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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일수불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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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의 이야기.
그러니까, 공립마법학교 제6학기 때의 기억이다. 졸업을 하기 위해선 1년하고도 조금 더. 내 나이 열여덟.
친구의 생일파티에서 그녀를 처음 보았다. 그녀의 정식 이름은 세레스티안 아그네시아라고 했지만, 우리 모두는 그저 세레스라 불렀다.
좋은 집안 출신이었고, 도시에서 꽤 알아주는(학비가 비싸다는 얘기다) 수준 높은 사립 여자스쿨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그녀가 왜 나에게 관심을 보였는지 정확한 이유를 떠올릴 수 없다. 관심과 동정은 충분히 혼돈할 만큼 동류항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적어도 나는 3초 안에 그 차이를 분별해낼 수 있다.
부모 없이 사원에서 고아로 자란 아이라면, 누구나 스스로 알 수 있게 되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가 내게 보여준 감정은 적어도 동정은 아니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동정의 눈빛은 그런 식으로 빛나지 않는다. 그녀는 화톳불 앞에 앉은 고양이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눈을 하곤, 파티 내내 나를 훔쳐보고 있었던 것이다.
결국, 내가 말을 걸었다.
「좋은 파티로군요.」
「네, 그래요.」
그녀가 대답했다. 가까이서보니 과연 좋은 집안의 영애답게 품위 있는 동그란 얼굴을 하고 있다.
드레스 위로 드러난 어깨가 눈부시도록 예뻤다. 아마도 일주일에 두세 번은, 노련한 하녀의 솜씨로 마사지 따위를 받고 있을 것이다.
「마법사세요?」
그녀가 내 손에 들린 책 표지를 보곤 물었다. 별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 327년 전에 태어나 꼬박 136년을 살다 간 마법사의 일대기였다. 화염계열의 마법에 정통하여 그 방면의 저술을 많이 남겼기에, 후학들은 그를 ‘불꽃의 대마법사’라는 별호로 부르기도 했다.
내가 그 책을 손에 들고 있는 이유는, 그저 표지가 멋졌고 가지고 다니기에 무게가 적당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본래 남의 인생 따위를, 그것도 소름이 끼치도록 포장된 허구를 들여다보는 일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다.
다음 주에 있을 중간고사 시험범위에 이 책이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더더욱 내 손에 들려있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수험서라고는 해도, 내가 이 책을 통해 암기한 유일한 사항은 그가 정확히 327년 전에 태어나 꼬박 136년을 살다 죽었다는 부분뿐이다(서문에 나온다). 아마도 이 책 전체를 통틀어 발견할 수 있는 유일한 ‘진실’일 것이다. 슬픈 일이지만.
「마법학교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내 곁에 서 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지만, 어쩐지 눅눅하지 않은 침묵이었다. 시간은 부드럽게 귓불을 핥듯 지나가고 있었다.
「마실 것 가져다줄까요?」 침묵을 깬 사람은 나였다.
「칸트라 비?(그래줄 수 있어요?)」 그녀가 고대어로 말했다.
「지우렌(물론이죠)」
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다.
중앙 테이블에서 포도주 두 잔을 가져왔다. 그녀와 나는 통성명을 했고, 포도주를 나누어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와아, 분위기 좋은데? 둘이 연애라도 하는 거야?」
생일의 주인공인 녀석이 우리의 대화 사이로 끼어들었다.
「무슨 소리에요. 우린 오늘 초면이라구요.」
세레스가 친구를 향해 살짝 눈을 흘겨보였다.
「후후… 잘 해 보라구, 세레스. 이 놈 그렇게 나쁜 놈은 아니야.」
「당신보다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아하! 이거 세레스님께 한 방 맞았군?」
녀석이 자신의 이마를 딱, 치더니 유쾌하다는 듯 웃으며 다시 사람들에게로 돌아갔다.
파티는 밤이 이슥해져서야 끝났다. 사람들은 제각기 뿔뿔이 흩어졌고, 몇 명만이 홀에 남았다.
나는 친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녀석은 사람들이 권한 축하주를 잔뜩 받아마신지라 반쯤 풀린 눈에 혀는 꼬부라져 있었다.
그래도 그가 고마웠다. 그 와중에서도 그는 이렇게 말해준 것이었다.
「야, 임마! 숙녀 분 혼자 가시지 않게 잘 모셔다 드려라.」
그리곤 그녀 몰래 내게 눈짓을 해보였다.
「나, 이뻐?」
그녀의 집은 내가 사는 도시로부터 서쪽에 위치한 이웃도시에 있었다. 가보진 않았지만, 그곳에 대해선 잘 알고 있다. 대표적인 부촌 중의 하나인 것이다.
