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을 오래한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귀신 한두 번 안본 사람이 없는 것 같다.

모르긴 몰라도 어쩜 팔공선달님도 비슷한 일을 겪었을지도..^^  

저 유명한 ‘묘지근방에서 택시 탄 처녀가 알고 보니 제삿날에 집에 가는 귀신이었다’는 썰과 비슷한데...대개 소복입은 여자가 택시를 타려하든지 히치하이크를 한다는 식이다. 특히 비오거나 날씨가 안 좋은 날밤에 그런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실 멀쩡한 대낮이라도 인적 없는 곳에선 보통 여자라 해도 꺼려지긴 마찬가지일 듯싶다.

실은 오래전 나도 비슷한 일을 겪은 적이 있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심야인데 인적은 물론 차도 거의 안 다니는 논 가운데 수로가의 차도였는데 어떤 녀성이 저 앞에서 손을 드는 것이 아닌가. 소복도 아니었고 검은 색의 원피스였는데 약간 곱슬한 머리가 치렁치렁할 정도로 길었다. 갑자기 걷잡을 수 없이 무서운 생각이 나며 멈칫멈칫하다가 그냥 지나치고 말았다. 어떤 녀성이기에 어떤 사연이기에 그 시간에 우산도 안 쓰고 홀로 그런 장소에 있었는지 지금도 상상이 안 된다.

그리고 또 언제인가는 비틀비틀하며 정말 도움이 필요한 녀성 같기에 태워줬더니 술이 엄청 취한데다 터무니없는 소릴 하는 둥 정신이 이상한 녀성이지 뭔가. 파출소 도착할 때까지 혹 뛰어내리지 않나 갑자기 달려들어 내 목을 조르지는 않나 어찌나 조마조마했던지……

지금 생각해보면 그 녀성은 오히려 내가 두려워서 정신이 이상한 척 쇼를 한 것일 수도 있겠다. 하여간 녀성이란 낮에도..인파속에서도...혹간 한 이불속에서도 무섭디 무서운 존재일 수 있지만...한밤중 외진 곳에선 음주여부에 상관없이 그야말로 공포의 핵탄두다.

도심에서 귀신이 소복입고 너울너울 춤추며 가는 걸 봤다는 우끼는 글도 봤는데 곰곰 분석을 해보면... 대개 무당들이 산 기도를 하거나 혹은 낯선 외지에 출장 와서 지리가 어두워 헤매다 택시를 자주 이용해서 그랬을 법 하다. 과연 기사분이 볼 땐 어떨지 궁금하다.

어느 화물차 기사의 경험담이다.

정기적으로 반월(안산)에서 광명을 거쳐 영등포를 왕래하는 사람이었는데 1978년 가을비가 내리던 어느날 밤, 으슥한 시골길에서 우산을 든 잠옷 바람에 맨발인 소녀가 다급히 차를 세우더니..도와달라고..자기부모가 싸우다가 칼부림 끝에 심하게 다쳐서 급히 병원에 옮겨야 한다며 울며불며 사정하더란다.

도로에서도 보이는 야산 중턱의 외딴집을 향해 주저하며 반쯤 올라가다가..무섭기도 하고 골치아픈 일에 말려들까봐 바쁘다고 119에 신고해준다고 하고는 도망치듯 빠져나왔단다.

가장 큰 이유는 그 외딴집에 전등불이 안 켜져 있었기 때문이었다나, 광명에서 공중전화로 119에 대강 신고했지만 그후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 들지도 않았고 방송이나 신문등은 본래 보지도 않는 체질이라 그냥 그렇게 넘어갔단다. 직후 D건설에 고용되어 리비아에 2년간 나갔는데 외로운 타국생활 때문인지..고아나 다름없는 신세였음에도 애국자가 되고 고국의 모든 것이 그리워지더란다.

그러면서 당시의 그 사건이 자꾸 마음에 찜찜하게 걸려오더란다.

