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Home > 뉴스
웅비하는 일본바둑, 키워드는 ‘거봉 선생’
웅비하는 일본바둑, 키워드는 ‘거봉 선생’
[기획/특집] 김정민 기자(월간바둑)  2018-01-06 오후 11:50   [프린트스크랩]
  • 트위터
  • 이메일
  • 카카오스토리+
  • 구글+
  • 페이스북
▲ 이야마 유타. [사진 | 월간바둑]


김정민 월간바둑 기자가 2018년 1월호에 쓴 [특집/ 웅비하는 일본바둑, 키워드는 ‘거봉 선생’]를 그대로 옮긴 기사입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속담. 딱 근래 일본 바둑을 뜻하는 말이었다. 한국과 중국의 피터지는 라이벌 관계에 일본은 사이에 껴 십수 년간 들러리 신세를 면치 못했다. 세계대회에서 일본기사를 만난 한국, 중국 기사는 속으로 휘파람을 불었으며 실제로 세계랭킹 상위권에서 ‘日’자를 본 적이 언젠지 기억이 가물가물 할 정도였다.

바로 이때, 일본에 ‘거봉 선생’이 출현했다. 그의 이름은 이야마 유타(井山裕太). 일본의 신성(新星)으로 불리며 기대를 한몸에 받아온 그는 그 악명 높은 알파고(AlphaGo)를 포도송이로 만들며 한중 고수를 경악케 했다. 비록 알파고에게 승리를 거두진 못했으나 내용은 인공지능에 도전하는 인간 중 발군이었다.

그리고 2017년 11월 15일, 이야마 유타는 중국랭킹 1위 커제를 꺾고 LG배 결승에 올랐다. 일본기사가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에 진출한 것은 장장 11년 만. 길었던 설움만큼 일본 전역이 들썩였다. 이세돌이 알파고에게 승리했던 날 터졌던 환호만큼, 일본에선 ‘이야마 유타’의 이름이 울려퍼졌다. 일본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 제22회 LG배 결승에서 이야마 유타(오른쪽)가 중국의 커제를 꺾고 결승진출, 일본의 11년 한을 풀었다. 이날 일본은 LG배 소식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사진 | 사이버오로]

과거가 되어버린 일본 바둑

세계 최초의 국제바둑대회는 일본이 개최한 후지쯔배다. 후지쯔배는 1988년 4월 2일, 응씨배는 1988년 8월 20일 개막했으니 날치기(?)든 아니든 역사적으로 첫 세계대회는 후지쯔배가 맞다.

중요한 건 왜 일본이 대만의 거부 잉창치가 응씨배는 준비하는 사이 전자기기 회사 후지쯔를 꼬셔(?) 대회를 급조했느냐다. 이유는 종주국의 자존심이다. 물론 바둑이 처음 탄생된 곳은 여러 정황상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바둑으로 가문을 만들고 왕과 영주 앞에서 바둑을 두기 위해 쟁기(爭碁)를 벌이며 문화로 꽃피워 곳은 일본임이 분명하다.

굳이 먼 과거가 아니더라도 일본은 세계바둑의 맹주였다. 최초 세계바둑대회 우승자도 일본국기를 단 다케미야 마사키 9단이었다. 바둑 변방국에 불과했던 한국은 조훈현, 서봉수 등 강자들이 출전했으나 본선 1회전에서 전원 탈락. 다케미야, 고바야시, 가토, 후지사와 등 일본을 주름잡는 기사들은 당시 무적의 위용을 자랑하는 ‘어벤저스’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중국의 녜웨이핑(聶衛平)이 나타나고 나서부터 일본의 위상이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중국과 일본이 본격적으로 바둑 수교를 튼 1985년, 일본은 ‘중일슈퍼대항전’을 만들어 찔끔찔끔 기어오르는 중국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려 계획했다. 방식은 연승전. ‘어벤저스’의 대부분이 출격함은 물론 퍼펙트 승리를 자신하며 “만약 질 경우 전원 삭발식을 단행하겠다”고 호언장담했다.

