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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에 연구생출신들을 위한 제도도 논의되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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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에 연구생출신들을 위한 제도도 논의되었으면..."
아마기사 하성봉이 '이세돌 탈퇴 논란'을 바라보며 쓴 페이스북 글
| 하성봉 2016-06-08 오후 01:28 [프린트｜스크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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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계에선 이들을 ‘이무기’라고 부른다. 용(프로기사)이 되어 승천하지 못한 채 만19세 나이 제한 규정에 걸려 한국기원 연구생에서 퇴출된 이들을 일컫는 은어. 드라마 ‘미생’은 필생의 목표로 삼았던 입단의 꿈을 이루지 못하고 ‘사회’로 나온 이들의 이야기를 소재로 다뤘으나, 어디까지나 그건 일부, 극히 한 부분 살짝 들춘 것에 불과하다. 바둑을 떠나 낯선 분야, 낯선 세계에서 제자리를 찾아가는 드라마 주인공 장그래는 그래도, 그나마 선택받은 자인지 모른다. 승부세계란 본시 냉엄한 정글의 세계라고, 그러하므로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이들을 낙오자 바라보듯 볼 수 있다. 이러한 주위의 시선과 실패로 인한 자괴감은 실제 한동안, 어쩌면 평생 ‘열등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하성봉’이라는 아마고수가 있다. 세간의 표현대로라면 그는 ‘이무기’다. 올해 만34세. 1997년 입단대회에서 불운의 반집패를 두 번이나 당하고 입단문턱에서 좌절한 그의 이야기는 지금도 마음 저리다. 그때 입단한 소년이 최철한. 이런 것을 보면 사람의 운명이란 종이 한 장 차이로 갈리는 것일지도. 입단에 실패한 뒤로 아마바둑계에서 마치 한풀이하듯 28개의 우승컵을 차지하지만 한켠 헛헛한 마음은 채워지지 않았고, 프로의 길을 모색하고자 일본에까지 건너갔으나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다. 2011년 18기 아함동산배 전일본속기오픈전에 나가 일본의 정상급 프로기사들을 꺾으며 본선8강까지 진출한 일은 화제가 되었다. 지금은 돌아와, 전주 강종화도장에서 아이들을 지도하며 30대 주니어기사로 여러 대회에서 여전히 녹슬지 않은 무공을 보이고 있다.
‘이무기’란 단어에는 일일이 표현 못할 한과 절규와 회한의 응어리가 맺혀 있다. 지난 세월 숱한 ‘이무기’가 승부세계의 뒤안에서 스러져 갔다. ‘하성봉’은 이들 수많은 이무기 가운데에서도 더 안타깝고 저린 이름으로 남았다. 방황과 인고의 행보 끝에 열심히, 남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지만, ‘이세돌 프로기사회 탈퇴’와 같이 프로바둑계에서 굵직한 파동이 일어날 때마다 이무기들이 느끼는 심정은 일반 바둑팬과는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알파고에, 이세돌에게, 프로기사회에, 한국기원에 ‘이미 양지에 선 자들’에만 온통 관심을 쏟고 있을 때, 이제는 돌아와 이무기를 대표하는 이름, 아마7단 하성봉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일기가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설령 푸념에 지나지 않은 소회일지라도 심금을 울리는 울림으로 다가오는 건 어인 연유일까. 날것 그대로 게재하는 것이 ‘이무기’의 마음을 오롯이 전하는 길일 듯하여 약간만 손을 보았다.
바둑기자들도, 심지어 프로기사조차 그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않고 있는(못나서는 것인지도) 이때, 한 이무기가 ‘안네의 일기’를 쓰듯 저 혼잣말을 남기고 있다. 작금의 파문에 대해 단 한줄 직설을 던지거나 가타부타 자기 의견을 쓰지도 않았다. 단지, 세상에는 ‘잘난 자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때로는 못난 자들도 좀 돌아봐 달라고, 이제쯤 그럴 때도 되지 않았느냐’는 호소가 진솔한 문장 행간마다 흘러넘치고 있었다. 지금 울리고자 하는 종은 정녕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울려야 하나. 하성봉 아마7단의 단상이 단편적이고 짧긴 하지만, 이번 기회에 우리 바둑계가 포괄적으로 생각해봐야할 것들에 어떤 게 더 있는지, 곱씹게 하는 내용이어서 소개한다. 딱 하루치만 양해를 구해서...^^;; -편집자 주-
▲ 연구생에서 퇴출돼 아마바둑계로 나간 하성봉은 거의 모든 대회를 휩쓸며 한때 '프로보다 더 많은 상금을 획득하는 아마추어'라는 소리를 들었다. 실력이 있었으나 입단운이 없었던 불운한 이무기였다. 2001년 바둑문화시상식에서 아마기사상을 받았다.
