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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펀글] 세계를 점령한 한국의 청소년 기사들 |
| 글쓴이 멜랑꼴리 조회 165 |
작성일 2003-07-04 오후 3:31: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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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六小龍·十小虎, 일본의 황금 트리오는 한국의 적수가 아니다
한국 바둑팀의 최강 팀워크
2002년의 한국 축구팀과 히딩크 신드롬을 지켜보면서 빙그레 웃던 집단이 있었다. 한국 바둑팀이었다. 월드컵 4강을 기적이라고 했다. 「오로지 실력」을 기치로 내세운 히딩크의 프로정신은 신선한 충격, 그 이상이라고 했다.
그런 감탄사의 홍수 속에서 한국 바둑팀은 빙그레 웃고 있었다. 한국 바둑팀은 세계 4강을 목표로 한 적이 없었다. 세계 4강은 한국 바둑팀의 목표가 될 수 없었다.
한국의 프로 종목 가운데 가장 먼저 뿌리내리고 자리 잡은 것은 바둑이었다. 프로 종목 가운데 가장 프로적인 모습을 보여 준 것도 바둑이었다. 바둑은 오로지 실력으로 말하는 진정한 프로정신의 마당이었다.
한국 바둑팀은 1990년대 중반에 확실한 세계 頂上으로 올라섰고, 1990년 후반부터 2002년까지는 국제무대에서 메이저 타이틀 10회 연속 우승, 이것저것 합하면 무려 17회 연속 우승 행진을 했다.
그것은 「오로지 실력」에 의한 것이었다. 판정시비나 경선 불복, 결과를 다시 확인하자는 해프닝 같은 것은 있을 수 없었다.
20세기 막판에서 21세기 초입으로 이어지는 시기에 벌어지고 있는 세계 바둑 대회의 양상은 언제부턴가 아주 비슷한 패턴을 반복하고 있다.
개인전에서는 曺薰鉉(조훈현)과 劉昌赫(유창혁), 李昌鎬(이창호) 세 사람 가운데 한 명이 타이틀을 차지하고 있다. 번갈아 차지하고 있는 모습이다.
단체전에서는, 명실공히 세계 랭킹 1위인 이창호가 당연히 제1將, 즉 主將(주장)이었고 조훈현과 유창혁이 2將, 3將을 맡았다. 대개는 3將이나 2將 선에서 마무리가 되었다. 조훈현과 유창혁이 무너지면 이창호가 끝을 내 주었다.
이창호는 마치 야구에서의 선동열과 같아서 개인전에서는 완벽한 선발이었고, 단체전에서는 철옹성의 마무리였다. 아직 이변은 없었다.
조훈현과 유창혁, 두 전폭기가 출격해 한 차례 공습을 하고 나면 적진은 초토로 변하기 일쑤였다. 그러면 세계 최강의 지상군 이창호의 탱크부대가 그대로 밀고 들어가 깃발을 꽂는 식이었다.
1990년 중반에는 한국의 頂上이 곧 세계의 頂上으로 인정받기 시작할 때다. 그 때만 해도 한국은 꼭대기 몇 명은 강하지만, 허리가 약해서 한국의 頂上 유지는 시한부일 것이며, 특히 전면전이 벌어진다면 한국은 동양 3강에서 아마도 3위에 머물 것이라는 소리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는 그런 것들도 다 옛날 얘기가 되었다.
요즘 세계대회에 출전하는 한국팀을 보면 으레, 프로 입문 5년차 이하, 아직 귀밑의 솜털이 채 가시지 않은 여드름의 10代 소년 아니면 20代 초반의 청년들이 번갈아 선봉을 맡고 있다. 나이나 경력으로 보아 중견에 속하는 얼굴들이 잘 보이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허리가 약하다는 말은 일부분 맞다.
1980년대, 조훈현과 徐奉洙(서봉수)가 백년전쟁을 벌이던, 이른바 「조·서 시대」에는 조훈현·서봉수를 목표로 올라오던 도전 5강―1950년대 출생인 張秀英(장수영), 白成豪(백성호), 金秀壯(김수장), 姜勳(강훈), 徐能旭(서능욱)―이 한국 바둑팀의 허리로 주목을 받고, 그들 뒤에는, 1960년대 출생인 梁宰豪(양재호), 崔珪昞(최규병) 등이 새로운 허리로 기대를 모았으나, 중국과 일본의 허리에 비한다면 조금 아쉬운 점들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한국팀의 소년과 청년들은 중국과 일본의 중견들보다 더 훌륭하게 허리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 프로 동네에서도 나이나 경력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이 승부의 세계라면 나이나 경력은 그 자체의 의미밖에는 없을 것이다.