그런데 이 대회는 당초 의도와 달리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켜주고 말았으니, 일본선수 전원이 녜웨이핑 한 명을 당해내지 못하고 줄줄이 패해 무려 3년 연속 우승컵을 중국에 넘겨주고 만 것이다. 우승컵을 건네받은 녜웨이핑이 싱글벙글 웃으며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 스님이 되실 필요까지 있겠습니까?”라고 긁어댔으니, 일본은 피를 토할 만큼 큰 내상을 입고 말았다.

자존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은 일본은 제1회 후지쯔배를 가져가며 체면을 차리는가 했는데, 산 넘어 산이랄까. 이번엔 약소국 한국에서 조훈현이란 사람이 나타났다. 자국에선 제법 잘 나가긴 했지만 한국은 한낱 마이너리그 아니던가. 그런데 그랬던 그가 뜬금없이 ‘바둑올림픽’ 응씨배를 우승해버린 것이다. 그것도 자신들의 천척 녜웨이핑을 번기(番棋) 승부에서 꺾어버렸다.

그 후 고개가 빳빳해진 한국은 더 이상 일본의 아래가 아니었다. 더욱이 조훈현이 키운 제자 이창호가 범으로 자라 우리 밖으로 뛰쳐나가자 일본의 입지는 더욱 작아졌다. 일본이 자랑하는 대기사 린하이펑(林海峰)이 1992년 제3회 동양증권배에서 17세 고등학생 이창호에게 패배해 우승컵을 넘긴 것은 이른 바 혁명적인 사건이었다. 이창호 독재시대의 서막을 열어준 일본은 한국에선 조-이 사제에게 터지고 중국에선 육소룡(六小龍), 십소호(十小虎)에게 치이며 서서히 세계무대 들러리 신세가 되어갔다. 2005년 제9회 LG배에서 장쉬(張栩)가 한차례 깜짝 우승을 차지했을 뿐, 십여 년간 세계대회에서 참패한 일본은 긴 침체의 늪에 빠져 헤어나지 못했다.

관서(關西)에서 난 용, 이야마 유타

한국이 한창 월드컵 열기에 취해 있던 2002년, 한 중학생이 입단 관문을 통과했다(일본기원 관서총본부). 소년의 이름은 이야마 유타. 1989년생으로 조치훈이 세운 11살 9개월 기록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기력이 평준화된 근래 12세 10개월 만의 입단은 좀처럼 드문 일이었다. 일본에서는 대(大)기사 린하이펑(林海峰)과 같은 기록을 가진 소년이 탄생했다며 조금 들뜬 기사가 나기도 했다.

오사카 부 히가시오사카 시(東大阪市)에서 태어난 이야마 유타는 5살 때 아버지가 사준 TV게임으로 바둑을 배웠고 흥미를 느꼈는지 6살 때 이시이 쿠니오(石井邦生) 9단 문하로 들어갔다. 1941년생인 이시이 쿠니오는 조치훈, 조훈현의 기타니나 세고에처럼 화려한 이력을 가지고 있진 않았지만 나름 기성전과 명인전 본선에서 활약했던 중견기사다.

재밌는 것은 이시이 쿠니오의 교육 방식이다. 불과 6살짜리를 집으로 데려와 가르치기는 어려울 것으로 판단한 이시이 쿠니오는 당시 갓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을 이용해 보기로 결심한다. 각자의 집에서 인터넷을 통해 바둑을 두고 전화통화로 복기를 해주는 식이었다. 둘은 그렇게 인터넷 대국만 1000판을 넘게 뒀다고 한다. 스승과의 대국을 귀하게 여겼던 일본 바둑계에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때 이시이 쿠니오의 나이는 50대 중반으로 인터넷을 이용해 바둑을 두기란 꽤나 번거로웠을 터. 일본 바둑 황금기에 본선 멤버면 수입도 적지 않았을 텐데 이시이 쿠니오는 왜 굳이 인터넷까지 이용해가며 이야마 유타와 대국했던 것일까. 그는 이야마 유타의 바둑을 처음 보았을 때 느낀 소감을 이렇게 표현했다.

