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보급의 최전방에 선 기사들을 꼽으라면 그중 한 명이 천풍조 8단 아닐까. 샤샤 3단, 스베타 3단 등 러시아 출신의 프로기사가 배출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고 미국ㆍ캐나다ㆍ유럽ㆍ우크라이나 등에 바둑을 보급하는 데 힘써 온 그가 이제 남미를 향해 전진했다.
칠레ㆍ브라질ㆍ아르헨티나 등 남미 3개국을 돌고 온 천풍조 8단이 총 3편에 걸쳐 뜨거운 남미 바둑계의 현장을 전한다.
------------------------------------------------------------------------- 남미 3개국의 바둑계를 돌아보고… (총3부) 글ㆍ천풍조 8단
- 2부 - 탱고바둑 아르헨티나 (Argentina) 편
브라질 상파울루를 떠나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 공항에 10월1일 오후1시(현지시각)경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아르헨티나 바둑 고수인 가브리엘 벤메르구이(Gabriel Benmergui) 6단이 마중 나왔다.
가브리엘(25세)은 2008년 국무총리배 세계아마바둑선수권대회에 아르헨티나 대표로 참가했고 그 당시는 아마3단 수준이었는데 이후 강원도 횡성에 있는 ‘킹스바둑 스쿨’에서 약 1년간 바둑 수업을 받아 실력이 부쩍 늘었다. 귀국한 이후에는 인터넷으로 한국 바둑 사이트에 접속해서 대국을 많이 하였고, 영문 바둑 사이트인 KGS에서 고수들과 대국을 하면서 한편으로는 중저급자들을 가르치기도 했다. 한국에 있을 때 만나 몇 번 지도대국을 해주었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어 친해졌으며 인터넷에서 지속적으로 만나 대화를 나누었다. 그래서 나의 아르헨티나 체류 일정은 가브리엘이 정해주었다.
▲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거리.
▲ 바둑협회 첫날 지도다면기.
시내 중심가에 있는 니과라과 거리의 호스텔에 숙소를 정해 준 가브리엘은 나를 시내로 안내해 3시간이 넘게 여기저기 보여주었다.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난생처음 한국과는 정반대 편인 이곳을 걸어보는 느낌이 좋고 건물도 생소해 신기했다.
아르헨티나는 23개 주와 자치 시 1개로 구성된 연방국이며 동쪽의 남대서양과 서쪽의 안데스 산맥 사이에 2백76만 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면적으로 남미에서는 브라질 다음으로 큰 나라이다. 인구는 약 4천2백만 명으로 한국보다 조금 적고 화폐 단위는 페소(Peso)이며 현재 1달러가 4페소이다.
스페인의 호세 마르틴 장군이 1516년에 와서 유럽인들이 최초로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를 합친 식민지를 건설했으며 이후 3백년이 지난 1816년에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했다. 풍부한 자원으로 경제 부국이었던 아르헨티나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10년간 집권한 페론 대통령과 그의 부인 에비타가 노동자 우대정책을 쓰다가 국가 재정이 파탄의 지경에 이르러 군부 쿠데타가 일어나고 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탱고와 축구의 나라이며 지금은 여성대통령이 통치하는 이 나라에도 바둑협회가 1982년에 생겼다.
오후 7시경에 가브리엘의 안내로 바둑협회를 방문했다. 협회는 중심가인 파라과이 1858번지에 1백5년 전에 건립된 사교센터 빌딩 4층을 사용하고 있었다. 2층에는 체스(Chess)협회가 있어 이곳을 경유해 가파른 계단으로 올라갔는데 과거 체스 챔피언들의 사진들이 벽에 걸려있는 것이 보였다. 바둑협회 회장인 호르케 상코프스키(Gorge Santkovsky)씨가 반갑게 맞이해주며 10여 명의 회원들을 소개해주었다.
▲ 가브리엘 6단과 레스토랑.
▲ 공원.
나는 선물로 가져간 컬러바둑 세트를 기증했고 협회의 관리인인 실비아 아키야마(Silvia Akiyama) 라는 일본 여성 혼혈인이 무척 좋아했다. 곧바로 7명을 상대로 지도다면기를 두었다. 호르케 회장은 중년의 사업가이며 아마 초단 실력으로 7점을 놓았다. 약 2시간이 소요되어 대국을 마쳤을 때 반가운 교포 한분이 찾아왔다. 이곳에 30년이 넘게 살았다는 차의남(65세 아마5단)씨였다. 그는 호르케 회장이 나의 방문을 알려주었다면서 반겼다.
