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海西)에 들물 날물만 연구하던 사람이 있었답니다. 아침에 바다에 나가 저녁에 돌아오는 일을 60년간 했다는 것이지요. 그러던 그가 드디어 책 한권을 썼답니다. 세상은 그를 무용(無用)한 일에 정신을 쏟는 미친 사람이다 평(評)했다는 것이지요. 이 소리를 들은 오직 한사람 조귀명(趙龜命1693-1737)만이 아, 이 사람은 조선인이 아닐것이다 하고는 자신의 일기에 기록했다는 겁니다.

이름 없는 바닷가에서 일없이 공맹이나 뒤적이고 노장이나 곁눈질하다가, 그것도 재미 없으면 노름바둑판이나 기웃거리던 청년이 중국에도 있었던 모양입니다. 젊은날의 방황이 무료했던 것이겠지요. 그런던 어느날 이 청년이 길가 책방에서 낡은 책 한권을 보고는 그날부터 더이상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는 늠름한 사내가 되어  당당했답니다. 그 책이 '대승기신론'이고 청년의 이름은 양인산(梁仁山1837-1911)입니다.

인산은 중국불교의 본산이란 '금산사'에 출가를 하고 '대승기신론'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불교의 몰골을 보고 경악(?)을 합니다. 아마타경이나 암송하면 안양(安養)에 들수 있다는 믿거나 말거나식의 불교 현실에 분노한 인산은 '금산사'에 있는 수백명의 승려들중 300백자 이상으로 편지를 쓸수 있는 중이 있다면 내목을 쳐도 좋다는 공표(?)를 날려 내실은 부족하면서 허명만 있는 중국불교를 자아비판 합니다.

한문으로 편지 한통 쓰지 못하는 승려들을 질책하는 것이었지요. 이런일은 요즘도 통하는 것입니다. 자칭타칭 고승들의 '임종게'를 제자들이 모여 옥편을 뒤적여 작성한다는 자아비판은 지난 여름 조계종단에서 젊은 승려들이 집단으로 한 말입니다.

인산은 이날로부터 피나는 노력끝에 불교의 대학(大學)이 되어 1894년 대승기신론은 영역하여 서양철학에 능욕(?) 당하던 동양철학의 자존을 세웁니다. '스즈키다이세츠'보다 무려 26년이 앞선 대승기론의 해외 소개였지요. 인산은 암흑과도 같았던 20세기 초 중국 불교의 아버지로 한국의 '경허'같은 사람입니다. 그가 말합니다.

[슬픔이 학문을 밀고 간다.]

그렇군요. 인산의 말은 개인의 고통과 좌절이 개인의 열정과 힘을 격려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때 위대한 학인(學人)을 만든다는 의미입니다. 학인은 학교에서 만들어지는 것만은 아닐테지요. 진정한 학인은 이름 없는 바닷가에서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 말입니다.

(다음편에는 인산의 제자 '담사동'을 살짝 소개드릴까 합니다. 문학광장은 조용하고 담백하여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