“6세의 그는 바둑판 저편에 손이 닿기 어려운 듯 의자에서 일어나 돌을 놓았다. 재빠르게 한수 한수 지체 없이 반격해 어른들을 차례차례 무너뜨렸다. 실로 놀라운 기재요 천재였다.”

1997년 초등학교 2학년이 된 이야마 유타는 5천 명이 참가하는 소년소녀 전국바둑대회에 출전해 깜짝 우승하며 화제가 됐는데, 다음해 1998년에도 연속 우승하며 신동으로 불렸다. 동년 주간바둑의 기획으로 야마다 기미오(山田規三生)와 석점 기념대국을 벌였는데 그마저도 승리. 2002년에는 원생리그 71승8패라는 경이로운 성적으로 입단에 성공하며 린하이펑(林海峰) 9단과 입단 최연소 2위 타이기록을 세운다.

신성(新星) 탄생

같은 해 2002년, 일본 바둑계 분위기는 꽤나 침울했다. 세대교체에 실패한 일본은 이창호를 앞세운 한국과 창하오, 왕레이, 뤄시허 등 ‘육소룡’을 앞세운 중국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야마다 기미오, 장쉬 등 일본도 젊은 강자가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압도하는 카리스마가 부족했다. 오죽하면 70~80년대 전성기를 누린 조치훈, 고바야시 고이치가 아직도 타이틀을 보유하며 최전방에서 활약하고 있었을 정도.

이런 상황에서 16세 이야마 유타가 2005년 제12회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고바야시 사토루(小林覺) 9을 꺾고 최연소 타이틀 획득 기록을 갈아치우며 혜성처럼 등장했다. 2007년에 신인왕전을 우승했고 2008년엔 일본 1인자 장쉬(張栩)와 제1회 다이와증권배 그랜드챔피언전에서 승리, 명인전 결승에선 3-4로 패하며 막상막하의 대결을 펼쳤다. 이듬해 2009년에는 용성전과 명인전 두 개 기전에서 장쉬를 연파하며 최연소 명인에 등극. 일본은 드디어 고대하던 신성(新星)이 탄생했다며 환호했다.

그러나 뜨는 태양이 있으면 지는 해도 있는 법. 또 다른 천재로 주목받던 야마시타 게이고(山下敬吾)는 승천하는 이야마 유타의 제물이 되고 말았다. 2006년 일본 최대 타이틀 기성전을 우승하며 일약 스타로 떠오른 야마시타 게이고는 2009년까지 기성전 4연패(連覇)에 성공하며 장쉬와 피 터지는 1인자 다툼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이야마 유타라는 갓 스무살 먹은 애송이(?)가 나타나 아함동산배 결승에서 적수로 나타나더니 자신을 꺾고 우승컵을 앗아가는 게 아닌가. 2011년 명인전에서 복수를 하며 구겨진 체면을 살렸지만 그는 몰랐다. 2012년부터 이야마 유타의 전성기가 시작될 줄은. 본인방전, 명인전, 기성전 순서대로 무참히 패배, 이후 결승에만 올랐다 하면 건너편에 앉아 웃고 있는 이야마 유타에게 6번 연속 결승에서 패한 그는 2014년부터 타이틀과 멀어졌고 결국 1위 경쟁에서 추락하고 만다.

일본 1인자로 군림, 그러나…

우승, 우승, 또 우승…. 이야마 유타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그나마 호적수로 여겨지던 야마시타 게이고가 패퇴하자 아무도 그가 가는 길을 막아서지 못했다. 유키 사토시, 고노 린 등이 도전장을 날렸지만 연전연패. 2013년엔 무려 6관왕에 등극함과 동시에 7대기전 그랜드슬램을 달성하며 명실상부 1인자의 자리에 올라섰다.

신예시절, 5억 원만 벌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다던 청년의 수입은 2015년 이미 10억 원을 넘어서고 있었다. 최다승리, 최다승률, 최다대국, 연승상, 최우수기사상, 슈사이상, 기도상 등 상이란 상은 모조리 휩쓸었으며 2015년엔 41승10패로 80%대 승률을 기록했다. 2016년엔 일본 바둑계 기념비적인 기록이 세워졌으니 사상 최초로 7관왕 출현. 이에 이야마 유타는 기사 최초로 총리대신(아베 신조) 현창을 받는 영광을 누렸다.