「혼자 갈 수 있어요. 집에서 마차를 보내주었으니까요.」
「그래도 숙녀 혼자 밤길을 돌아가게 하는 건 도리가 아니죠. 괜찮으시다면 …」
그녀가 조용히 고개를 숙여보였다. 그렇다면, 이란 의미였다.
마차는 판박이로 찍어낸 듯 닮은 두 마리의 갈색 말이 끄는 이륜마차였다. 친구의 집을 나서니, 정문 앞에 마차가 대기하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에스코트해 마차에 오르게 한 뒤, 옆자리에 앉았다.
마차가 밤거리를 달리는 동안, 나와 그녀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창밖에 주로 시선을 두고 있었고, 나는 그녀의 옆모습을 바라보았다. 실내등에 비추인 그녀의 목덜미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내 왼손을 그녀의 무릎 위에 가지런히 놓인 두 손위에 내려놓았다. 그녀는 그제서야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지금,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밤공기만큼이나 신선한 미소였다.
하늘엔 첫 번째 달 루미너스가 빛나고.
대지 위로는 사람들의 밤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조심조심 마차가 달리고.
연인들은 깊게 입을 맞추고.
나는 작은 소리를 내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당시 학생들 사이에서 꽤 유행하던 곡이었다. 음정 따위, 잊은 지 오래되었지만 지금도 가사만큼은 별처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
사람에겐 누구나
만남이 정해져 있다네. 운명처럼. 약속처럼.
누구를 어떻게 만나고
얼마나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아파하고
상처가 나아가고.
만남은 물 잔처럼 양이 정해져 있기에
물 잔이 다 차버리면
더 이상의 만남은 없는 것
그래서
새로운 사랑이 생기면
지금의 사랑은 비워야 한다네
채워진 물 잔을 따라내듯
사랑을 보내야 하는 것이라네
운명처럼
약속처럼
드디어 마차가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꽤 이슥한 밤 시간이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돌아갈 거지요? 너무 늦은 시간 아니에요?」
그녀가 걱정을 했다.
「아직 노선마차가 끊어질 시간이 아니니 걱정하지 말아요, 세레스 양. 중심지로 나가면 집으로 가는 야간마차도 있을 거구요.」 내가 대답했다.
그녀는 그제서야 얼굴을 폈다. 그리곤 장갑을 벗더니 내 앞에 내밀었다. 나는 그 손을 잡고, 손등 위에 근사하게 입을 맞췄다.
「잘 자요. 세레스 양」
「다음에 다시 만날 수 있겠죠?」 그녀가 물었다.
나는 학교 기숙사 주소와 내 방 번호를 적어주었다. 그녀도 작게 적은 쪽지 한 장을 내게 건넸다.
마차에서 내린 그녀는 마지막으로 환한 미소를 지어 보인 뒤, 마부의 에스코트를 받아 정문으로 사라졌다.
나는 호주머니에서 연초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곤 페이퍼에 연초를 넣어 말이담배를 만들었다. 싸구려 연초 특유의 찌르는 향이 났다. 하지만 나는 이미 충분히 이 향에 익숙해져 있다.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 것이다.
개인적으로 인간은 신의 실패작이라는 데에 표를 던지고 있지만, 적어도 두 가지만큼은 나로서도 깜짝 놀랄 만큼 뛰어난 기능을 선물해 주었다는 생각이다.
희망이냐고? 개털!
그것은 바로,
적응, 그리고 망각.
적응해서 살아가든지, 그게 안 되면 잊고 살아라.
그게 내가 살아가는 방식이다. 내가 신의 존재를 믿는 유일한 방증이기도 하다.
자, 각설하고.
이젠 나도 집으로 돌아간다.
다 피운 연초를 발로 비벼 끄고는 그녀의 집을 뒤로 한 채 손을 들어 지나가는 노선마차 한 대를 불렀다.
마차에 오르며 슬쩍 돌아보니, 컴컴한 저택의 어딘가에 불이 들어와 있다. 그녀의 방일 것이다.
오래지 않아, 마차는 도시 중심부에 도착했다. 나는 마부에게 148페니를 건넸다.
굳이 마부에게 내어 준 교통비 148페니를 이 자리에서 밝힌 데에는 이유가 있다. 마차 삯은 150페니였고, 나는 마부와 2페니의 에누리를 놓고 잠시 실랑이를 했기 때문이다.
내가 그에게 148페니를 쥐어준(그 자식은 내게 재수 없는 놈! 이라고까지 했다.) 이유는 더욱 분명하다. 그것이, 그날 밤 내가 가진 전 재산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야간마차 따위를 타고 돌아갈 돈은 내게 없었다.
설사 돈이 있다한들 별 도움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이미 두 번째 달 파미르가 푸르스름한 빛을 뿌리며 떠올라 있었다. 야간마차가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 시간이란 의미이기도 했다.
