버릴 수 없어서 또 한번 그들의 파국을 연기하고 만다. 



이토록 주인공들이 저항이 거세진다면 난 어떻게 구상을 재정립해야만 할까. 어린 신부라는 

영화가 있었듯이 <어린 연인>이라는 제목으로 해피엔딩 쪽을 지향해버릴까 ? ^^



난 애초, 사랑의 열정에고 불구하고 고뇌하고 갈등하며 질풍노도와 같은 뜨거운 운명의 남

과 녀의 이야기를 얘기해보고 싶었다. 그런데 쉽진 않다. 차가운 냉각수를 맞듯 아픈 이별의 

운명으로 들어서야 할 그들이 자꾸만 이별을 미루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난 글을 쓸 때, 열정으로 밀어붙이고 싶었다. 원래 구상대로 뜨겁게 써내려가고만 싶었다. 

그런데, 주인공들의 감성은 내 의도를 번번이 비켜가고야 만다. 내 계획이 그들의 의지를 꺽

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그들과 나는 갈등할 수밖에 없고 타협의 시간들이 필요하나 보다. 



내 자유시간이 촉박한데, 난 이 글을 위해 얼마나 시간을 배려할 수 있을지. 잠시 이별의 결

단과 미련 속에서 방황해야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