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헤르만 헷세

안개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덩굴과 돌들 모두 외롭고

이나무와 저나무들

모두 혼자인 것을

나의 삶이 밝았을 때

친구들로 가득했지만

이제 자욱한 안개

아무 것도 보이지 않네

희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는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이 어두움을 모르는 이는

정녕 현명하다 할 수 없으리

안개속을 거니는 이상함이여

산다는 것은 외로운 것

누구도 다른사람을 알수 없고

모두 혼자 인 것을...

헷세의 데미안을 통해 인간관을 엿 볼 수 있다면 단편 ‘싯타르타’를 통해 그의 불교관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도 말했다.

전성기땐 친구들로 왁자지껄 했지만 늙으니까 안개속 같다고....

그러나 헷세는 안갯속의 헤메임을 통해 내면의 소중한 것을 찾아 미로를 걷는 노년을 보낸 사람이다.

은퇴후, 시골 그의 거처를 많은 이들이 더러 방문했지만 칼융과의 관계는 특별하다.

서로의 저서를 읽고 교감을 했지만 직접 만날 기회는 별로 없었다.

지독하게 내향적인 두사람의 조우이다.

정신과의사와 작가의 만남이지만 공통점은 있었다.

두사람 모두 반전주의자였으며 특히 헷세는 1, 2차대전 전쟁반대로 나치로부터 핍박을 받았으며 스위스로의 망명과 노후도 그 곳 시골에서 보냈다.

차를 마시고 그림을 그리는 작업실을 보여주었다.

다 그린 그림들과 그리다 만 그림등 다소 어수선한 곳이었다.

융의 시선이 한 곳에 꽂힌다.

물가에서 건너편을 바라보고 있는 소녀의 초상이다.

어디서 본 듯한 모습에 융은 기억을 더듬느라 눈은 그림에 멈춰있고 생각은 어지럽다.

“저 그림이 마음에 드시나요?”

“아...그렇군요. 며칠전 선생님과 약속을 잡고 그 날밤에 저 장면과 모습이 너무나 흡사한 꿈을 꾸었어요.”

“네에 그런일이.....”

두어시간의 대화를 끝내고 융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헷세는 서둘러 작업실에 들러 아까 융이 말했던 그 소녀의 그림을 포장해서 밖으로 나온다.

“이 그림을 드리고 싶군요. 저에게는 아득한 시절의 기억이 그리고 선생님에겐 며칠전의 기억이 있는 그림 같아서요..”

헷세는 실은 삼천여점의 그림을 그린 화가이기도하다.

정신과 의사이자 심리전문가인 융은 꿈을 통해 우리들에게 많은 이야기들을 남긴 사람이다.

융은 헷세보다 2년먼저 태어나 일년먼저 죽었다.

만남이란 그냥 스쳐가는 것이기도 하지만 어쩌면 그 무엇보다 소중한 우리의 흔적일지도 모른다.

위의 싯구절,

희피할 수도 없고 소리도 없는

모든 것에서 그를 갈라놓는

이 어두움을 모르는이는

정녕 현명하다 할 수 없으리....

헷세는 석가모니의 피안과 차안을 저렇게 표현하였을 것이다.

삶과 죽음 그리고 그사이의 공간을 표현하는 것이 꿈일지도 모른다.

중요하든 않든 무겁든 가볍든...

만남에서 이별....회자정리...

생자필멸이 맞긴하지만 그런 표현보단 회자정리가 더 나은 느낌이 든다.

생자필멸이란 용어를 너무 단순하게 의식하곤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너무 가벼히 여기는 인간들도 있다.

그 단순함 가운데 깊은 존엄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지도 않다.

사서 욕먹는다고 괜한 주댕이질로 만나보지도 못한사람들로부터 욕을 먹는 사람도 있다.

이 더운 날에.....

무식하니까 타인을 향해 무식하다 과감히 말하겠지만 이놈은 아마 피안와 차안의 사이 그 지점에서 늘 악몽을 꾸는 인생은 아닐까싶다.

꼬투리잡기보다 그 꼬투리를 의식의 저편으로 넘겨버리는 여유로움이 필요한 인생이다.

그건 그렇다치고....

칼구스타브융이 죽을 때까지 헷세의 소녀그림을 책상머리에 두었다고한다.

꿈 속에서 본 이루지 못한 첫사랑과 너무나 흡사했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 그림을 볼 때마다 햇세를 떠올리기도 했을 것이다.

헷세또한 과거의 기억을 그린 것이라고 하였다.

누구나 비슷활 것이다.

다만 오랜세월탓에 기억의 무늬와 색깔도 변할 수 있으니....

여운.....

경주 에밀레종소리의 여운처럼....우리들의 만남에도 그런 멋진 여운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