한국 바둑계의 頂上 지도
2003년 2월 현재 시점에서, 21세기 한국 바둑팀의 선수 구성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最頂上圈에는 50세의 조훈현, 37세의 유창혁, 28세의 이창호가 있다. 이들은 호나우두, 지단, 피코 등에 비견되는 세계적 톱 스타다.
50세의 서봉수가 침묵을 지키고 있는 것이 아쉬운데, 서봉수는 1980년대 후반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의 기간에는 1993년 제2회 應昌期(잉창치)배 우승, 1997년 眞露(진로)배에서 바둑사상 空前絶後(공전절후)인 9연승 싹쓸이 신화, 2000년 시즌 국내 최대 타이틀 LG정유배 우승 등 3∼4년 주기로 한 번씩 대박을 터뜨리고 있어, 아직 제쳐 놓기에는 망설여진다. 주기대로라면 올 시즌에 뭔가 한 방이 나올 때이니 귀추가 주목된다.
▲정상권에는 19세의 李世乭(이세돌) 3단이 돋보인다. 2003년 오늘의 시점에서는 이세돌을 단순히 정상급이 아니라, 조훈현·유창혁·이창호 등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최정상급으로 인정하는 사람도 많다.
그도 그럴 것이 이세돌은 2002년 시즌, 국제무대에서는 제15회 후지쯔(富士通)배를 쟁취해 세계 챔프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국내에서는 주니어 기전인 신인왕전과 신예프로 10걸전을 석권한 데 이어 LG정유배와 KTF배 등 메이저 타이틀을 차지, 5관왕에 올랐으니 말이다.
더욱이 후지쯔배 준결승에서 이창호를 꺾은 것과, 후지쯔배 결승과 KTF배 결승에서 연달아 유창혁을 꺾은 것이 컸다.
그래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이세돌을, 조훈현·유창혁·이창호와 함께 한국 바둑팀의 4天王으로 불러야 하며, 4天王 내의 서열에서도 6관왕 이창호에 이어 2위, 2002년은 이창호·이세돌 兩强(양강)시대, 혹은 이·이 시대의 원년으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소리도 높다.
4天王이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조훈현·서봉수·유창혁·이창호의 「4인방」에서 서봉수가 빠지고 이세돌이 들어가면서 새롭게 생긴 이름인데, 아무튼 한국 바둑팀은 과연 현재를 3천왕 시대라고 불러야 할지, 4천왕 시대로 불러야 할지, 아니면 이·이 시대로 불러야 할지 즐거운 고민을 하고 있다.
▲A급으로는 28세의 崔明勳(최명훈)과 24세의 睦鎭碩(목진석)이 꼽힌다.
두 사람은 1990년 중·후반에 「포스트 이창호」 1·2위를 다투었는데, 현재로선 후배 이세돌에게 일단 추월당한 것으로 보인다.
창창한 나이여서 再역전의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것이니 두고 볼 일이지만, 승부 세계의 독특한 관성을 생각한다면 간단한 일은 아닐 것이다. 非충암계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음은 아직 급을 매기기에는 좀 이른, 나이로는 14세에서 20代 초반, 段(단)으로는 초단부터 5단 사이의 청·소년들이다. 3단 그룹이 主流이다.
이들은 한국 바둑팀의 벌떼 군단이다. 우선 수적으로 아주 많고, 거의 전부 충암 졸업 혹은 재학의 동문들이어서 평소엔 호형호제하면서도 승부에서는 한 치의 양보 없는 난형난제여서, 채점을 하고 등수를 매기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이들은 어리고 경험이 적지만, 그게 승부에서는 장점일 수도 있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다.
