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명(御命)’이란 말에 미실보다 더 놀란 것은 지소태후였다. 월성에 힘 있는 자가 대왕이란 사실을 깜빡 잊은 탓에 미실이 남당(南堂)으로 끌려갈 때 그 앞을 막지 못했다. 앉은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무언가 깊은 생각에 빠져있는 지소태후 곁에 마흔 남짓으로 뵈는 중년여인이 다가섰다. 지소태후의 득세 기간 동안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태후의 밤 행사를 도와 온 태후전 여사(女史)였다.

“태후마마, 쇤네이옵니다.”

“뭣인가?”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이상한 소문이 있어 마마께 아뢰옵니다.”

태후가 고개를 들었다. 여사(女史)는 더욱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목소리를 열었다.

“마마께서 지난 날 ‘옹추공’ 집안에 믿음을 갖지 못하고 내명부의 계집 하나를 그 댁에 세작(細作)으로 집어넣었습니다. 그 아이가 옹추공이 관아에서 일을 하게 돼 월성에 들어왔는데 심상치않은 말을 했나이다.”

“무슨 말인가?”

“왕주를 만드는 염씨 성을 쓰는 가야인이 스스로 명줄을 끊었고 대신 미실이 옹추공의 사저로 왔답니다.”

“그게 무슨 이상한 일인가?”

“문제는 왕주를 만든 염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가 하면 술을 가져올 때 미실 낭주가 동행했단 점입니다. 더욱이 왕주는 태후마마에게 죽임을 당한 가야국의 도인 하마(蝦蟆)의 제자가 만든 것이기에 수상하다는 것입니다.”

“하마···도인?”

“그렇습니다. 왕주의 제조 책임자 염씨(炎氏)는 하마도인의 제자입니다. 그 자가 술을 만든 후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입니다.”

“···.”

“하루 전만 하더라도 태후마마께선 미실에 대해 깊은 원한이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미실을 오랫동안 기다려 온 것처럼 맞이하셨습니다. 미실은 태자마마가 죽은 게 자신의 허물임을 믿었기 때문에 도망치듯 성을 나갔습니다. 그 동안 왕실에선 백방으로 병사를 풀어 수색해 온 것을 마마께서 모를 리 없습니다. 하온대 어떤 연유로 미실의 죄를 용서하고 그 허물을 받아들였습니까?”

“···.”

“마마, 말씀해 보시옵소서.”

“···글쎄, 알 수 없도다. 나 역시 미실이 갑자기 궁에 들어온 게 마치 도깨비를 본 듯 싶구나. 마음 한쪽에선 요망한 것이라고 미워하는 마음이 빗발치는데 다른 쪽에서는 내 마음이 그 아이를 받아들이라고 흔들지 않느냐.”

“마마, 참으로 이상한 일이옵니다. 어떻게 상대를 미워하는 마음이 바뀔 수 있나이까?”

“글쎄다.”

“연전에 하마도인(蝦蟆道人)이 죄를 얻은 건 미각산(麋角散)을 처방해 선대왕의 총애를 옥진궁주에게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그 자의 목을 이사부(異斯夫) 장군이 다스렸습니다만 죽음에 이르러서도 태연했던 건 복수할 준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면, 그 복수란 게 시작됐다는 것이냐?”

“그러하옵니다, 마마. 쇤네가 듣기엔 하마도인의 숨겨놓은 기술은 미혼산(迷魂散)이었습니다. 사람의 몸을 충동시키는 기술이 미각산이라면, 미혼산은 그 정신을 흔드는 것이라 보옵니다.”

“허나, 그런 기술이 있다 해도 멀리 떨어져있는 상대의 마음을 어찌 돌릴 수 있다는 게냐?”

“쇤네가 생각하기엔···.”

“생각하기엔?”

“술인가 싶나이다.”

“술?”

“옹추공이 들어와 가야명주를 내놓은 건 어제의 일이었나이다. 미실이 옹추공을 따라 궁에 들어온 건 오늘입니다. 그렇다보니 태후마마께서 술을 마셨다고 본 게 틀림없습니다. 그러했기에 죄인의 몸으로 당당히 보명궁에 들어온 것이지요.”

“···.”

“자신에게 닥칠 위험이 어떤 것인지 너무 잘 압니다. 태자마마를 죽음으로 몰았으니 관병에 나포되면 살 길이 없다는 것도 잘 알 일입니다. 그런데도 당당히 들어왔습니다. 죽음이 눈 앞인데 말입니다.”

“너의 얘긴, 미실이 사는 길을 안다 그 말이냐?”

“그러하옵니다. 태후마마의 처소에 외부에서 들어온 물건은 가야명주뿐입니다. 그 술을 마마께서 두 잔을 마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외엔 눈에 띌만한 일이 없습니다. 그런 것으로 보면 모든 게 술의 조화라고 생각됩니다. 태후마마, 우선 그 술을 멀리 하십시오. 술에 여느 사람이 모를 비방이 있다면 마마께서 미실을 미워하는 마음이 생기는 날이 시효(時效)의 마지막 날일  것입니다. 그때까지 만이라도 참아야 미실의 간교한 술책을 깨뜨릴 것이옵니다.”

“옹추공을 양온서 관리로 임명하는 것 역시 나중으로 미뤄야겠구먼.”

“그러하옵니다. 마마께서 몸이 불편하시단 이유로 며칠간만 임명을 유예하십시오. 다만, 상대가 이상이 여기지 않도록 선물을 듬뿍 보내시는 건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여사(女史)는 지금 곧 설약사에게 기통해 지금 곧 궁에 들어오도록 하라!”

▲여사(女史) ; 태후의 섹스 기록관

▲하마도인(蝦蟆道人) ; 지소태후의 연적 옥진궁주를 도운 기인. 이사부에게 처형됐다.

▲이사부(異斯夫) ; 가야 정벌의 총사령관으로 지소태후의 내연의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