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호(江湖)는 민간을 말하는 것으로 제현(諸賢)이 숨어 살기에 적당한 곳이지요. 중원의 송.원.명대에 오면 세상은 신사(紳士)와 민간 그리고 무뢰(無賴)로 뚜렷한 계층을 이루게 됩니다.(오금성) '신사'는 사대부의 총칭이고 무뢰배는 '광곤' '타곤'이라하며 '천강백룡'이니 '십삼태보'니 하던 조직폭력 단체부터 '걸인' '창녀'등 어둠의 세계인을 통칭하는 '흑사회'를 말하지요.

'강호'는 강호시집(江湖詩集)의 출간 시대부터 가늠됩니다. 강호시집은 송나라 시대 '진기'가 2백여명의 일반인(신사에 속하지 못한)들의 시를 모아 출간한 책으로 송나라 시대의 문풍이 양반 사대부층을 벗어나 바야흐로 여항(뒷골목)의 일반인들까지 유행했음을 알게 되지요.

강호시집속에 '유극장(劉克莊)의 시가 떠오르는 것은 한해의 끝자락이 달랑거리는 연말이기 때문입니다. 유극장은 송나라 시대를 살았던 사람이지만 왠지 옛날 사람이 아닌듯 정감이 갑니다.

거지아저씨가 문앞에 오셨네.

어쩐다. 연말이라 나도 쪼들리거늘.

옷가게 염색가게 선술집 노파 푸줏간에도 외상이 밀려있는데.

거거다 아이들 서당 학비도 주어야 하거늘.

[乞客匏衣立戶前. 豈知儂自僒殘年. 染人酒婆逋猶媛.且送添丁上學錢.]

'유극장'은 가난합니다. 가난함에도 시를 알고 아이를 교육시키며 문밖을 찾아온 걸인을 보고 갈등(?)하는 영낚없는 서생의 모습이지요. 사대부층도 아닌 일반 여항인으로 시를 쓰고 있는 유극장을 보면  역시 문학을 하는 사람은 가난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구양수는 시쓰기가 사람을 가난하게 하는것이 아니라 사람이 가난한 후에 좋은 시를 쓰게된다(然則非詩之能窮人殆窮者而復工也)라며 이런 생각을 멈추게 하지요. 어쨋든 시인은 풍요함 보다는 고통속에서 탄생하는 경우가 많은듯 합니다.

생각나네요. 10년전에 돌아가신 아버님께서 연말이면 가게를 돌며 외상값을 갚던 때가 말입니다. 그립군요. 몇일전 같은반 아이 이빨을 상하게 해 치료비를 물어준 한가닥(?) 하는 딸애의 손을 잡고 외상집 순례 대신 바닷가라도 가 동시 한편이라도 지어 줘야 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