오랫동안 「제비」, 「부드러운 바람」, 「빠른 창」 등으로만 불리다가 어느 때부터인가 「戰神(전신)」이니 「화염방사기」니 하는 무시무시한 별명으로 변신한 조훈현인데, 그런 「조훈현 선생님」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선생님에게 맞아본 경험이 없어 선생님의 매가 얼마나 아픈 것인지도 모른다.
「일지매」 혹은 세계 최고의 공격수로 불리는 유창혁 대선배님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래서 반전무인, 조훈현·유창혁이라는 상대를 의식하지 않고 소신껏 두다 보니 자주 좋은 결과를 얻는다. 바로 위 선배 이세돌이 조훈현·유창혁을 자주 이기고, 이창호와 대등한 경기를 펼치는 것을 보는 것도 이들에게는 결정적 힘이 되고 있다. 목표 설정이 단순하고 쉬워진 것이다.
이들은 세상 물정에는 아직 어둡지만, 승부에서는 이미 전문가의 식견이 생긴 터라 적어도 이세돌 형이 조훈현 선생님이나 유창혁 대선배님과 비교해 같거나 조금 앞선다고 믿고 있으며, 『우리의 목표는 조훈현 선생님도 유창혁 대선배님도 아니고, 이세돌 형은 잘 모르겠고 아무튼 목표는 이창호 큰형이다』라고 말하고 싶어하는 눈치다.
그래서 이세돌 형이 고맙다. 이세돌 형은 그 또래에서 아주 가까운 형인데, 그 형이 조훈현 선생님, 유창혁 대선배님과 이기고 지고 하니 우리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그렇게 될 것이고, 그러면 결국 남는 사람은 이창호 큰형뿐이니까 말이다.
이들을 소개하면서 첫 머리에 벌떼군단이라고 한 것은, 이들의 활약이 국제무대에서도 아주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일본은 국제대회에 출전하는 선수의 99%가 9段이다. 9단이 아닌 경우에는 7, 8단이다. 국제대회에 6단 이하의 선수가 출전하는 예는 전무하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중국은 段이 워낙 우리나 일본과 달리 제멋대로이므로 같은 잣대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5단 이하가 출전하는 예는 드물다.
그런데 한국은 3단이면 단골이며 초단, 2단도 의젓하게 티켓을 들고 대회장에 나타나 명성이 자자한 중국·일본의 9단들, 내로라 하는 백전노장들과 기량을 겨루며 반타작 이상의 성적을 올린다. 중국·일본의 바둑 관계자들은 비아냥과 시샘과 경악이 뒤범벅된 착잡한 표정으로 『한국은 9단과 3단만 있는 것 같다』며 고개를 흔들곤 한다.
한국 바둑의 「허리」는 3단의 청소년 그룹
한국 프로바둑계는 꼭대기와 신예만 있고, 유사시 꼭대기를 대신할 수 있고 신예를 이끌 수 있는 30∼40代 나이의 6∼8단 그룹이 없는 일종의 기형구조,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허약구조 아니냐는 비아냥이다.
그러나 언제 저런 어린 재목들이 저렇게 빨리 성장했을까 하는 것에 대한 시샘이며 경악이다.
그렇다. 한국 바둑은 그들이 말하는 의미의 허리는 없다. 그러나 허리가 따로 있나. 허리 역할을 하는 선수가 있으면 되는 것 아닌가. 한국 바둑팀의 허리는 30∼40代 나이의 6∼8단 그룹이 아니라 3단이 主流를 이루고 있는 청소년들이다. 일견 기형구조 같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新·舊(신·구)의 멋진 조화 아닌가.
현재 한국 바둑팀의 허리 역할을 해 주고 있는 이들 가운데, 성적이 더 뛰어나고 인상적인 얼굴들을 훑어보면 이렇다.
▲趙漢昇(조한승). 1982년 11월생으로 1995년에 입단해 현재 5段이다. 1983년 3월생 이세돌과는 나이도 비슷한데다 입단 동기여서 친구로 지낸다.
승단 속도가 매우 빠르고, 입단 직후부터 성적을 내기 시작했지만, 신인왕전 우승말고는 결정타가 없었는데, 이번 시즌 LG배에 등장해 국제무대에 얼굴을 알리면서 4강에 올랐다. 국수전에서 조훈현을 꺾고, 이창호 국수에게 도전장을 내밀면서 타이틀 무대에 들어왔다. 타이틀 획득에는 실패했다. LG배에서의 활약이 기대된다.
