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 9단은 올해 들어서 구리 9단에게 2전 전패를 당했다. 4승 2패로 앞서왔던 역대전적도 4승 4패 동률을 이뤄 이젠 상대적 우위를 주장할 수 없는 처지다. 또다시 패점을 쌓는다면 이젠 구리 9단의 자신감이 하늘을 찌르고도 남을 일. 상대가 아무리 대륙의 1인자지만 이창호 9단 사전에 3연패의 굴욕은 눈뜨고 볼 수 없는 일이다.
전투력만큼은 세계최강이라 자부할 정도로 엄청난 파괴력을 자랑하는 구리 9단. 초반부터 이창호 9단의 대마를 거세게 몰아붙이고 있다. 백1로 씌운 것은 이창호 9단의 도발을 강요한 솔깃한 유혹이다.
전면전과 타협의 길목에서 이창호 9단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참고도1 (뼈가 부러진다)
장면1의 백1은 구리 9단의 과감성을 잘 드러낸다. 백 모양도 온전치 않아 흑1로 젖혀 강하게 싸우고 싶지만 그럴 경우 어느 한쪽의 뼈가 부러지는 과격한 전면전이 기다리고 있다. 백16까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양상이다.
실전진행1 (치중 한 방!)
이창호 9단은 난전을 유도한 구리 9단의 주문을 멋지게 피해간다. 흑1, 3으로 안형을 갖추려하자 구리 9단은 흑대마를 계속 추궁하기에 무리가 따른다보고 백4의 보강을 서두른다. 백4는 자신의 약점을 지키는 동시에 흑에게 후수 삶을 강요하는 일착. 흑은 우변 흑대마가 후수로 살게 된다면 하변 흑대마 2차 공격을 피할 수 없는 노릇인데….
그러나 흑5의 치중 한 방이 구리 9단의 야심을 철저하게 무너뜨렸다.
참고도2 (흑대마 전멸)
실전진행1 백4에 흑이 손을 빼는 건 상상하기 힘들다. 흑1로 하변 흑대마를 손질하는 순간 백2의 이음에 흑대마가 꼼짝없이 절명한다. 보는바와 같이 자체에서 두 집을 내기 힘들뿐더러 탈출로도 꽁꽁 막혀있다.
참고도3 (선수로 산다)
흑1 치중 한 방은 엄청난 효력을 발휘한다. 실리의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백2의 이음은 어쩔 수 없다. 계속된 흑3의 이음수가 흑1과 연관된 묘수로 흑대마는 거뜬히 선수로 살았다. 백6까지 교환해놓고 손을 빼더라도 이하 흑13까지 좌변 흑대마 사활은 아무 문제가 없다.
장면2 (세밀한 끝내기)
종반 끝내기가 분주하다. 조금이나마 백이 좋지 않겠느냐는 검토실 견해가 오고갈 찰나 백8의 완착이 등장한다. 백8은 완착이라 보기 힘들었으나 예상을 허물어뜨린 흑11의 섬세함이 구리 9단을 준엄하게 꾸짖은 호착이었다.
참고도4 (당연한 권리라 생각했으나)
구리 9단은 흑1의 가일수가 필요하다 생각했다. 흑3까지 되고 본다면 좌변의 흑집이 11집 났고 백집은 선수 4집이 난다. 가장 평범한 진행이고 당연히 이렇게 될 자리라 봤겠지만 뛰는 자 위엔 나는 자가 있으니 어쩌겠는가.
실전진행2 (백이 손해봤다)
장면2의 흑11을 당하면서 좌변 백집이 확 줄어들었다. 대신 백도 25까지 흑집을 선수로 잠식하긴 했는데 이 결과는 잠식당한 흑집보다 줄어든 백집이 더 크다는 결론이다. 흑이 1집 정도 이득을 봤다. 결과론적인 얘기지만 흑은 좌변을 두기 전 A자리를 선수로 해치웠어야 했다.
장면3 (결정타를 때리다!)
마지막 역전장면이다. 반집을 다투는 미세한 형국이지만 실전진행2 A의 자리를 결행하지 못한 후유증은 결정타로 작용하고 만다. 흑8로 껴붙이자 구리 9단은 돌연 백9로 방향을 틀었는데 지금 와서는 백9, 11의 젖혀 이음이 선수가 되지 않는다. 흑12, 14로 한 점을 때려먹자 흑승이 결정됐다.
참고도5 (받을 수 없었던 사연)
구리 9단이 흑3의 껴붙임을 받을 수 없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하 흑5까지 중앙을 선수로 처리한 다음 우변 백말을 조여 가면 흑11의 역끝내기가 사활관계상 선수로 듣는다. 백이 언제든지 선수로 처리할 수 있었던 자리가 역으로 흑의 선수가 되고 말았으니 이건 도저히 견딜 수 없는 노릇이 아닌가.
실전진행3 (세계최강의 아마추어?!)
실전진행은 처참하다. 이창호 9단의 날카로운 정교함은 흑12에 이르러 절정을 맞는다. 초반부터 중반까지 계속 주도권을 잡고 있었던 구리 9단은 종반 이창호 9단의 고품격 끝내기에 결국 두 손을 번쩍 들고 말았다. 계가까지 갔다면 흑의 2집반승이라는 결론. 이창호 9단의 역전 스토리도 압권이었지만 세계최강의 아마추어라는 구리 9단의 오명이 역력하게 느껴지는 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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