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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맞수 선달형
첫판부터 꼬였다. 거의 다 이긴 바둑에서 굳히기를 위해 두텁게 돌을 놓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패를 걸어 온다.
잠시 장고를 하며 바둑판을 쳐다보니 대마가 사활에 걸렸다. 그 패로 인해 승부의 향방이 결정나는 순간이다. 바둑 용어로 미생인것이다.
몇번의 패 교환이 이뤄지고 팻감을 세어보니 나는 3개 상대방은 4개 이길수 없는 싸움 인걸 아는 순간 기운이 빠진다. 또 역전패를 당했다.
승부의 세계에서는 끝까지 방심하면 안된다는걸 알면서도 매번 지고 나서야 후회를 한다.
상대는 인터넷 바둑 사이트 사이버오로 에서 6단 최강이다. 컨디션이 좋을때는 7단까지 들락거리기도 하지만 맞수인 나하고의 승률은 6대4 정도로 조금 앞선다.
초반에는 포석에 강한 내가 유리하다가 중후반을 거치면서 점점 형세는 미세해 진다. 흑을 쥔 내가 20여집 정도 앞서 가다가 그의 현란한 변칙 바둑과 패를 당하며 결국 졌다.
그의 바둑은 부드러우면서도 기민하다. 한마디로 승부의 호흡과 흐름을 잘읽고 인터넷 바둑이 보급 되기전부터 기원에서 내기 바둑으로 단련된 산전수전 다 겪은 승부사다.
그에 비해 나의 바둑은 포석과 두터움의 실리를 중요시 하는 스타일로 6단 중에서는 제법 중간 이상의 실력이라 할수있다.
거의 20여년 넘게 알고 지낸 선달형은 나하고 바둑 맞수이자 사석에서는 형님,아우하며 지낸다. 부산.대구를 오가며 자주 만났고 술잔을 기울이며 인생을 이야기 하던 사이다.
대구에서 개인택시를 하며 술과 바둑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 대명 그대로 팔공산 밑에 사는 선달이라 하여 팔공선달로 불리운다.
또한 그는 대단한 필력가다. 오로바둑에서 나도작가다란 코너에서 작가로 활동하였고 개인택시를 하면서 생긴 고충과 애환 그리고 가정사까지 진솔한 글을 쓴다. 전국을 다니면서 100대 유명 사찰을 돌며 선달의 사찰순례에 관한 기고문이 그의 대표작이다.
요즘 같았으면 유투브로 활동을 해도 꽤나 인기 있었을것 같은데 시대를 앞서간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그의 유일한 약점은 쉬는 날이면 여지없이 취권 바둑을 둔다는 것이다. 소주1~2병 정도는 거뜬하지만 3병째 들어가면 집중력이 흐트러져 실수를 많이 한다.
할머니를 떠나 보내기전 10여년을 병수발 하느라 고생했고 아버지 병수발 30년, 이젠 홀로 남은 노모의 병간호까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한집안의 맏이로서 아들로서 도리를 다하려는 그의 고독한 인생사를 들여다보면 그를 아는 사람으로서 숙연해 진다.
말은 안해도 아픈 동생이라고 누구보다도 따뜻하게 챙겨주고 응원해 주고 용기를 주던 선달형이 요즘 따라 많이 힘들어 하고 지쳐보인다.
그럴때마다 나는 조용히 그에게 대국신청을 한다. 바둑 한판 두면서 집중 하다 보면 아픔도 괴로움도 다 잊어 버린다. 그에게는 그게 최선의 위로다.
오늘도 우리는 엎치락뒤치락 하며 바둑을 두고 있다. 앞으로도 얼마나 더 긴세월을 맞수로 지낼지 몰라도 그렇게 서로의 아픔을 달래고 위로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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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워지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