신예 중에서는 段도 높고 고참이어서 어느덧 중량감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대신 좀 서둘러야 할 듯한 처지다.
가볍고 차분한 기풍인데 잔수에 밝다는 평이다.
▲崔哲瀚(최철한). 1985년생으로 1997년에 입단해 현재 3段이다. 초등학교 시절에 이미 당돌한 소년으로 이름을 날렸다.
세계 단체전인 농심배에 2001·2002년 시즌 연속 출전해 3연승과 2연승을 올리며 월드 소년스타로 각광받았다. 이후 농심배는 한국 소년 신예들의 국제대회 데뷔 무대가 되는데, 물꼬를 튼 소년이 최철한이었다.
2002년 국내 무대에서는 가장 큰 규모로 창설된 KT배 프로기전에서 일약 결승에 진출, 조훈현과 격돌했다. 1승2패로 타이틀은 놓쳤지만, 넘치는 기백과 재주를 보여 주었다. 1승의 의미도 컸다. 200명 한국기원 프로기사 가운데 조훈현에게 1승을 올린 사람은 열 손가락 이내니까. 공격형 바둑이다.
송아지 3총사
▲朴永訓(박영훈). 1985년생으로 1999년에 입단해 현재 3段이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입단한 새내기들은 대부분 許壯會(허장회)·權甲龍(권갑룡)·金原(김원) 등 이른바 3대 바둑도장 출신인데, 박영훈은 崔珪昞(최규병) 9단이 공을 들여 배출한 첫 제자. 최규병은 세계 최대의 바둑가문인 조남철 패밀리의 일원이며, 세계 최대의 바둑 명문 충암의 리더. 그런 최규병의 수제자라는 이유에서인지, 박영훈은 입단할 때부터 별명이 「어린 왕자」였다.
입단 2년차, 2段이던 2001년 12월 박카스배 천원전에서 우승하면서 미완의 대기임을 공인받았다. 최저단 타이틀 획득 타이기록이었다. 2단의 타이틀 획득은 1971년 서봉수 2단이 조남철 8단의 「名人」에 도전해 3승1패로 타이틀 쟁취한 것이 당시까지의 신기록이었다.
입단 후 최단 기간 타이틀 획득에서는 서봉수 다음으로 2위의 기록. 서봉수는 입단 1년8개월, 박영훈은 만 2년이었다. 획득 나이로는 서봉수가 18세 3개월, 박영훈은 16세 8개월이었다.
얼마 전까지는 기록을 비교할 때 몇 년만에, 혹은 몇 살 때 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몇 년으로는 안 되고, 몇 개월까지를 밝혀야 한다. 기록 경쟁의 연령과 年數(연수)가 해마다 낮아지고, 짧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최연소 타이틀에 빛나는 이창호의 기록(14세 1개월, 1988년 KBS바둑왕전)은 입단 3년 만에 이루어진 것이었다.
박카스배를 차지해 정말 「어린 왕자」가 된 박영훈은 올 초에 끝난 농심배에서 4연승으로 성가를 높였다.
철저한 실리파. 따라서 먼저 실리를 차지한 후, 실리를 차지하느라 엷어진 돌들을 타개하는 것에 승부를 거는 바둑이 많다. 이를테면 예전의 사카다(坂田榮男)나 서봉수 스타일이다.
최철한과 박영훈 그리고 이들과 동갑이며 1998년에 입단해 이들과 나란히 지금 3단이며 린하이펑(林海峰) 바둑을 연상케 한다는 기풍의 또 한 소년 元晟溱(원성진), 이렇게 세 사람을 「송아지 3총사」라고 부른다. 1985년생이면 소띠인데, 아직 장성한 소가 아니니 송아지다. 송아지 3총사는, 세기가 바뀌면서 한국 바둑계에 불어닥친 신예 바람의 발원지였다.
그러나 송아지 3총사가 바둑계의 막내로서 사랑을 독차지한 시간은 짧았다. 막내 후배들이 줄지어 등장하고 있는 까닭이다.
