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과 함께 ‘겨울 잔치’가 열렸다. 정규리그 3위 한게임과 4위 제일화재가 격돌하는 준플레이오프(준PO)는 포스트시즌의 서막. 포스트시즌은 무승부를 없애기 위해 팀이 보유하고 있는 5명이 전부 나서 ‘5판 3선승제’로 승부를 가린다.
3-0이나 3-1의 스코어를 배제할 수 없다. 핵심전력을 아껴놓다가 자칫 얼굴조차 못 내민 채 판이 끝나버릴 수 있으며, 그렇다고 마냥 전방에 배치시킬 경우 상대방의 ‘희생양’ 작전에 말려들지도 모른다. 오더 싸움이 더욱 치열해질 수밖에 없다.
머리를 싸맨 오더는 기록면에서 제일화재에 ‘3분의 1집’ 정도 두텁게 나왔다. 상대전적을 비교할 때 김혜민이 원성진에 뒤질 뿐 나머지 네 선수는 우세한 성적. 또 제일화재의 이세돌 송태곤 김지석이 준PO에서 각각 맞대결할 김성룡 온소진 김영삼을 정규시즌에서 이겼으며, 이 세 선수는 지명그룹도 상위에 포진돼 있다. 팀간 전적 역시 제일화재가 1승 1무로 앞섰다.
차이가 나더라도 아주 미세한 차이일 뿐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송태곤-온소진을 승부판으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정규시즌에서 맹위를 떨쳤던 이영구나 원성진이 2006년 ‘초대형주’ 이세돌과 정면충돌하는 ‘빅뱅’은 성사되지 않았지만 최종국까지 가는 치열한 무대를 점친 것이다.
파란과 이변 없는 승부는 무미건조하다. 약체로 평가받던 선수들의 선전과 돌풍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온다. 전체 40명의 선수 가운데 홀로 정규시즌 무승에 그쳤던 제일화재의 김혜민이 한게임의 주축 원성진을 꺾는 이변을 연출했다. 준플레이오프 판도를 가늠할 만한 천금 같은 승리. 그러자 동료 김지석은 김영삼을 불계로 따돌렸다. 제일 젊은 두 선수가 힘을 내어 2-0을 만든 제일화재는 둘째 날의 행보가 한결 가벼워졌다.
확실한 카드를 잃어버린 한게임은 막다른 궁지에 몰렸다. 첫날 최소한 1-1을 그렸던 스코어가 첫 단추부터 어긋났다. 역전을 일구기엔 첩첩산중. 우선 이세돌을 넘어야 하고, 세 판을 전부 쓸어담아야 한다. 해야 할 일이 무겁고 어둡다.
◇ 김혜민(5지명) - 원성진(2지명)
전체 인구 70만명 중 순수 자국민이 20만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카타르가 40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것을 두고 ‘개미가 바위를 들었다’고 비유한다. 이 표현을 정규시즌 무승에 그쳤던 김혜민(오른쪽 사진)이 포스트시즌에서 강호 원성진을 격파한 이변에 대입시켜도 무방할 듯싶다.
원성진은 이창호를 꺾는 등 10승 4패로 한게임의 3위를 이끌었고, 승률 및 다승 5위 안에 드는 한국랭킹 10위의 준재. 며칠 전엔 한게임배를 우승해 한창 물 오른 상태였다.
기세가 충천하면 필승이라 했던가. 성적이 좋으면 누구와 상대해도 자신감이 넘친다. 김혜민은 요즘 가장 잘 나가는 여자기사. 대리배 결승에 올라 첫 왕관을 세계타이틀로 장식하기 직전이며 정관장배 대표에도 뽑혔다. 한국바둑리그와 더불어 ‘세계(세 개) 대표’라는 부러움을 산다. 여자기사에겐 5월 이후 한번도 지지 않으며 11연승 중.
바위를 깨뜨리는 계란은 존재했다. 김혜민은 강적을 만나 주눅들지 않는 대범함으로 국면을 설계해 나갔다. 중반 들어 상대방이 실착을 범하자 정확한 맥점으로 기틀을 놓은 뒤 깔끔하게 마무리했다. 정규시즌의 마음 고생과 설움을 한방에 날려버리는 승리. 믿기지 않은 쓴잔을 들이킨 원성진은 긴 한숨 뒤의 오랜 침묵으로 복기의 시간을 대신했다.
◇ 김지석(3지명) - 김영삼(4지명)
최근 김지석은 3연패, 김영삼은 4연패. 침체기를 돌려놓기 위해선 초반의 출발이 중요하다.
적극적인 수들로 슬럼프 탈출과 국면의 실마리를 풀려고 한 김영삼의 태도는 괜찮았으나 한도를 넘어섰다. 공격의 고삐를 죄는 과정에 너무 세차게 다그치려 한 것이 문제수.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었던 국면이 부분전 수읽기가 센 김지석(오른쪽 사진)의 반격을 받아 도리어 상처를 입고 말았다.
그 뒤는 형세 불리를 의식한 김영삼의 줄기찬 강경책. 한때 혼미한 상황을 맞이하는 듯했으나 끝내 초반의 실점을 만회하는 데엔 실패했다.
“계속 정신없이 두었다”는 김지석의 국후 첫마디. 군데군데 여드름 자국이 선명한 열일곱 살 막내는 난전을 제압한 두 배의 기쁨을 얼굴 가득히 드러내며 인터뷰에 응했다.
◇ 여기가 승부!
이변의 클라이맥스
불안정한 흑을 몰아치며 승세를 다져나가던 백(원성진). 원성진의 펀치력을 감안할 때 김혜민이 뒤집기는 수월치 않아졌다.
공격하면서 조금이라도 득을 볼 생각으로 둔 백5가 치명적 실수. 반면 흑8이 맥. 16까지 쫓기던 흑이 떵떵거리며 안정했을 뿐만 아니라 적지 않은 집을 장만, 이변의 드라마를 완성시켰다.
“내일 나올 거야?” (제일화재 송태곤 8단)
“세돌 형에게 기대해야지.” (한게임 이영구 6단)
“난 안 나올 건데.” (송태곤 8단)
-제일화재의 2연승이 무르익어 갈 무렵 여유로움과 초조함이 엇갈리는 양팀 선수의 두 마음. 제3국을 이세돌 9단이 승리할 경우 다섯 번째 주자인 송태곤 8단은 물론 네 번째 주자인 이영구 6단의 대국은 취소된다.
“2승으로 갈 줄은 몰랐네.” (이세돌 9단)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검토실을 떠나면서 남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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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인구 70만명 중 순수 자국민이 20만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 카타르가 40억 아시아인의 축제인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것을 두고 ‘개미가 바위를 들었다’고 비유한다. 이 표현을 정규시즌 무승에 그쳤던 김혜민(오른쪽 사진)이 포스트시즌에서 강호 원성진을 격파한 이변에 대입시켜도 무방할 듯싶다.
최근 김지석은 3연패, 김영삼은 4연패. 침체기를 돌려놓기 위해선 초반의 출발이 중요하다.
심은화
수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