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Home > 커뮤니티 > 자유게시판 |
 |
|
|
| 묘비명. |
| 글쓴이 새벽21 조회 4237 |
작성일 2002-08-16 오전 7:41:00 |
|
사람에게 죽음은 세상 모든 것의 종착점이다. 죽은 육신은 그 영혼을 잠시 보관했던 그릇일 뿐이다. 그러니 망자에게 장례,더구나 호화장례 따위의 의식은 참으로 무의미하다. 어쩌면 그것은 순전히 산 자들의 스스로에 대한 변명이자 위안일지 모른다.
우리나라 묘지 면적은 국토의 1%를 넘는다. 이미 서울 면적의 두 배인데다 여의도의 1.2배에 해당하는 100만여평이 해마다 묘지로 바뀌고 있다. 분묘는 약 2100만기. 묘지 평균 면적이 15평으로,국민 1인당 주거공간의 3.5배나 된다.
다행히 장묘문화개선운동이 기대 이상의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른 분야에 비해 현저하게 뒤쳐진 우리의 장묘문화도 가파른 변화 물살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올해 초 20세 이상 남녀 1500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조사에서 86%가 묘지문제의 심각성을 걱정했으며,72%가 사후(死後) 화장을 희망했다. 실제 화장 비율도 1954년 3.6%→91년 17.8%→2000년 33.7%로 급상승하는 추세. 서울의 화장률은 지난해 54%를 돌파했다.
그러나 일본 99%,태국 90%,홍콩 72%,영국 68% 등에는 아직 한참 뒤진다. 사실상 100% 화장과 납골당 제도가 정착된 중국에서는 이제 유골 조차 보관하지않는 단계에 들어섰다. 미국의 경우 화장률이 12% 정도에 불과하지만 광활한 국토에도 불구하고 묘지는 1평 이하의 평장(平葬)만 허용된다.
몇 해 전 장묘문화개혁범국민협의회가 15대 국회의원 전원과 정당대표,광역자치단체장 등 정·관계 인사 1000여명에게 ‘화장유언 서약서’를 보낸 일이 있었다. 놀랍게도 호응한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부모 묘를 ‘명당’으로 옮긴 정치인은 더러 있었다.
지도층이라고 해서 다 그런 건 물론 아니다. 그들의 죽음 가운데 만인의 귀감이 된 감동적 사례는 많다. 문제는 눈도 꿈쩍하지 않거나 내놓고 시대 흐름에 역행하는 절대다수의 ‘명망가’ 집단이다. 시인은 이들의 헛된 욕망을 신랄하게 질타했다. 돈과 권력을 거머쥐었던 사람일수록 엄청난 호화분묘와 거창한 묘비명을 남겨 욕된 이름을 영원히 기억시키려 한다고.
“한 줄의 시는커녕/단 한 권의 소설도 읽은 바 없이/그는 한 평생을 행복하게 살며/많은 돈을 벌었고/높은 자리에 올라/이처럼 훌륭한 비석을 남겼다/그리고 어느 유명한 문인이/그를 기리는 묘비명을 여기에 썼다/비록 이 세상이 잿더미가 된다 해도/불의 뜨거움 굳굳이 견디며/이 묘비는 살아 남아/귀중한 사료가 될 것이니/역사는 도대체 무엇을 기록하며/시인은 어디에 무엇을 남길 것이냐”(김광규:묘비명)
대천덕 신부는 생전 누가 물으면 “태어나고 죽은 날만 묘비에 적겠다”고 답했다. 그리고 죽어서는 예수원에 묻힐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의 산골짜기 예수원에는 묘비가 없다. 한 평의 땅도 자리차지 하지않겠다던대로 화장 뒤 남은 유골만 거기 안치돼 있다.
한석동 논설위원 hans@kmib.co.kr
▶ 세상의 빛과 소금 ㅡ 열린 21
ㅡ 나라와 자연, 이웃을 사랑하는 열린 생각과 가슴이 따뜻한 기우들의 연대.
`오로기우님들의 동참을 기다립니다.`
→ buddhasson@empal.com
|
|
|
|
|
|
.gif){kind=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