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동, 짱뚱, 다나까 중 누가 더 쎄나
한동안 뜸했던 바둑알을 다시 잡아보기 시작했다. 바둑을 한동안 두지 않았던 까닭은 무엇보다도 단 하루의 여유도 없이 분주한 회사생활로 인해 마음의 안정이 없었던 떄문이다. 다시 시작한 바둑실력은 들쭉날쭉 안정되지 못하였다. 재작년 직장인 바둑대회에 나가서 꼭 이겨야한다는 의무감으로 다시 돌을 잡긴 했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당시 상대였던 W은행의 선수와 다시 붙는다면 집백일 경우 승산이 없을 것 같다. 관전자와 대국자가 느끼는 상대 기운의 정도가 다르다. 한걸음 한걸음 압박해오는 탱크 같은 기세에 짓눌려 물러서고 물러섰다. 수가 빤히 나지 않을 곳도 대국심리상 후퇴해 버리기를 몇번 하다보니 그 유리했던 형세는 어느새 기울어 있어 회복가망성이 없어 보였다. 유리했어 보았자 5집정도였는데, 마지막 꼼수로 재역전하여 좀 머쓱했다. 올해 한달전 N사의 선수는 이러한 기운의 정도가 매우 약해서 질거라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다. 이런 느낌은 대부분 들어맞는다. 관전자들은 저런 3급바둑을 두고 있다니 하고 한심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단지 상대가 4급이다 보니 3급수를 둔 것 뿐이다. 그런데 경적 필패라고 대마는 손대면 톡 터질 듯 죽어있었고 중앙을 방치하자니 집이 모자랐다. 어찌하여 이리 되었지? 여하튼 상대의 대실수로 바둑은 역전되었으나 기분은 좀 씁슬하였다.
옛날에는 상대의 돌을 잡으러 날뛰던 시절이 있었다. 집바둑을 화초바둑이라 무시하고 끊어서 싸우지 않으면 바둑도 아니라는 식이었다. 죽던지 살던지 둘 중 결단을 내야했다. 항상 초반은 집부족증에 걸려 다소 무리하고 허황된 세만 쌓아놓기 일쑤였다. 그게 한계였다. 형세에 기초한 논리정연한 일본바둑을 공부한 고수에게 걸리면 초반에 승부가 결정되어 힘 한번 써보지 못하고 항복문서를 제출해야 했다. 그래서 형세를 공부하게 되었고, 연후 다양한 바둑을 시도하게 되었다. 극단적인 실리바둑, 외세와 실리의 조화를 추구하는 바둑, 멀리서 폼만 재는 공격바둑, 밋밋한 모양바둑 등을 시도해보면서 자신의 스타일을 찾으려 했다. 헌데 지금도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지 못하고 있다. 상대에 따라서 스타일이 달라진다. 굳이 밝히자면 다소 변칙형이다. 요새는 젊은 분들이 공부들을 너무 많이 해서 조금만 교과서적으로 나오면 공부를 하지 않아서인지 상대적으로 불리하다. 해서 변칙스타일로 대응하는 것이지 결코 변칙이 좋아서가 아니다. 고수를 만나면 이런 변칙은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다. 그러면 다시 반성하고 정법을 구사하려 애쓰지만 정법으로는 도저히 고수를 이길 수가 없다. 그렇다고 변칙이 통하는 것도 아니라서 고민이다. 실력은 늘고 싶은데 이러한 자세로는 발전할 수 없다.
오로에서 경험한 변칙스타일로는 단연 중국바둑이다. 대체적으로 이들은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바둑을 둔다. 흑을 쥐면 승률이 그런데로 좋은 반면, 백을 쥐면 별로다. 최근에는 백을 쥐고 이겨보는 경험이 쌓이고 있어 다행이다. 프로의 바둑을 복기하면서 감각이 발전하고 있는 듯 하다. 두텁게 두고 화점바둑을 두지않았을 때 승률이 좋다. 어느 프로는 백을 쥐면 무조건 양화점을 둔다는데 화점인 경우 실리에 뒤져 지는 경우가 많다. 중국바둑은 싸움이 강하다. 죽은 대마가 좀비처럼 움직이다가 상대의 허점과 심리상의 느슨함을 절묘하게 이용하여 자충을 유도하고, 단수당하여 말을 잡히고 역전패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당하지 말아야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비몽사몽간에 또 당하고 만다. 끝난 바둑에서도 시간을 집요하게 공격하면서 시간패 당하는 경우도 종종있다. 다 진 바둑을 끝까지 계가를 거부하면서 승리를 얻어가는 최고로 악당 같은 친구들도 있다. 이런 점을 들어 매너가 좋지 않다고 평하는 분들도 많이 있다. 그러나, 어떤 측면에서는 승부를 생각한다면 좀 악착같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악착 같은 승부기질, 이것이 지금 중국을 지탱하는 힘일 것이다.