나는 동쪽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살아가다보면 누구나 역경을 만난다. 그땐 두 가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멈추거나, 아니면 가야 한다.
가기로 결정했으면, 더 이상 생각할 것 없이 나아가야 한다.
지금은, 나아갈 때이다.
나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소지물을 점검해 보았다. 반쯤 연초가 담긴 작은 주머니, 말이용 페이퍼, 파티장에서 한줌 가지고 나온 디저트용 민트, 토막 난 연필 한 자루.
나쁘지 않다. 이 정도면 하룻밤 여행준비로 충분하다.
달콤한 밤바람을 정면으로 받으며, 나는 걸었다.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저 걸었을 뿐이다.
두 다리를 열심히 놀리고, 어깨는 펴고, 두 손은 호주머니에 쑤셔 넣은 채.
대지를 밟는 두 발바닥의 느낌에 집중하며.
하늘을 보았다. 구름떼 사이로 차갑게 빛나는 별무리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오시리스의 별을 찾아냈다. 오늘 나의 여정을 밝혀줄 이정표다.
오시리스의 위치를 보고, 나는 그녀와 헤어진 뒤 2시간 가까이 흘렀음을 알았다.
그녀는 지금쯤, 부드러운 공작털을 가득 채운 베개를 베고 깊은 잠에 들어 있을 것이다. 그녀는 꿈을 꾸고, 나는 걷는다.
그녀의 꿈결 속을 걷는다.
거리는 죽은 듯 조용했다. 제멋대로 취한 취객 몇 명을 제외하곤, 도로 위를 가로지르며 달리는 밤 고양이를 보았을 뿐이다. 아는 척을 해봤지만, 예상대로 녀석은 나를 잔뜩 경계했다. 녀석에게 있어 나는 평온한 밤을 방해하는 불청객일 뿐이었다.
<헤이, 지금은 당신들의 시간이 아니잖아. 밤은 우리에게 맡겨 두라구.>
길은 서서히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오시리스는 여전히 차가운 한광을 빛내며 동쪽을 향해 기울어가고 있다. 더불어 밤도 깊어간다.
4시간 째.
나는 불빛을 발견했다. 작은 가게였다. 어느 마을 어귀에나 하나쯤은 있을 법한, 밀가루와 야채, 아이들을 위한 사탕과자, 여인들을 위한 생리대 따위를 파는 흔한 가게 말이다.
가게 앞 평상에 한 남자가 앉아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사내에게 다가갔다.
사내는 뭔가에 골몰하고 있었다.
가로 세로 19로, 교차점 361의 단순하기 그지없는 옛 마법진.
바둑이었다.
요즘에는 마법학교 중등생 정도만 되어도 대개 기본으로 배우게 되는 동쪽 대륙 고대 마법진의 하나지만 어지간안 혜안이 아니고선 그 혼돈의 깊이를 들여다볼 수 없다.
바둑의 극성에 이르면 신계의 초입에 한 발을 디딜 수 있다는 말도 들은 기억이 있다.
「물 한잔 얻어 마실 수 있을까요?」
내 말에 그는 머리를 들어 나를 올려다보았다. 가까이서 보니 체구가 당당하고, 슬슬 앞머리가 벗어지기 시작한 중년의 사내였다. 덥수룩한 구렛나루가 턱까지 푸짐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영업은 끝났소.」
사내가 말했다.
「알고 있습니다. 무엇을 사려는 것은 아니고, 그저 물 한잔을 얻어 마시고 싶어서요. 꽤 먼 거리를 걸었더니 목이 마르군요.」
사내는 내 행색을 훑어보며 무언가 생각하는 듯 했다. 그러더니 다시 물었다.
「어디서 오는 길이요?」
나는 그의 말에 대답을 해주었다. 그는 다시금 나를 훑어보았다. 나는 조금 짜증이 났다. 그래서 그로부터 등을 돌리곤 다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뒤에서 그의 목소리가 들렸다.
「잠깐! 물을 달라고 하지 않았소?」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손짓을 해 자신의 마주 편 자리를 가리켰다. 나는 그가 가리킨 자리로 가 앉았다. 다리의 피가 한꺼번에 심장을 향해 역주하는 것 같았다.
「물보단 이게 낫겠지.」
사내는 나를 남겨둔 채 가게 안으로 들어가더니 커다란 병을 들고 나왔다. 병을 기울이자, 흰 거품과 함께 맥주가 흘러나왔다. 그가 맥주잔을 내게 건넸다.
「지금 전 돈이 없습니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가 잔을 내 앞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미 말하지 않았던가? 영업은 끝났다고. 지금 이건 파는 물건이 아니야. 그러니 마셔두게.」
나는 잔을 들어 맥주를 마셨다. 위장 속을 단숨에 얼려버릴 듯, 차갑고도 맛있는 맥주였다.
