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수들이 잠든 밤. 상하이에는 며칠째 보슬비가 내리고 있다. 약간은 을씨년스럽고 음산하기까지 한 비는 화려한 도시를 회색으로 적시며 해의 출현을 막고 있다.
모자를 푹 눌러쓰고 내려 왔다.
오전 8시 40분(상하이 현지 시간) 원성진 9단은 트레이닝 바지에 가벼운 모자티셔츠 차림으로 화팅호텔 1층 레스토랑으로 혼자 내려와 뷔페로 아침을 해결한 후 9시 5분에 조용히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실내이지만 내내 모자를 쓰고 있었다.
제13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3차전 제13국이 오후 2시 30분(한국시간)부터 중국 상하이 화팅호텔 2층 특별대국실에서 열린다. 중국 마지막 선수 씨에허 7단을 꺾고 한국에 우승을 가져오기 위해 오늘 출격할 기사는 원성진 9단이거나 이창호 9단 중 한 명이다.
3연승을 거두고 나서 자신에게 4전 전패를 안겨주고 있던 구리 9단마저 꺾었던 김지석 7단은 하루 전 씨에허 7단에게 막혀 연승을 마감했다.
3차전 첫 대국이 있던 21일 기자회견에서 이창호 9단은 "내가 주장이지 않기를 바라지만 후배들은 내가 마지막을 맡아줬으면 하고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그 말대로라면 23일은 원성진 9단이 나온다. 중국은 거의 원성진 9단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원성진 9단은 씨에허 7단에게 상대전적에서 1패를 기록했었다. 농심신라면배 7회 대회가 벌어지던 2005년 씨에허 6단(당시)에게 반집패 했다. 씨에허는 그 다음 야마다 기미오 8단(당시)까지 꺾고 2연승 했다.
"나는 상대전적 같은 것은 거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의 하나다. 시간이 흐르면 실력도 변하고 사람도 변한다. 더는 예전의 그 기사가 아닌 것이다." 원성진 9단의 신념이다.
최근 들어 원성진 9단에겐 변화가 생겼다 . '대국에 대한 설렘'이 그것이다. 신혼부부나 데뷔 초기의 프로기사에게나 있을 법한 설렘이 생겼다고 원성진 9단은 밝힌다.
"입단하고 짧지 않은 기간, 나는 승리와 성적을 놓고 강박에 빠져 있었다. 먼저 치고 나간 황소삼총사의 다른 멤버들(최철한 박영훈)과 자주 비교됐고, 바둑 자체에 놓고 통찰의 시간을 가질 여유 따윈 없었다. 그런데 근래엔 다르다. 바둑이 그저 즐겁다. 강자들과의 대국이 기다려진다."
'즐기는' 것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옛 성현들은 일찍이 설파하고 증명했다.
안 그래도 가공할 핵펀치를 보유한 원성진에게 공포의 무기가 하나 더 장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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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실수
남산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