5월30일
프로기사가 된 사람들의 처지에서 본다면 프로가 되지 못한 다른 연구생 출신보다 훨씬 나은 삶이 보장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프로기사 중 몇몇 저랑 친분이 있는 기사를 제외하면) 많은 프로기사들이 프로가 되지못한 아마추어기사들의 미래를 걱정해주거나 어떠한 제도를 도입해 바둑계에서 계속 생활하게 만드는 문제를 지속적으로 거론하는 프로기사는 없습니다.
승부세계에서 이긴 사람이 강자이고 이긴 사람만이 대접받습니다. 지금 연구생들 수가 130명이고 거기서 프로가 되는 사람은 30명도 안됩니다. 프로의 권익을 찾기 전에 100명이 넘을 바둑계의 인재들을 걱정해주고 바른방향을 제시해주는 기사가 생기길 바랍니다.
저는 바둑 한길만 걸었고, 앞으로도 쭈욱 그럴 생각이고 다른 공부를 못한 것에 대한 후회는 없습니다만, 저하고 같은 처지에 놓일 후배 연구생 출신들을 보면 가슴이 아픕니다. 프로보다 당당하지 못하고 나은 삶을 보장받지 못하는 우리들이 볼 때는 기사회의 싸움은 (건방진 표현일지 모릅니다만) 아주 우습게 보입니다. 실력파 기사가 번 수입(3~5% 납부액)에 기댈 수 있는 것 또한 저희들에게는 없는 수단이니까요. 이번을 계기로 프로보다 더 많은 인원으로 남을, 미래가 불투명한 연구생 출신들을 걱정해 주시고 좋은 제도를 만들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어떻게 연구생이 되고 '이무기'로 밀려나나
1. 바둑입문
어릴 때 바둑을 배우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이유로 여러가지 통로로 취미로 바둑을 배우게 된다.
2. 프로기사가 꿈
바둑에 재능을 보이고 지역대회에서 입상을 하게 되면서 아이는 프로기사가 되는 것이 목표이자 꿈이 된다.
3. 학부모의 결심
아이와 함께 고심한 부모님은 아이의 꿈을 이루는데 도와주기로 결심한다. 부모님은 바둑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해서 어떻게 하면 프로가 되는지 바둑교실 원장이나 인터넷 등을 통해 조금씩 알게 된다. 프로가 되려면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야 한다는것을 알게 된다.
4. 바둑도장 입문
아이와 부모는 유명한 서울 수도권의 각 도장으로 가게 된다(지역 연구생은 제외). 각 도장에서 적게는 수개월, 많게는 수년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공부를 하게 된다.
5. 연구생 입문
드디어 아이는 연구생선발전을 통해 연구생 들어가게 된다. 연구생 수는 130여 명. 하지만 경쟁자도 많고 바둑을 조금 늦게 배운 아이들은 뒤처지기 시작한다.
6. 연구생 졸업과 이어지는 진로 고민
어느새 프로가 되지 못한 채 연구생을 나와야 하는 나이가 되면 진로 고민을 하게 된다. 바둑공부를 더 할건가 아니면 바둑학과를 가서 공부를 할건가. 군대 문제가 있으니 연장을 하기 위한 수단으로 학교를 일단 들어가는 학생들도 생겨난다.
7. 연구생들의 사회경험 부족
어린시절 바둑공부만 한 탓에 사회생활을 하는 것에 문제가 있고, 같은 또래들과 바둑 말고는 공통적으로 이야기할 것이 거의 없고, 가장 열심히 배워야할 시기에 바둑밖에 한 것이 없으므로, 그 나이가 되도록 프로가 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해서 당당할 수가 없다. 다른이들과 이야기할 때 무슨일을 하세요? 또는 무슨 공부하세요?,라고 물어오면 부끄러워진다.