21세기의 한국 바둑계
21세기의 한국 바둑계는 아마도 풍요의 神으로부터 어떤 점지, 多産(다산)의 축복을 받은 듯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연년생으로 건강하고 잘생긴 사내아이들이 태어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나같이 탐나는 소년들이지만, 그 중에서도 宋泰坤(송태곤)과 尹畯相(윤준상)이 눈에 들어온다.
▲宋泰坤은 1986년생. 이제 17세가 되었다. 17세가 되는 올해 초 박카스배를 차지했다. 정확히 16세 4개월, 입단 3년 1개월의 기록이었다. 이창호에 이어 최연소 타이틀 획득 2위. 그러나 그런 기록보다도 돋보이는 것은, 박카스배 결승의 상대가 조훈현 9단이었다는 사실이다.
전투력이 뛰어나고 힘이 좋아 「소년장사」로 불리는 소년. 「戰神」 조훈현을 상대로 전투를 벌여 타이틀을 따냈다는 사실이 바둑계 인사들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있다.
▲尹畯相은 송태곤보다 더 어리다. 1987년생으로 16세. 2001년에 입단한 햇병아리. 위의 형들과는 「입단한 世紀(세기)」가 다르다.
입단 3개월 만에 LG배 본선에 진출했다. 세계대회사상 최단기 본선 진출의 기록이었다.
송태곤처럼 전투를 즐기고 힘이 좋아 이미 「윤펀치」라는 별명을 얻었다. 틀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착상으로 주위를 놀라게 하곤 한다.
마음에 드는 신예들의 이름을 거론하자면 한이 없다.
이창호 또래로는 金明完(김명완·25), 安祚永(안조영·24)이 있고, 이들과 이세돌·조한승 사이에는 安達勳(안달훈·23), 姜至省(강지성·22)이 있다. 이 밖에도 미처 이름을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수두룩하다. 이름이 빠진 청소년 기사들에게 미안할 따름이다. 벌떼군단이라고 한 것은 결코 과장된 修辭(수사)가 아니다. 동물의 세계라면, 바둑이 단체전만이라면 이들 벌떼군단 앞에서 살아남을 동물, 견뎌낼 고수는 없다.
이 벌떼군단은 새 봄이 오면 그야말로 일제히 「蜂起(봉기)」할 준비를 하고 있다. 한국 바둑계는 초단과 9단의 구분이나 차별이 무의미하다. 이들 벌떼군단의 競演場(경연장)인 1차 예선은 악명 높은, 사하라 사막의 지옥의 랠리 이상이어서 타이틀 매치보다 힘겹다.
조훈현은 말할 것도 없고 유창혁과 이창호도 그랬고, 이세돌까지도 등장할 무렵에는 황태자였으며, 황태자로서 사랑받고 촉망받는 일정 기간이 있었다. 이기면 찬사를 받고, 지면 격려를 받았다. 져도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를 잊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 벌떼군단에서는 황태자가 따로 없다. 따라서 사랑과 촉망을 누릴 기간도 보장된 바가 없다. 모두가 황태자이고 모두가 황태자가 아니다.
비슷한 또래의 동료·친구가 많아 든든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불행하기도 하다. 이기면 찬사를 받는 것은 같겠지만, 지면 곧 잊혀지게 되어 있다. 사람들은 기다려 주지도 않고, 기억해 주지도 않는다. 기다려 주고 기억해 줄 소년들이 너무 많아 누구 한 사람에게만 시선을 고정시킬 수가 없다.
회복의 기미 보이는 日本 바둑
중국과 일본의 사정은 어떤가.
일본은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20세기가 끝나던 때까지는, 국제무대에서 번번이 수모를 당하면서도 태연하려고 애쓰면서 프로바둑 본바닥의 자존심과 체면을 지키려는 모습이었다.
세계대회라는 것이 절반은 승부, 절반은 이벤트 아니겠느냐, 우리는 그런 기분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후발 주자들과 악착같이 다툴 마음은 없다, 승부다운 승부는 아무래도 일본 국내 기전의 바둑 아니겠느냐는 분위기로 몰아가고 싶어하는 눈치였는데, 그것은 변명이고 자위였다.
趙治勳(조치훈·47), 고바야시 고이치(小林光一·51)→왕리청(王立誠·45), 고바야시 사토루(小林 覺·44), 왕밍완(王明琬·42)→요다 노리모토(依田紀基·37), 柳時熏(유시훈·32), 趙善津(조선진·33) 등.