▲ 일본 바둑은 세계대회 부진의 늪을 지나면서도 강인하게 바둑을 지켜왔다. 지금도 일본 바둑이 다시 만개하기를 일본 바둑팬들은 간절히 원한다.

그러나 역대 어떤 기사도 이루지 못한 7관왕을 달성하며 일본의 희망으로 떠오른 이야마 유타에게도 콤플렉스가 존재했으니 바로 세계대회 성적이다. 당시 분위기 자체가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한수 아래로 취급하고 있었기 때문에 세계대회 성적은 상당히 민감한 문제였다. 이야마 유타가 집권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도 세계대회에서 뚜렷한 성과가 없자 일본에서는 그를 두고 ‘국내용’ ‘온실 속 화초’가 아니냔 말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그렇다. ‘국내용’이란 말은 1인자의 숙명. 심지어 조훈현도, 세계 바둑을 독식했던 그의 제자 이창호도 초창기 국내용이란 말을 들어야 했다. 팬들은 말한다. 자국 내 기전을 모조리 쓸어 담았으면 어련히 세계대회에서도 그래야지. 왜 국내에서만 잘 하고 세계대회만 나가면 죽을 쒀?

물론 한국 야구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통하지 말란 법은 없다. 하지만 세계에서 1인자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국가의 대폭적인 지원 아래 끊임없이 신진고수가 샘솟는 중국, 조훈현, 이창호, 이세돌, 박정환… 세대를 건너 천재기사가 탄생하는 한국. 이들을 모두 꺾기에 일본의 허리층은 너무 노쇠했고 어깨를 짓누르는 중압감 속에 이야마 유타의 고독한 싸움이 이어졌다.

2011년 이야마 유타가 후지쯔배 4강에서 박정환에게 패해 3위를 했을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2013년 속기 초청전이긴 해도 TV아시아바둑선수권전을 우승했을 때 일본의 기대는 극에 달했다. 그러나 메이저 세계대회에서 번번이 탈락하고 농심신라면배 등 국가대항전에서도 특별한 성과를 내지 못하자 기대는 못내 실망의 눈초리로 변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일본기원의 소극적인 정책도 한몫 했다. 일본의 경우 국내기전 우승상금이 메이저 세계대회 우승상금에 필적한다. 예를 들어 1위 기전 기성전(棋聖戰)의 우승상금은 4200만 엔으로 응씨배 40만 달러와 비슷한 수준. 이에 일본기원은 국내기전 흥행을 위해 이야마 유타의 1년 스케줄을 미리 잡아두고 세계대회 출전 숫자를 제한하는 폐쇄적 조치를 취한다. 여기에는 실력보단 스케줄 탓이라는 변명거리와 함께 어차피 이야마 유타가 세계대회에서 우승하기 힘들 것이라는 치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일본 스스로 이야마 유타의 발목에 족쇄까지 채운 셈이다.

‘거봉선생’으로 거듭나다

일본이 이야마 유타를 자국 내 꽁꽁 숨겨두고 있었을 때, 반대로 한국과 중국에서는 이야마 유타의 실력을 인정하고 경계하는 목소리가 많았다. 이를테면 한국 상위 랭커라도 세계대회 본선에서 이야마 유타를 만나면 까다로운 상대를 만났다며 난적으로 대했다.

이야마 유타는 어렸을 적 인터넷 바둑을 두며 성장했기 때문인지 다른 일본 정상급 기사들과 다르게 인터넷 바둑사이트에서 대국을 즐겼다. 한국과 중국의 고수들과 줄기차게 인터넷 바둑을 두었고 그래서인지 기풍(棋風)도 일본의 미학적인 성향보다는 실전적인 수를 많이 구사했다.

그러던 중 2016년 말경, 이야마 유타는 미지의 적을 맞이하게 된다. 일명 ‘Master’라는 아이디였는데 중국의 커제, 미위팅, 판팅위 한국의 박정환, 김지석, 박영훈 등이 덤벼도 단 1패도 허용치 않는 괴물 같은 존재였다. 이야마 유타는 ‘Master’란 아이디에게 대국신청을 했다.