8.연구생을 나올 때의 고충과 아픔
저같은 경우도 연구생을 나올 때 세상이 끝난 거 같은 느낌을 받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방황하고 가출도 여러번 했었습니다. 제가 연구생 할 때나 지금 연구생들이나 별반 차이가 없고, 오히려 더 심해졌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문제, 군대문제 등)
프로가 되고자 연구생이 되었지만 프로가 되지 못했다고 바둑계에 필요없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프로들이 하지 못하는 일들을 연구생 출신 기사들이 하면서 자연스럽게 상생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연구생들이 한 달에 한국기원에 내는 회비가 얼마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10만원이었습니다. 연구생들은 적으면 수개월, 많으면 5년 이상 한국기원 연구생 생활을 합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꼭 필요한 경비 때문에 그럴 것이라 생각하지만) 한국기원이 연구생들을 많이 뽑는 이유가 자금 조달이 되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미래의 바둑계 인재들을 키우기 위한 제도적인 장치와 투자가 필요합니다.
▲ 1992년 제6회 오리온배 입상자들의 기념촬영. 자세히 사진을 들여다보면 낯익은 얼굴들이 보인다. 앞줄 맨오른쪽이 하성봉 아마7단이고 그 뒤가 하호정(현 프로4단)이고, 앞줄 맨왼쪽 안경 낀 여자어린이가 우승한 권효진(현 프로6단)이다. 특히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하성봉은 열악한 조건 속에서도 대다수의 연구생들이 걸었던 그 과정대로 입단에 도전했으나 끝내 프로기사가 되지 못했다.
한국기원이 해야할 연구생 출신들을 위한 제도
1. 진로상담실
연구생을 하다가 이제 스스로도 알만큼(내 길은 승부 쪽이 아니란 걸 깨달을 때), 승부를 그만두고 싶어졌을 때 진로상담을 통해 바둑계 다른 분야 등에 대해 설명(안내)해 주고 아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게 도와주는 것입니다.
2. 언어(외국어) 교육
바둑 세계화로 가고자 한다면 한국기원은 연구생 졸업생들에게 언어를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진로상담 후 해외보급을 하고 싶다는 연구생 출신들에게는 특히) 이것이 활성화 되었을 때 여러 나라의 협회 등과 협의해서 교환학생 같이 언어도 배우고 문화도 경험을 시켜주는 제도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3. 전문적인 보급교육
바둑을 잘두는 것과 잘 가르치는 것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전문적인 교육을 통해 연구생출신 기사들이 바둑을 잘 가르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중국은 국가적으로 지원을 하고 있고, 일본은 연구생이 50명 정도이고 바둑대회 입상 등에 대해 대학에서 가산점을 부여해 주고 있어 연구생들이 진로를 결정할 때도 한국만큼 힘들지는 않습니다. 한국에서도 적어도 위와 같은 제도가 있어야 학생도 학부모도 안심하고 바둑계로 들어오지 않겠습니까?
“기전 없고 대국료 없는 프로기사 입장에선 오히려 아마추어에게 대국기회가 더 많다고도 볼 수 있지 않나.”라는 취지의 내용에 대해
머리좋고 활동량 많은 프로는 지금 연구생 출신들의 고충을 거의 알 수가 없을 것입니다. (연구생 출신 바둑 전업자들의) 당당하고 싶은데 자꾸 움츠러드는 그 기분을 알 리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프로랑 아마도 실력 나름 아니겠습니까? 약한 프로가 몇 판 못두듯 아마도 똑같습니다. 프로, 아마를 떠나 같이 후배들을 위해서 힘을 모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 2004년 제85회 전국체전 금메달리스트는 하성봉(서울)이었다. 왼쪽부터 강희구, 서중휘, 그리고 금메달리스트를 건너뛰어서 은메달을 딴 선수는 김남훈이다. 서중휘와 김남훈은 뒷날 프로가 되었다. 하성봉의 기재가 이들만 못해 혼자만 프로가 되지 못한걸까. 그렇게 야박하게 단정지어도 될까.
