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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둑돌에 비친 그리운 얼굴 |
| 글쓴이 음모자 조회 272 |
작성일 2003-06-30 오전 7:43:0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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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장모님께서 김치를 담아 오셨습니다.
가끔 싸가지고 오시는데 항상 두종류를 가지고 오십니다.
하나는 젓국이 듬뿍 들어가고, 포기 사이사이에 생선토막이
나오는 흉칙한(?) 물건이고, 다른 하나는 제가 먹을수 있는
전혀 젓국이 들어있지 않은 자연산이 그것입니다.
워낙 입이 짧은 사위까지 생각해주는 장모님이 너무 고맙군요.
덕분에 저도 고향의 어머님 생각이 덩달아 납니다.
서울에서 자취하며 대학을 다닐때 한두달에 한번씩 고향엘 내려
갔습니다.
김치며 밑반찬을 가져오는 핑계지만 속내는 용돈 때문이었지요.
토요일에 내려와 하루저녁이란 짧은 시간도 고향 친구들과의
술과 얘기에 홀딱밤을 새고 아침나절 어머님이 챙겨놓은 음식
만 들고 줄행랑을 쳤던 철없던 때였습니다.
그마저도 그대로 들고가지 않고, 김치는 냄새가 난다는둥 국물
이 흐른다는둥 투정을 부리며 애써 쌓아놓은 짐을 반으로 줄여
갔던 불효의 시절이었습니다.
있는돈 없는돈에 옆집 가게에서 급히 빌려다온 그 아픈 지폐들을
제 주머니에 넣어주시고도, 더 주지 못하는 처지를 안타까워
하시던 어머님의 얼굴이 기억납니다.
굶지말아라. 돈떨어지면 연락해라. 공부 열심히 해라. 기죽지
말고 지내라. 술담배 조금씩 해라. 연탄가스 조심해라. 조심
조심 다녀라. 아프지 말아라. 싸우지 말아라.
온갖 걱정과 당부를 털어내시며 문앞에서 배웅하시는 어머니를
뒤에 두고 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려 걷던 그 골목길.
뒤돌아보면 어머니는 또 그만큼의 거리에서 손짓으로 인사를
하시고, 몇걸음 지나 다시 뒤돌아보면 어머니는 또 그만큼의
거리에서 고개를 주억거리시고...
끝내 버스를 타고 떠나는 저의 뒷모습이 사라질때 까지 서 계시
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맺힙니다.
흔들리던 차에 거품이 일고 스스로 주체못해 슬그머니 피어나는
냄새를 손으로 틀어막으며 도착한 서울집에서, 보자기 열어내
국물 닦아내며 손수 담그신 고추장과 함께 밥한솥가득 비벼냈던
그 김치맛.
아마 영원히 잊진 못할것 같습니다.
장모님이 주신 김치를 하루묵혀 냉장고에 넣다가 댓바람에 목소리
라도 들으려 고향집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식전부터 무슨일이냐는 어머님의 걱정에 괜한 주름하나 늘렸
다는 자책이 듭니다.
오늘 두는 바둑에선 어쩌면 어머님 얼굴이 돌에 비칠지도 모르
겠군요.
어머님 얼굴, 형제들 얼굴, 또 그리운 그 얼굴들...
그 소중한 얼굴들을 살리려 최선을 다해 두는 한판도, 또하나의
즐거움 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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