이 대국에서 훗날 널리 회자되는 형태가 탄생한다. 일명 ‘포도송이’라는 것인데 알이 주렁주렁 달린 포도송이처럼 돌이 똘똘 뭉친 모양을 뜻한다. 보통 프로의 바둑에서 포도송이란 굴욕적인 형태로 통하는데 바로 이야마 유타가 ‘Master’를 그렇게 만들었다. 구경하던 관객들의 입을 통해 ‘Master’가 불리하다는 소문이 퍼졌고 구름처럼 관중들이 몰려들었으나 이야마 유타는 더 밀어붙이지 못하고 불계패하고 말았다. 며칠 뒤 구글에서는 ‘Master’가 알파고 신버전이였음을 밝혔다.

재밌는 것은 이 바둑을 구경하던 유저들을 중심으로 이야마 유타의 별명이 만들어졌는데 바로 ‘거봉센세(せんせい·선생)’다. 이야마 유타가 ‘Master’를 상대로 만들어낸 포도송이 형태를 누군가 “이건 보통 포도송이가 아니라 ‘거봉’ 같다”고 표현했는데, 당시 바둑을 흥미진진하게 봤던 유저들이 “알파고에게 이길 뻔했던 사람은 ‘거봉선생’뿐”이라고 입소문을 내 한국에서는 이야마 유타라는 이름보다 ‘거봉선생’이란 별명이 더 유명해지게 됐다. 한국랭킹 2위 신진서는 인간과 알파고 마스터의 대결 중 이야마 유타와의 바둑을 가장 만만치 않았던 일국으로 꼽기도 했다.

이야마 유타가 온다

알파고 마스터와의 대결을 기점으로 이야마 유타의 포지션이 조금 달라졌다. 세계 초일류에 근접한 기사에서 ‘근접’이 사라지게 됐다. 때마침 2017년 1월 한중일 1인자를 초청한 하세배가 열렸는데 이야마 유타가 1국에서 중국의 커제를 꺾자 분위기는 한층 고조됐다. 비록 2국에서 박정환을 제치고 올라온 커제와의 리매치에서 패해 준우승했으나 사람들에게 세계랭킹 1위 커제를 이겼다는 강한 인상 남겼다.

물론 굴욕의 순간도 있었다. 바둑 인공지능 ‘딥젠고’를 개발한 일본이 야심차게 만든 대회 월드바둑챔피언십에서 전패를 하고만 것이다. 월드바둑챔피언십은 인공지능(딥젠고)과 인간이 함께 출전한 최초의 대회로 한국에선 박정환, 중국에선 미위팅이 출전해 리그전을 벌였다. 딥젠고는 막강한 실력으로 박정환과 미위팅을 압박했지만 종반전에서 난조를 보이며 역전패를 당했는데, 유독 이야마 유타와의 대결에선 완벽한 끝내기(?)를 선보여 일본을 당혹케 했다.

이때의 패배가 약이 됐을까. 2016년에 이어 다시 한번 7관왕의 위업을 재현한 이야마 유타는 여세를 몰아 2017년 5월부터 벌어진 LG배 본선에서 이영구, 저우루이양, 양딩신이라는 난적을 줄줄이 꺾고 준결승에 올랐다. 준결승 상대는 세계랭킹 1위 커제. 이 대국에서 이야마 유타는 예상을 뛰어넘는 반면 운영으로 커제를 제압하며 생애 첫 메이저 세계대회 결승 진출에 성공한다.

▲ 이야마 유타는 2017년 제42기 일본명인전에서 다카오 신지 9단을 4-1로 격파하면서 2번째 7관을 달성한 바 있다.