1980년 이후의 일본 바둑계 빅 타이틀 홀더들의 얼굴이다. 화살표는, 타이틀 획득과 바둑계 지배의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대의 흐름을 표시한 것이다.
빅 타이틀 무대에 나타난 시기로는 조선진과 왕밍완이 그 중 최근인데, 이들 다음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위의 8명 가운데 3명은 한국인, 2명은 중국인이다. 일본 바둑의 現주소를 짐작케 하는 일이다.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일본은 자신의 열세를 인정하고 있다. 내리막길의 일본 바둑을 다시 세워 보려는 시도도 나타나고 있다. 현실을 인정하고 노력한 보람일까, 결과일까, 최근에는 회복의 기미도 조금은 보이고 있다.
다카오 신지(高尾紳路야·27), 하네 나오키(羽根直樹·27), 야마시타 게이고(山下敬吾·25) 등 「황금 트리오」로 불리는 그룹이 있다. 이들과 어금버금한 실력의 후배로는 장쉬(張木羽·23), 고노 린(下野 臨·22) 등이 기대주로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그래봤자 중국계 장쉬를 포함해 5명 안팎이다. 「황금 트리오」라 하지만 나이로는, 한국 바둑계라면 신진이 아니라 중견이다. 5명 중에서 누가 특출한지도 얼른 구분이 안 된다. 세계대회 선봉이 한국은 10代 후반∼20代 초반의 청소년들, 일본은 20代 후반의 청년들, 이런 차이가 있으며 성적도 우리가 앞선다.
조훈현 9단은 『그들 정도의 기재라면 한국에는 즐비하다』고 웃으면서도 『그러나 우리가 자만하거나 저들을 경시해서는 안 되며 일본에서도 빨리 어린 강자들이 나타나기를 바라야 한다. 그래야 세계 바둑 전체가 발전한다』고 말한다.
중국의 6 小龍
한국에 「벌떼군단」이 있고, 일본에 「황금 트리오」가 있다면 중국에는 「六小龍(6소룡)·十小虎(10소호)」가 있다. 여섯 마리의 작은 용과 열 마리의 작은 호랑이. 무협지의 작명 그대로여서 웃음이 난다.
6소룡은 녜웨이핑(衛平·51), 마샤오춘(馬曉春·39)의 뒤를 이어 현재 득세하고 있는 젊은이들. 유명한 창하오(常昊·27)를 비롯해 류징(劉菁·28), 저우허양(周鶴洋·27), 뤄시허(羅洗河·26), 왕레이(王磊·26), 딩웨이(丁偉·23), 샤오웨이강(邵 剛) 등이 포진해 있다. 저우허양이 이창호를 두 번 꺾어 각광받은 적이 있고, 왕레이는 이번 시즌 조훈현과 삼성화재배 우승을 다투어 실패했다.
10소호는 이들을 추격하는 일군의 호랑이들. 정확히 10명은 아니고 10여 명이 들락날락하고 있다.
후야오위(胡耀宇), 구리(古力), 치우쥔(邱峻), 콩지에(孔杰), 펑췐(彭筌), 황이중(黃奕中), 저우쥔지에(鄒俊傑), 둥옌(董彦), 왕야오(王堯), 시에허(謝赫), 류수첸(劉世振) 등이다. 후야오위는 얼마 전 농심배에서 한국 박영훈의 4연승에 이어 5연승으로 깃발을 날린 주인공이고 그밖에 구리 치우쥔 콩지에 펑췐 등의 이름이 낯익다.
6소룡은 한국의 정상급에는 조금 못미친다. 10소호는 한국 벌떼군단과 엇비슷한 실력이다.
이런 이유로 2003년 새 봄의 한국 바둑계는 현란하고, 한편 현란함이 지나쳐 어지럽다.
2003년이 열리면서 조훈현은 중국의 새로운 정상급 강자 왕레이(王磊)를 꺾고 제7회 삼성화재배를 차지했다. 대회 2連覇(연패)이고 세계대회 메이저 타이틀 아홉 번째 우승이며 개인 통산 157번째의 타이틀이었다.
