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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이역 簡易驛 』
눈 내리는 갈대숲 사이로 미처 갈 길을 잃어버린 세월의 잔재들만이 서성거렸다.
오늘도 어김없이 그 시간에 열차는 지나고 있었지만 손 한번 흔들어주는 그때의 그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아무도 기다려주지 않았다. 반가움에 서로 얼굴을 비비며 포옹하는 그런 모습은 더욱 없었다. 지나간 과거만을 회상하는 간이역만이 그곳에 서 있을 뿐이었다.
한 때는 추억과 긴 기다림 낭만이 서려 있었고 삶의 또 다른 목적지로 향하는 발걸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던 곳이다. 소박했지만 정겨운 풍경들이 펼쳐지던 그런 간이역이었다.
사람 사는 맛과 여과되지 않은 숱한 사연들 이별과 만남이 서로 공존하며 때로는 웃음과 눈물이 길게 뻗은 철길 위로 진하게 뿌려졌었다.
어린 나이에 새 희망을 찾아 무작정 도시라는 낯선 거리로 나설 때도 간이역은 하나의 징검다리 역활을 해 주었다.
병든 남편과 어린 자식들을 다 내버리고 군 서방과 함께 도망치듯 빠져나가던 도피자들에게도 일조했던 간이역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삶의 연결고리 같았던 이 간이역을 기억 속에서 내몰고 애써 지워버린 듯 잊고 살아왔다.
가끔 지나간 추억과 희망을 싣고 지나가는 열차는 외마디 비명을 토해내 보지만 아무도 들어주지를 않았고 듣는 사람도 없었으니 열차는 그냥 그대로 우리 곁을 스쳐 지날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이 되고 말았다.
인적이 끊기고 사랑이 떠나가고 온갖 추억들은 빛바랜 이파리처럼 너덜해져 숨어 버렸다.
쓸쓸함만이 그 자리를 묵묵히 지키고 있는 모두가 떠나버린 간이역은 폐허처럼 조금씩 조금씩 허물어져 갔다.
모든 것에는 시작과 끝이 존재한다.
우리의 인생도 마지막 종착역을 향해 질주하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과정도 순간순간이 간이역에 잠시 머물다 가는 목적지 없는 나그네라 하지 않을 수 없다.
....................簡..易..驛......
모두의 애환과 우리의 숨결이 깃들어 있는 늘 우리를 기다려주는 고향의 아늑한 어머니의 품속 같던 이 간이역도 세월이라는 장막에 가려져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다.
눈이 내린다............. 발길이 끊어져 정적만이 감도는 이 간이역에 모든 아픔과 그리움을 덮어라도 주려는 듯 회색빛 눈이 소리없이 역사 침목 위에 내리고 있다.
간이역 작은 뜰에는 아는지 모르는지 백목련 몇 그루가 서로 마주 보고 길게 늘어선 영원히 만나려야 만날 수 없는 두 갈래 철길만을 한없이 한없이 바라보고만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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