일본으로선 무려 13년 만에 맛보는 세계대회 결승 진출. 일본 열도는 흥분의 도가니에 빠졌고 바둑팬들은 연신 이야마 유타의 이름을 외쳤다. 결승 상대는 중국의 신진 강호 셰얼하오. 마찬가지로 세계대회 결승진출은 처음이다. 하지만 커제나 박정환과 겨뤄온 이야마 유타가 불리할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삼성화재배는 중국이, 몽백합배는 한국 우승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야마 유타가 우승한다면 실로 오랜만에 한중일 세 나라가 나란히 세계를 나눠가지게 된다. 일본에서 한국으로, 다시 중국으로 향했던 세계바둑 패권은 어디로 향하게 될까.

이야마 유타의 비상, 그리고 13년 만에 세계대회 우승을 앞둔 일본. LG배 결과는 2018년 2월이 돼야 알겠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한 것 같다. 1989년 조훈현이 응씨배를 제패한 이후 한국이, 90후 세대가 출현하고 나서는 중국이 왔다. 그리고 이야마 유타가 세계대회를 제패하는 그날, 일본이 온다.



사이버오로는 2월 5일~8일(6일 휴식) 일본 도쿄 일본기원에서 펼쳐지는 제22회 LG배 조선일보기왕전 결승3번기(日이야마 유타 9단 vs 中셰얼하오)를 현지 취재하며, 해설을 곁들인 웹중계로 바둑팬과 함께할 예정입니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꼬릿글 쓰기 동감순 | 최신순    
nodrink |  2018-01-12 오후 1:43:00  [동감0]    
천재는 언제 나타날지 예측은 불가능하지만 역사적으로 각분야에서 항상 나타나곤 햇지요..과학의 아트키메스부터 뉴턴 에디슨, 글쓰기는 저 먼 그리스 호머시대이래로 많고도 많고요..음악도 모차르트부터 요즘은 누구인가요 강남스타일까지..바둑분야에서도 그동안 일본에서 역사적으로 젤 마니 나왓엇죠,,수책부터 오청원까지..글코 한국의 조훈현, 이창호가 받앗고 가장대국인 중국에서 커제가 이제 나온것도 참 신기합니다..늦엇지요..이제 일본에서 한 사람 나올때도 됫지요...그러니까 한 이십년주기로 바둑천재가 하나씩 나오는거 같아요...앞으로가 걱정이네요..아무리 잘 둬도 알파고란 넘지 못할 산이 잇어서 천재소리 듣긴 힘들거 아니겟어요
바둑정신 |  2018-01-09 오후 9:30:00  [동감0]    
이야마 유타가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훌륭한 기사라는 것.
흑기사270 |  2018-01-09 오전 1:44:00  [동감0]    
운영자 삭제
쥬버나일쨩 大日本國 15년안에 굴기한다,,, 기대해라 호랑이 다때려 잡으면,,,여우가 왕 하긋지.....여우가 왕하모 지나가덩 개,하이에나,늑대,오소리등등등 모든동물이 넘본다,,,,  
쥬버나일쨩 |  2018-01-08 오후 11:15:00  [동감0]    
거봉은 영주 부석사 거봉이 맛이 최고인데... 서울 촌넘들이 그맛을 구경도 못하고 청도청도하네..ㅉㅉㅉㅉㅉㅉㅉ
캐쉬리 |  2018-01-08 오전 11:16:00  [동감0]    
이야마유타.. 일본기원 관서총본부소속.. 관서기원입단 아닙니다.
도우미A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원술랑 |  2018-01-07 오후 7:04:00  [동감0]    
꽃 한 송이 피었다고 봄이 온 것은 아니다. 기자는 이 “웅비”라는 말을 아무 데나 갖다 붙이면 안 된다. 이야마 유타가 일본기계 7대 기전 전관왕이라는 전인미답의 위업을 이룩하고 이번 제22회 LG배 세계기왕전 준결승전에서 세계 일인자 커제를 꺾는 등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고 있지만 나는 그가 LG배를 들어올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이야마 유타가 실력과 인격을 겸비한 훌륭한 기사라는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dldhrrud |  2018-01-07 오후 5:42:00  [동감0]    