이창호는 농심배 우승을 이끈 데 이어 일본이 재기 의욕을 불태우며 창설한 도요타덴소배 결승에서 중국의 간판 창하오(常昊)를 제압, 3000만 엔(약 3억원)의 상금과 시가 1억원 상당의 렉서스 승용차를 차지했다. 한국 바둑의 세계대회 20회 연속 우승이었다.
세계대회는 줄줄이 이어지고 국제 바둑의 파티는 계속된다.
2월에 제7회 LG배 결승에 이어 3월에는 제1회 정관장배 세계프로여류대회 결승과 제4회 春蘭(춘란)배 결승 등이 기다리고 있는데, 모두 한국 바둑이 결승에 올라가 있다. 지금의 추세와 기세라면 앞으로도 당분간은 한국의 연승 행진은 멈추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세계 최강의 여류 프로기사 루이나이웨이(芮內偉·40)마저 한국기원 소속이다.
한때는 루이의 독주시대였다. 한국 여류 프로기사들은 루이 앞에만 서면 작아지는 소녀들이어서, 루이가 혹시 우리 여류프로의 생태계를 파괴하는 황소개구리가 아니냐는 우려의 소리도 있었으나 기우였다.
지금은, 루이를 받아들인 것은, 한국기원 50년 역사상 「잘한 일」 베스트 10에 꼽힌다는 찬사가 나오고 있다. 루이 아줌마는 황소개구리가 아니라, 마치 지난날 조훈현이 한국 프로바둑의 수준을 성큼 끌어올렸던 것처럼, 여리고 수줍은 한국 소녀들이 아마조네스의 戰士(전사)로 변신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최근에는 한국산 여류 프로기사 朴志恩(박지은·20)이 치수고치기에서 루이나이웨이를 호선에서 정선, 정선에서 2점으로까지 밀어붙일 정도의 상황이고 보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바둑올림픽이 열린다면…
바둑올림픽이 열린다면 남녀 개인전·단체전, 아마도 그렇게 4종목을 기본으로 출발할 것이라고들 하는데, 바둑올림픽이 오늘 열린다면 한국 바둑팀은 4개의 금메달을 확보하고 있는 것과 같다는 것이다.
바둑올림픽이 열린다면, 그리고 세월이 더 흐른다면 바둑도 태권도처럼 체급별 경기로 치러질지도 모른다. 바둑은 한국의 메달밭이다.
포스트 이창호. 이것은 이제 한국 바둑계가 아니라 세계 바둑계의 화두다. 따라서 21세기 바둑계는, 포스트 이창호를 놓고 한국의 벌떼군단과 중국의 10소룡이 대결하고, 일본이 얼마나 빨리, 효과적으로 신예를 발굴·육성하느냐가 변수로 되는, 그런 양상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그게 언제쯤일까. 돌고 돌며 꼬리가 꼬리를 무는 질문의 물레방아가 되겠지만, 그 열쇠는 한국 바둑계와 이창호가 쥐고 있다.
현재로서는 한국 바둑계의 판도 변화가 세계 바둑계의 판도 변화에 직접,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어 있다. 한국 바둑계는 지금 판도 변화의 과도기인 것으로 보이는데, 변화의 패턴이 지금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수직적인 실력 서열이 아니라 수평적인 역할 분담으로 나아갈 조짐도 감지된다.
이창호는 물론 제일봉으로 버티고 있다. 부동이다. 부동의 시간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지, 그것은 이미 10년 전부터의 숙제였는데, 지금도 숙제다. 하긴 한국 바둑계는 출발점 趙南哲(조남철·80)로부터 金寅(김인·60)-조훈현을 거쳐 이창호에 이르기까지 숙제의 연속이었으니까,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이창호는 올해 28세. 40세까지 활동한다고 보면 앞으로도 10여 년은 부동일 것이다. 조금씩 흔들리기는 하겠지만, 흔들바위처럼 그렇게 흔들릴 뿐이지 굴러떨어질 것이라는 상상은 잘 안 된다.
조훈현이 50세가 되는 올해 초 삼성화재배에서 중국의 젊은이 왕레이와 그야말로 死線(사선)을 넘나드는 혈투를 벌인 끝에 타이틀을 차지한 것을 보면─조훈현 9단이 선천적으로 굉장히 강인한 체질이라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체력에서도 스승보다 강하면 강했지 부족하지 않을 이창호니 어쩌면 앞으로 20년쯤은 기다려야 할지도 모른다.