환영 만찬은 가까운 소고기 바비큐 전문식당에서 10여 명이 어울려 2시간이 넘도록 다양하고 풍성한 고기에다 맥주, 위스키를 마시며 진행되었다. 아르헨티나 소고기는 값싸고 맛있기로 유명하다고 들었는데 과연 실감이 났다. 식당은 손님들로 북적거렸다. 늦은 밤인데도 줄기차게 손님이 들어왔다.
차의남 씨는 한국 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를 졸업했으며 현재는 문서 번역이 직업이다. 예전에 한국에 있을 때 바둑계 인사들과 많이 어울렸고 프로기사들과도 친교가 있었다 한다. 나는 이번 남미 3개국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그중에서도 교민바둑계 활성화에 관심이 많으니 바둑 팬들을 만나게 해줄 것을 부탁했다.
10월 2일과 3일은 토ㆍ일요일이어서 주로 관광을 했다. 토요일에는 가브리엘 6단과 디에고 몬로이(Diego Monroy)초단의 안내를 받으며 낮에 지하철(6개 노선)을 타고 시내에 관광객들이 붐비는 방첨탑인 오벨리스크(Obelisk) 5월광장이라는 플라자 데 마요(Mayo)와 웅장한 메트로폴리탄 성당과 대통령 궁전 등을 구경하며 사진을 찍었다. 중남미 20개국은 인구의 90%가 가톨릭을 믿어 성당이 도처에 있다. 그리고 도시 이름도 거의 신부들의 이름으로 지어졌다.
▲ 지하철 앞.
▲ 5월광장 입구.
▲ 대통령 궁전.
▲ 5월광장.
우리는 인공호수가 있는 팔레르모 공원을 지나 강변 산책로에 걸어서 이동한 뒤 의자와 테이블이 있는 장소에서 간식을 먹었고 가브리엘과 디에고가 각자 가져온 자석 판으로 양면 지도기를 두었다.
맑은 공기라는 뜻을 가진 부에노스아이레스란 이름 그대로 그곳 공기는 맑았다. 이날은 화창한 봄 날씨였다. 가브리엘은 본래 3점 바둑인데 2점으로 도전해 왔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신기한 듯 무슨 게임이냐고 묻기도 했다. 디에고 초단은 키(1m96cm)만 크지 바둑 실력은 약해 5점에 쉽게 무너졌다. 하지만 가브리엘 6단은 장고하며 불리한 바둑을 끈덕지게 물고 늘어져 내가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묘수를 두어 나의 대마를 잡고 역전승했다.
저녁에는 호르케 회장이 차를 가지고 나와 재미있는 곳이 있다면서 카미니토(Caminito)거리로 안내했다.1880년대에 연방자치 지구가 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증가했는데 주로 이탈리아계와 에스파냐계 이민자들이 라플라타(La Plata) 강 상류에 위치한 보카(Boca)항구에 이주해 이 타운이 생겼다. 지금도 옛날 건물들이 그대로 남아 있는 특이한 지역이다.
탱고 (Tango)춤이 19세기 후반에 처음으로 생겨 보카의 카미니토에서 가장 발달하고 카바레, 바, 레스토랑, 카페에는 보헤미안 풍의 노동자 선원 예술인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한다. 1930년대에는 탱고의 황금기였다. 나는 갖가지 색으로 화려하게 칠한 목조 건물들을 보고 거닐며 이곳에 살았을 옛사람들을 상상했다.
때마침 한 레스토랑에서 남녀가 탱고 춤을 추는 것을 목격하고 사진을 찍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아르헨티나 인구의 3분의1에 해당하는 1천4백만 명이 살고 있으며 옛 건물과 신식 고층빌딩이 공존하는 아름다운 문화 예술도시로 ‘남반구의 파리(Paris)’라고 부르기도 한다. 탱고 춤은 시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gif){kind=logo}
▲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거리.
▲ 바둑협회 첫날 지도다면기. 
▲ 가브리엘 6단과 레스토랑. 
▲ 공원. 
▲ 지하철 앞. 
▲ 5월광장 입구. 
▲ 대통령 궁전. 
▲ 5월광장. 
▲ 강변에서 지도기. 가브리엘과 디아고(오른쪽). 
▲ 호르케 회장과 카미니토 입구. 
ssy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