오류도 일반화 되어버리면 사실처럼 행세 하게되고 나중엔 안방 자리를 차지 해버린다. 기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가 아니고 고래 싸움에 새우 죽는다 거나 새우싸움에 고래 등 터진다. 입니다. 고래에겐 그냥 싸움이지만 곁에 무죄한 새우에게 번지면 죽을수 있다는 가혹한 현실을 인식 해서 잘 처신하라는 경구이자, 큰짐승도 이웃의 조그만 불 장난에 피해를 볼수 있는 이야기 입니다. 새우 싸움에 고래 죽는다고 해버리면 현실과 동 떠러진 의미 없는 우스게소리에 불과 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를 약소국이라고 자칭 해버리면 진자 약소하게 됩니다. 한창 발돋음 하고 있던 한국 정도로 써야지
자객행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가 맞죠^^ 김정민기자 글이 맞습니다. 물론 역으로 새우 싸움에 고래등이 터지는 수도 있기는 하죠.  
소수겁 |  2018-01-07 오후 3:09:00  [동감0]    
이 기자는 웅비라는 말의 뜻을 알고나 있는지? 바둑지나 사이버오로의 기자들 수준이 다 고만고만하지만 과장이나 잘못된 비유나 이런 것들이 자신들의 글에 대한 신뢰성을 얼마나 깎아먹는지 좀 알았으면 싶다. 이야마가 잘 두고 경계할만한 대상이지만 그와 대국한 한,중의 기사들이 얼마나 많으지, 그 결과들을 제대로 알고 쓰는지, 그냥 추측으로 제멋대로 내갈기는지, 좀 기자답게 글을 썼으면 싶다.
자객행 요즘 저널리즘 약간의 오버는 이해해야죠. 죽을 쑤던 일본 바둑이니만큼 ㅎ  
69120745 |  2018-01-07 오후 1:17:00  [동감0]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승려 道林이 백제의 개로왕과 바둑을 두었다는 이야기가 삼국유사에 전해지고 있다.
그리고 백제 문화가 일본에 전파될때 바둑도 함께 건너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箕子朝鮮시대 때부터 바둑이 두어졌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적 근거는
불확실 하다.
69120745 |  2018-01-07 오후 1:07:00  [동감0]    
堯 . 舜 시대 창시설 유력
바둑의 유래는 대부분 고대의 전설에 의존하는 형편이며,史實이 기록된 문헌이 드물다고 한다. 그러한 가운데 지금까지 가장 널리 알려진것은 고대 중국의 요 순 임금이 어리석은 아들 丹朱와 商均을 깨우치기 위해 만들었다는 설이다.
중국의 고전 博物誌에 실린 堯造圍棋丹朱善之라는 문구에 따르면 기원전2300년경 요왕이
아들을 위해 발명했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한국에서의 기원
백보궁 그런데 요 순 임금이 동이족이라고 중국의 사마천의 사기에 나와있다는 건 잘 아시죠?. 따라서 바둑은 누가 만든거?  
자객행 보궁님 동이는 화족 동쪽에 살던 여러 이민족의 총칭이죠^^ 예족 맥족 여진 거란 말갈 조선 부여 때로는 동예 옥저 일부 흉노까지요. 농업사쪽으로 한반도 고대사를 연구 권위를 얻은 한 교수는 청구족이 고조선의 머릿돌이라 하더군요^^ 바둑이 요순창작설을 믿지는 않지만 동이가 우리 조상이란 말도 믿기에는 아직 거리가 많지요.  
다름의미학 |  2018-01-07 오후 12:59:00  [동감0]    
이야마가 입문하던 때가 95년쯤이라면, 하이텔, 천리안, 나우누리에서 인터넷 바둑 두던 때인대... 나우누리 천원문 분들 다들 안녕하신지 모르겠네요. 구로공단 하님, 부산 주님, 제주 miri, hyojong, ... 그 때가 생각나네요
cs1108 |  2018-01-07 오전 11:53:00  [동감0]    
97년 고바야시 고이치(후지쯔배)에 이어 무려 21년만에 일본인 메이저대회 우승이 나올지.. 정말 기대됩니다.
현선각 |  2018-01-07 오전 11:25:00  [동감0]    
거봉 선생의 활약이 기대됩니다. 바둑 삼국지가 되어야 서로의 바둑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모처럼의 승전보에 일본 열도가 들썪일만 하네요. ^^