조훈현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고, 상대를 가리지 않고, 전투의 마당을 가리지 않고, 장소불문·상대불문·청탁불문으로 싸우고 있다. 절륜한 정력과 사그라들지 않는 정열이 놀라울 따름이다.
주변에서는 체력 안배, 시간 안배를 권하고 있으나, 이제는 한 번 밀리면 회복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었다는 사실에 오히려 더욱 투지를 불사르고 있다. 그게 한국 벌떼군단에게는 또 더할 나위 없는 良藥(양약)이 되고 있다.
조훈현은 당분간은 벌떼군단의 명조련사 역할을 더 할 것이다. 그리고 쇠락한 모습은 끝내 보이지 않을 것이며, 누군가의 말처럼 나이가 많이 들면 한국 바둑계의 서쪽 하늘을 벌겋게 물들이는 壯觀(장관)을 연출할 것이다.
스타를 탄생시키는 대회들
한국 벌떼군단의 스타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국내대회 박카스배를 거쳐 국제대회인 삼성화재배, LG배, 농심배에서 스타 탄생식을 갖는다는 점이다.
박카스배는 이번 시즌 송태곤으로부터 거슬러올라가 지난해 박영훈, 그리고 그 전의 이세돌, 3년 연속 3단 이하의 타이틀 홀더를 배출했는데, 바로 이 세 사람이 2003년의 최고 상한가를 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조훈현이라는 巨峰(거봉)을 등반한다. 조훈현 9단에게 1승을 건져 보았느냐 못 했느냐는 스타가 될 수 있느냐, 별로냐의 시금석이다. 조훈현 9단에게 이겨 보는 것, 그것은 필수의 통과의례다. 이세돌·조한승·최철한·송태곤 등이 이 통과의례를 거친 청소년들이다.
에베레스트 이창호 앞을 지키고 있는 안나푸르나 조훈현. 이들을 보며 한국의 청소년들은 히말라야 등반을 꿈꾸고 있다.
유창혁의 변신
유창혁은 2∼3년 전부터 타이틀 사냥의 작전을 바꾼 모습이다. 국제대회에 주력하고 있어, 국내기전에서 이창호·유창혁의 대결을 잘 볼 수 없게 되었다. 유창혁이 국내 기전에 뜸해지면서 벌떼군단은 조훈현 외에 또 한 사람 강한 선생님과 스파링할 기회는 얻기가 힘들어졌다. 그 점은 좀 아쉽다.
대신 유창혁은 세계대회에서, 웬만한 강자들은 정리해 주면서 후배들의 진로를 터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믿을 만한 형이 뒤에 있으니 벌떼군단의 소년들은 누가 시비를 걸어와도 겁나지 않는다.
유창혁은 앞으로도 계속, 앞으로는 더욱 굵직한 세계대회에 전념할 것으로 보인다. 마치 지난날 일본의 후지사와가 일년에 단 하나, 최고·최대의 타이틀 「棋聖(기성)」의 도전 7번기에만 전력투구를 했던 것처럼. 세계 타이틀 하나면 1~2년 농사는 충분하다는 기분파 유창혁다운 발상의 전환이다. 이창호·조훈현·유창혁·이세돌, 한국 4천왕은 이렇게 수평적 역할 분담으로 나아가고 있다.
2003년 새 봄, 한국 바둑계 하늘에는 천하무적의 수리매 넷이 떠 있고, 풍요의 동산에는 벌떼군단이 웅웅거리는 소리가 한층 더 요란해지고 있다. 이들은 떼를 지어, 바다를 건너 일본으로, 중국 대륙으로 날아갈 것이고, 일단 날아가면 어딘가를 초토화하고 돌아올 것이다.
한국의 독주가 세계 바둑 발전에 혹시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다는, 날카로운, 그러나 오히려 상투적인 지적의 소리도 있으나, 그것은 먼 훗날의 얘기일 뿐. 다만 하나, 한국 바둑이 경계하고 생각할 것이 있다면 중국의 잠재력과 성장이며, 오늘 한국 바둑의 흥왕이 혹시 절정의 꼭지점이 아닌가를 수시로 점검해 보는 일이다.●
<이광구.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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