한 연구생 출신이 하성봉 아마7단의 글에 단 댓글
어려서부터 이기고 지는 것만을 배워왔고, 무조건 프로입단을 해야한다는 가르침 하에 공부를 해온 친구들이죠(저도 물론이고, 사범님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모든 사람이 입단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도장 사범들도 다 알고 있지만 열심히 하면 모두 가능할 것이라고 가르치죠. 그래야 아이들이 공부에 더 집중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요(이 부분은 너무 어려운 부분이지만 ㅠㅠ).
그 덕분인지(?) 원래라면 사회생활을 하기에도 어린, 일반 또래라면 부모 품안에 있을 나이에 불과한 친구들이 입단을 못했다는 패배감에 휩싸이죠. 이미 학업으로 돌아서기에는 늦은 나이가 되어버렸고, 오랜 시간을 함께 해온 그 놈의 '바둑계'에서는 자격증 하나 없이 그저 '연구생 출신'이라는 모호한(늘 부연설명이 필요한) 타이틀로 살아남아 보려 해도 현실은 잔인하니까요(물론 아마추어 중에서도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도 많죠. 하지만 프로에 비해 기회와 대우가 전혀 다르다는 것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입니다).
10년을 넘게 같이 공부해왔던 친구들이 프로가 되어 나와는 다른 신분(?)으로, 다른 프로들과, 나는 모르는 이야기들을 할 때-. 가장 가까웠던 친구가 더 이상은 나와 가까워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 등등 소외감은 다양한 방식으로 다가오죠, 이러한 것들이 열등감 패배감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만-.
그런데 프로는 어쨌든 프로죠. 수없는 경쟁에서 이긴 자가 되었으니 잠깐동안은 승리감에 취할 수도 있겠죠(프로가 아니라서 이 부분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하지만 프로는 또 다시 그 이긴 자들과 경쟁을 하여 또 이겨야하는 상황에 처하죠. 이것이 참 아이러니컬 합니다. 분명 도장에서는 프로가 되면 다 해결될 것처럼 배워왔는데, 정작 프로가 됐는 데도 당장 먹고 살 걱정을 해야하거든요. 입단이 어려웠던만큼 미래가 보장이 되어 있다면 참 좋은 사회가 될 텐데(참 좋은 사회여야 미래가 어느 정도 보장될 수 있겠죠?ㅎㅎ). 프로의 현실 또한 잔인하니까요.
하지만 그 잔인한 현실 속에서도 프로는 프로입니다. 어쨌든 모두에게 똑같이 주어진 어려운 상황에서 이긴 자이니까요, 그 생각들이 좋지 않은 방식으로 표출될 때(보통 기득권이라고 하죠) 수많은 아마들은 또 다시 치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가 살아야 프로도 살 수 있다는 건 누구나 알 수 있는 단순한 원리인데도 몇몇은 자신이 속한 곳이 '프로세계'이기 때문에 다른 것을 생각 못하는 거죠(이 모든 것이 도장 교육 및 환경과 상당한 관련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이래저래 프로든 아마든 먹고 살기 힘든 것이 사실이죠. 어릴 때야 뭣모르고 경쟁했다쳐도 이젠 애도 아니고 '사고'가 가능해진 나이인데, 서로 같이 잘 먹고 잘 사는 날이 꼭 가까워졌으면 좋겠습니다!
▲ '미생'과 '완생'의 갈림길. 지난해 입단대회 모습. 바깥에서는 어떻게 볼지 몰라도 적어도 바둑계 안에선 '미생'과 '완생'의 차이(별)가 크기에 어린나이부터 사력을 다해 입단공부를 한다. 하지만 학부모를 위시해 입단하기 전에는 문호를 그토록 넓혀달라고 호소하다가도 막상 프로가 되고 나면 입단문호를 넓히는 데 미온적인 태도로 변해버리는 장면은 인간사의 양면을 보는 거 같아 씁쓸하다. 물론 제도적 뒷받침 없이 프로기사를 양산하는 건 고심해야할 문제이긴 하다. 그렇지만 행여 보상심리라거나 희귀성을 견지하는 것으로는 더는 경쟁력을 유지할 수 없는 시대다. 확보한 파이만 나눠먹을 양이면 극소수만 뽑는 게 현명하다. 반대로 파이를 더 생산하고 확대할 양이면 더 각개약진할 자원이 필요하다. 어느쪽이 더 명분이 서고 바둑의 지평을 넓히는 길인지 자문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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