그 소녀는 얼마나 무섭고 막막했을까, 119는 맡은바 임무를 다했을까, 자신의 도피로 인해 혹 그 부모가 죽지 않았을까, 그 바람에 그 소녀가 자기처럼 고아가 되지 않았나...어찌나 양심이 콕콕 찔려오는지 너무도 괴로웠단다.

귀국하여 고향서 일년여 놀며 다른 일도 하다가 별 볼일이 없어 다시 반월에 와서 그 화물회사의 지입차주로 들어가 옛날 그 코스를 다시 뛰게 되었단다. 3년전의 그 집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비닐하우스가 서있었는데 채소를 키우는지 가축을 키우는지는 알 수 없었다. 굳이 찾아가 사연을 물어볼 용기는 못 냈는데..

드디어 올 것이 왔으니 82년 장마가 한창일 때 화물을 싣고 새벽 두시 경에 그 길을 지나게 되었던 것이다. 옛날 그 사건에 대한 건 까마득히 잊고 있었는데..

돌연 우산 쓴 여자가 차를 세우기에 놀라 얼떨결에 차를 세우고 보니 바로 그 비닐하우스 앞길이더라는 것이다. 무조건 올라탄 여자는 처녀가 아니라 여고생 같았는데 시내까지만 태워달라고 하며 문을 닫더란다. 차를 출발시켜 운전하면서 피차 더 이상은 말이 없었는데 그는 3년전의 그 소녀가 컸으면 이 나이쯤 되었겠지. 혹시 비닐하우스와 관련이 있는가 싶어 물어보려다 물어보려다 끝내 못 물어보고 얼굴인상을 보려고도 않고 빨리 불야성의 도시로 나가려 가속기만 죽어라 밟았단다.

환장하게도 그녀는 내내 말이 없었다. 나중엔 오히려 말을 할까봐 어찌나 조마조마한지 미치겠더란다. 그러다가 그녀의 발을 우연히 봤는데 맨발이었고..희다 못해 푸르딩딩 하더란다. 언젠가 본 물에서 건져낸 시체의 다리 같이...

그리고는 기억의 필름이 끊겼다.

...다음순간 불야성의 도심이었고 옆자리는 어느새 비어있더란다. 이젠 살았구나 하는 안도의 눈으로 본 도시는 어찌나 휘황찬란하고 좁던 도로도 어찌나 넓고 평탄하던지...그러나 광명을 지나 개봉동을 지나며 어쩐지 자꾸 이상한 느낌이 들더란다. 못 보던 광고선전탑. 전에 안보이던 대형건물, 넓은 도로가 너무 헷갈려 다른 도시 같기도 하더란다. 하지만 목적지인 영등포 문래동은 비교적 온전?하더란다. 그런데 화주인 조사장은 없고 조사장 아들이라는 사람이 나와 어리둥절하더란다. 이미 몇사람이 차로 다가와 술렁대고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면 그는 순식간에 20년 8일후의 세계로 떨어져버린 것이다!!

화물차가 엄청 구형이고 별 소용없는 화물이 증거이고 주행거리가 증명해주는 데도 당연 누구도 그의 말을 안 믿었고 회사에선 이십년전에 절도로 고발해두고 있는 상태였다. 즉 시간 여행을 했다면 그도 늙지 않았어야 했지만 그의 얼굴이나 몸이 이십 년 커녕 삼사십년은 늙어 보이는 걸 도대체 어찌 설명하란 말인가?

다시는 차 운전을 안할 생각이라고 하는 그의 슬픈 얼굴을 보며 나는 그의 말을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엄청 헷갈렸다. 어떤 신의 섭리가 작용해서 그의 이십년 청춘을 앗아갔단 말인가? 립밴 윙클, 혹은 믿거나 말거나 토픽에서나 보던 불가사의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니...사람 겉모습만 보고 알 수 없긴 해도 나는 그의 말이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꺼이 술값을 내가 계산했다.

오로 고스트콜롬보님들의 분석은 어떠하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