eflight |  2018-01-07 오전 10:54:00  [동감0]    
재밌는 기사라고 생각하고 읽으려는 순간 한 구절에서 멈췄다.
바둑이 처음 탄생된 곳은 여러 정황상 중국일 가능성이 높다란 구절.
이렇게 김정민이란 사람의 사대사상이 심각하구나란 생각뿐아니라
이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닐 거란 생각에서 심각해진다.
바둑이란 말이 언제부터 존재했을 거라 생각하는가?
바둑이 바둑무늬란 말이 언제부터 생겼을 것 같나?
바둑이란 것이 둘러싸면 먹는 것이다.
창 칼 싸움에선 둘러싼다고 꼭 이기는 것이 아니지만
활의 경우는 다르다. 거의 둘러싸면 이긴다.
고조선 고구려 고려 모두 전쟁을 일상으로 화살을 중요 무기로
생각했던 조상들의 나라다.
훈족이 유럽을 호령한 이유도 알고보면 활의 역할이 컸다.
우리 문화와 중국 문화를 비교해보면
대부분 처음에는 우리의 것인줄 알았던 것이 중국에서 유래했음을 알고 놀라지만
다시 더 깊이 그 시원에대해 혹은 역사에 대해 공부하다보면 그 중국의 것이
사실은 중국의 것이 아니라 우리 조상의 것임을 알고 다시 또 놀라게 된다.
중국의 성인으로 아는, 조선을 통치한 기자는 상나라의 유민이요 우리와 같은 민족이고
당연히 상나라는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며
중국의 것인줄 알았을 용과 봉황도 사실은 우리 민족이 처음 만든 것이며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보석인 옥 또한 우리 민족이 처음 장신구로 쓰던 것이고
지금 중국이 중화제일촌이라며 떠벌이는 홍산문화도 조선의 것임을...
단지 학교에서 배우지 못했다고 모르는 것은 좋으나
우리 조상이 만들고 세우고 이뤄놓은 것들을 거저 남의 것으로 인식해주는
좋지않은 사대 사상은 버리기 바란다.
조금만 인터넷을 뒤져도 신문기사를 들춰봐도 알 수 있는 사실들이다.
안드로메다식 국뽕과 달리 바로 증명할 수 있는...
배워라. 배우기 싫으면 최소한 아는 체 하지마라.
정황상 중국에서 유래? 이런 얕은 소리 하지 않기 바란다.
당장 당신 아들 딸들에게 해가 되는 소리다.
dldhrrud 바둑이 우리 전래의 것이라는 확신이 속에서 쓰신 줄 아는데, 그렇다면 언제부터 어떤 유래로 우리의 문물에서 나왔다는 심도 있는 고증을 부탁 드립니다.  
자객행 그러니까요. 우리사서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바둑기록외 뭐 더 있나요? 혹시 환단고기에 바둑 기록은 있나요? 있으면 소개를 좀..  
tjsay 맞습니다. 선생의 돈도 본디 내 것이니 돌려 주시길 바랍니다.  
쥬버나일쨩 |  2018-01-07 오전 8:17:00  [동감0]    
커제님 때려잡고 메이져 우승하실 유타님 사랑함니다,,,, 대 일본국 남아의 기개를 보여주세요 유타님 만세!!!
Demeter |  2018-01-07 오전 1:40:00  [동감0]    
본문 내용중
상금액이 5억엔, 10억엔으로 나오는데...
5천만엔, 1억엔의 오기아닌가요?
일본 상금왕 수준이 한화로 10억원 정도로 알고 있는데....
본문내용대로 10억엔이면,,,,,100억원????
다시 한번 알아보기 바랍니다..
도우미A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ssy9226 |  2018-01-07 오전 12:23:00  [동감1]    
일본바둑의 활약을 기대해 봅니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입본 바둑의 침체로 세계바둑의 균형이 깨져 있었습니다. 한 중 일 대만 바둑이 균형있게 발전하고 특히 한 중 일 바둑이 대등하게 경쟁한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은 것이겠죠.
FirstPage PrevBlock   1   NextBlock LastPage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
위더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