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한 연락이 6부의 설씨(薛氏) 촌락으로 달려갈 때, 남당에 끌려온 미실은 진흥왕의 명으로 중신들이 빠져나간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명을 내릴 때부터 미실에 대해 죄를 물을 생각이 없다는 것을 안 손물재는 남당 밖으로 물러났다.

그 동안 어찌 지냈는지 약간 파리해 뵈는 미실의 낯을 바라보며 대왕은 살가운 말을 떨어뜨렸다.

“도대체 어디 있었기에 그토록 소식이 없었는가. 태자가 보명궁에서 살해돼 한때는 그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깊었는데 모든 게 명명백백 댕견 주인의 과실로 밝혀졌으니 과인의 마음을 그대에게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이 마땅한 일 아닌가.”

“황공하옵니다.”

“혹여 태후마마의 전각에서 들은 말이 있다면 잊어버리라. 마마께선 모든 권한이 자네에게 향한 걸 견제하려는 것이었을 뿐 다른 뜻은 없다 하셨다.”

“예에, 마마.”

“그런즉 당장에라도 그대가 머물 전각을 정하고 예전의 직제를 회복하도록 하라.”

“대왕마마, 잠시 신첩의 말을 들어주시옵소서. 태자마마가 댕견에게 물려 죽은 지 한 해도 지나지 않았습니다. 신첩은 태자마마의 죽음이 무서워 잠시 자리를 피했을 뿐 천한 목숨을 구하려는 생각은 없었나이다.”

“그랬을 것이다.”

“마마께오서 신첩을 어여삐 여겨 왕후마마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새주(璽主)에 명하시고 화랑을 다스릴 수 있는 원화(源花)에 봉하셨으니 신첩은 이제 죽는다 해도 여한이 없나이다. 생각 같아서는 그 자리들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 싶으나 군왕(君王)의 명은 반석과 같으니 이를 어기는 것은 천명을 거스르는 것이라 보옵니다. 그리하여···.”

“계속하라!”

“마마의 명을 신첩이 받아들이되 그 기한을 명시하지 않는 게 옳은 일이라 보옵니다.”

“그게 무슨 말인고?”

“신첩은 어제까지 대역 죄인이었나이다. 아무리 혐의가 벗겨졌다곤 하나 신첩을 미워하는 무리가 왕궁엔 적지 않을 것입니다. 하오니 마마, 신첩이 뱃속의 아이를 낳을 때까지 만이라도 유보해 주옵소서.”

“유보를 하라?”

“그러하옵니다, 마마. 마마께서 그리하셔야 조정엔 신첩의 적들이 사라지는 것이옵니다. 신첩 역시 달리 머무를 처소를 마련치 않을 것이며 예전과 마찬가지로 보명궁에 거처를 정하고 세상을 떠난 태자마마의 극락왕생을 기원할 것이옵니다.”

“흐음.”

“마마, 그렇다고 신첩이 가만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장차 신첩이 맡아야 할 새주(璽主)와 원화(源花)의 직제를 나름대로 연구해 장단점을 추려뽑아 새로운 직제를 만들 것이옵니다. 그리하자면 무엇보다 화랑의 직제에 빼어난 머릴 가진 자를 측근에 두어 연구를 할까 하옵니다.”

“그런 자가 있는가?”

“태자마마가 댕견에 물린 후 신첩이 나무 놀라 현장에 나갔을 때, 신첩이 위험에 처한 때가 있었나이다. 그때 풍류주의 부제로 있던 설원랑이 날뛰는 댕견을 처치해 위기를 모면해 주었나이다. 신첩은 전날에 신세진 것도 있어 가까이 두어 은혜도 갚을까 하나이다.”

“그대의 마음이 거기에 있다면 그리하라.”

“마마, 태후마마가 어찌 나오시던 미워하지 마옵소서. 신첩은 세종 전군에게도 미워하는 마음이 없나이다.”

“과인은 그 아이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그 아이가 그대의 청을 온전히 받아들였으니 과인은 세종 전군을 중임할 것이다.”

“황공하옵니다.”

“그대가 월성(月星)에 있는 한, 명목상이나마 새주(璽主) 신분은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해야 위험에서 그대를 구할 수 있고 만약의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것이다.”

때마침 소식을 들은 사도왕후가 들어오자 미실은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예를 차렸다.

“신첩이 남당에 들어온 것은 새주(璽主)가 이곳에 있음을 안 태후마마가 측근을 풀어 방책을 마련한다는 소식 때문이옵니다. 대왕께서는 외부 병력이 월성에 들어오는 걸 차단하셔야 하옵니다.”

“그건 걱정 마시오. 어림군 수장 손물재에게 일러두었으니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오. 왕후는 새주를 데리고 나가 얘기를 나누어 보시오. 서로 간에 할 얘기가 많을 것이오.”

미실은 대왕에게 인사를 올리고 월지궁으로 따라 나섰다. 그곳에 도착하자 사도왕후는 미실이 월성에 나타난 것을 걱정하고 나섰다. 태후의 심기가 극도로 날카로워진 이때 굳이 위험을 자초할 필요가 없다는 걸 부각시켰다. 미실은 미소를 머금을 뿐 말이 없었다.

▲새주(璽主) ; 왕후와 격이 같은 내명부 직급

▲월지궁은 왕후의 처소입니다.

▲과대요패는 왕족의 허리보호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