여하튼 대부분의 바둑을 사나운 하이에나같은 끈질김으로 무장된 중국선수들과 두는 진전은 어찌보면 심약한 사람이다. 우리선수들을 만나면 어쩐지 승부욕도 없고 손에 힘이 빠진다. 상대적으로 싸움이 치열하지 못하다는 점도 느껴진다. 주말에 정말 감탄할 정도로 싸움을 걸고 프라이드식으로 뭉게고 접근전을 펼치는 중국친구를 만났다. 아이디 지콩. 이 친구는 10초 속기만 하자고 덤빈다. 저 번에도 10초 속기로 붙어 대패하였다. 마치 눈을 감고 펀치를 휘두르는 듯한 싸움이었다. 어깨짚어 갔는데 날일자로 굳힌 귀에 붙여 변환술을 펼치고, 침입해 들어가니 급소를 방치하면서 바꿔치자고 나서고, 패를 하다가 갑자기 손을 빼어 저 쪽을 만지는 듯하다가 다시 돌아오고, 이쪽 쳐들어가서 살 듯 하다가 저쪽 쳐들어가서 느닷없이 응수타진하고, 8초되어야 돌을 놓고, 다잡았다고 생각했는데 꼬리 떼어주고 살아버리고, 받아주어야 할 자리를 방치하면서 한 수 앞을 보고 패를 걸어오는 등, 여하튼 상수가 틀림은 없는데 있는대로 상대의 자존심을 긁고 할퀴면서 싸움을 걸어온 친구였다. 이 친구를 다시 만나고 싶다. 중국선수들 중에는 이런 친구들이 많다. 그런데, 대체적으로 우리선수들 중에는 이런 분들을 만나기 힘들었다. 물론 많이 두어보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바로 이런 치열함이 최근 중국바둑한테 우리바둑이 지고 있는 근본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일본선수들은 좀 다르다. 우선 매너가 꺠끗하고, 승부에 초연하다. 형세가 불리하면 선선히 돌을 거둔다. 중국선수들처럼 다소 황당하게 부딪쳐 오거나 버티는 경우를 거의 못한다. 일본선수들은 상대를 신중하게 고르는데, 잘 모르는 사람과는 두지 않은 듯하다. 아무리 러브콜을 보내도 미인이 아니면 만나지 않겠다는 식이어서 한판 두기 힘들다. 두어보면 치열함이 없어서인지 몇번 두어보면 지리산 깊은 계곡에서 연마해두었던 항일투쟁정신이 눈녹듯 사라지고 어느덧 흐물하고 나태하게 변해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래서 이들과 자주 두지 않게된다. 일본선수와의 승률은 별로 좋지 않다. 어떤 면에서는 제일 상대하기가 까다롭다. 아마도 진전의 바둑의 근원이 일본바둑에 있어서인지 모른다. 대학시절에 읽었던 바둑책은 모두다 일본책이었다. 사까다의 묘수, 슈꼬의 행마, 대죽의 포석, 임해봉의 끝내기, 명인전집 등은 결정적으로 당시의 실력을 뒷받침해주던 이론들이었다. 사무라이의 정수가 아니면 두지 않는다는 정통 이론이었다. 그래서 모양과 정수로 치고들어오는 바둑에 약하다. 상대가 점잖은 수를 들고오면 이를 흔드는 응수를 선뜻 두지 못한다. 그래서 약한 바둑에 약하고 강한 바둑에 강하다는 평을 많이 듣곤 하였다. 하수를 잘 다루지 못하고 두점만 깔아도 어찌할 줄을 모른다. 아예 넉점바둑은 두어보지도 않는다. 하수들이 상수를 은근히 깔보는 경우가 종종 있어서 다소 불쾌해진 기억이 있다.
우리 선수들하고는 거의 두어보지 않고 있다. 항중정신이 녹슨 항일정신만큼 무디어지길 바랄 뿐이다. 오늘 아침에도 새벽시간을 이용하여 한 판 두어보았는데 상대가 무력하게 두어오니 진전도 무력하게 두어서 이기고 말았다. 이 분은 진전과 여러판을 두었는데 판 맛을 보지 못한다. 역시 중국선수들 같은 끈질김과 치열함이 부족하다. 최근에는 “도XX”라는 썩 잘두는 친구가 바둑을 역전당하니까 욕설을 퍼붓는 광견공으로 돌변하는 경우를 당하였다. 인생이 한심한 듯하여 일승을 헌납하고 나왔는데 지금도 기분이 좋지 않다. 그 친구 보니 자신의 원거리사진을 올려놓았는데 싸이코패스가 분명하다. 진전하고 상대할 정도의 실력이면 동네에서는 상대를 찾기 힘든 실력일게다. 상당한 실력을 가진 한국친구가 중국친구들이 가진 매너의 십분의 일도 안된 매너를 가지고 있다니 불쌍한 생각이 든다.
여하튼, 평균적인 각국의 아마추어 스타일을 대표하는 선수, 짱뚱, 다나까, 길동 3명이 붙으면 누가 쎌까? 진전의 생각은 이렇다. 전략, 전술, 승부기질 3가지 면에서 볼 적에 짱뚱은 전략이 상대적으로 중, 전술 상, 승부기질 상이다. 전체적으로 짜임새가 불균형한 듯 하나, 몸싸움에 강하고, 질기다. 다나까는 전략 중, 전술 중, 승부기질 중이다. 모양새가 끝내주지만 너무 폼만 잡는 경향이 짙다. 길동은 전략이 상, 전술 상, 승부기질 하이다. 세련되고 천재적인 기풍을 가지고 있지만 다소 덤벙대는 경향이 있다. 길동의 실력이 최상이나 실제 붙어보면 하수에게도 지는 형국이라고 보아야한다. 짱뚱만큼 처절하게 질리도록 부딪친다는 느낌이 없다. 짱뚱은 어지간히 20집정도 차이는 뒤집을 수 있는 저력이 있다. 짱뚱의 샅바잡는 악력은 셋 중 가장 쎄다. 다나까는 도발하는 것을 정수라고 생각지 않는 모양이다. 닌자의 본토이나 바둑만큼은 닌자가 숨어있지 않다. 다나까의 할복정신은 곧 깨끗한 승부매너 자체이다. 검날은 날카롭지만 길동이 가진 장검에는 파워가 워낙 딸린다.
오늘밤에도 짱뚱어를 잡으러 오로갯벌에 나갈 예정이다. 아무래도 오로갯벌의 짱뚱어를 다 잡아야 직성이 풀릴 듯하다.
陳田
09년11월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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