「맥주가 맛있군요.」 내가 칭찬하자, 그가 빙긋 웃어보였다. 자신의 잔을 단숨에 비우더니, 소매로 입에 묻은 거품을 닦으며 그가 말했다.
「연애사건이로군?」
「네에?」
「뻔하지 않은가? 이런 시간에 그런 곳에서부터 걸어오는 인간이 있다면, 연애사건 아니면 미친놈이겠지. 자넨 후자 쪽은 아닌 것 같으니 전자일 것이고. 내 말이 틀렸는가?」
나는 묵묵히 내 잔을 비웠다. 그가 다시 내 잔을 채워 주었다.
「보아하니 자네는 마법사 지망생이로군. 바둑은 배웠겠지?」
「드러낼 정도는 아닙니다.」
「일수불퇴 정도는 알겠지?」
「한번 두고 나면 무르지 못한다는 얘기 아닙니까?」
그가 흐흐흐 웃었다. 내 말에 별로 만족한 것 같지는 않았지만, 나 역시 개의치 않았다. 일수불퇴면 어떻고 낙장불입이면 또 어떠한가? 밤이 주는 공기가 상쾌하고 맥주는 더 없이 맛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어디까지 가는 거지?」
나는 그에게 내 목적지를 말해 주었다. 내가 다니는 공립마법학교의 이름을 듣더니,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제 가봐야겠습니다. 아시다시피 갈 길이 멉니다. 맥주 감사했습니다.」
그는 한 손을 들어 잘 가라는 손짓을 해보이고는, 혼자 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몸을 돌리자, 내 등을 향해 그가 말했다.
「이왕 가기로 한 길이면, 똑바로 가게. 후회 따위는 개에게나 주어 버리라지. 후회가 꿈을 앞서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게 되는 거야.」
오시리스의 빛이 홍차에 물을 타듯 조금씩 엷어지고 있었다.
도보 6시간째.
이제 목적지가 가시권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두 개의 마을을 지나고, 다시 두 개의 언덕을 지나면, 학교가 보일 것이다.
나는 길 옆 너도밤나무 아래 다리를 펴고 앉았다. 아예 신발까지 벗어던졌다.
이제 잠시 후면, 여명이 어둔 밤을 꾸역꾸역 밀어내기 시작할 것이다.
차가운 새벽공기가 목덜미로 스며들어와, 옷깃을 여몄다. 땅은 이슬을 머금어 축축했다.
나는 간단한 마법주문을 외워 몸을 훈훈하게 했다. 이것은 실제로 내 몸의 체온을 올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 짓을 섣불리 했다간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내 주문은 그저 육체의 감각을 잠시 속이는 정도에 불과했다.
연초를 피워 물었다. 이 밤의 마지막 연초였다.
이제 여행은 끝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마지막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포도주 잔을 쥔 하얀 손, 맑은 목소리, 보기 좋은 어깨와 목, 품위 있는 속눈썹과 반짝이는 눈.
내내 창밖을 바라보던 옆모습, 따스한 손, 나즈막히 떨리던 그녀의 숨결.
어쩐지 1년 전의 일인 것만 같았다. 하늘을 보니 이미 오시리스는 빛을 잃은 채, 서편 지평선 위로 이울고 있었다.
나는 그제서야 그녀가 작별하기 전 내게 건네준 쪽지가 생각났다. 다 피운 연초를 바닥에 버린 뒤, 나는 호주머니에서 그녀의 쪽지를 꺼냈다.
그리고 쪽지를 읽었다.
< 3층 두 번째 방이 내 방이에요. 뒤쪽에 계단이 있고 하녀가 안내할 거에요. 기다릴게요 - 세레스 >
다 읽은 쪽지를 호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여명이 밝아오고 있었다.
파르스름한 새벽이, 지난밤의 기운을 대지 한켠으로 밀어내며 동편으로부터 군대처럼 밀려오고 있었다.
나는 새벽을 뒤로 한 채, 왔던 길을 다시금 되돌아 걷기 시작했다.
후회가 꿈을 앞지르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는다.
적어도 나는 이날 밤,
길을 잃고 싶지는 않았던 것이다.
양실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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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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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가기로 한 길이면, 똑바로 가게. 후회가 꿈을 앞서는 순간, 우리는 길을 잃게 되는 거야.」-_-; 멋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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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dwind |
｜ 2004-11-24 오전 9:25: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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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양실짱님의 글을 즐겁게 읽는데 이상한 느낌이 종종 들어요. 어떤 때는 글재주가 직업 소설가를 뺨칠 정도시고 어떤 때는 졸작 - 실례되는 표현입니다만 ^^ - 이고.. 꽁트는 특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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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ildwind |
｜ 2004-11-24 오전 9:26: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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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견에 한마디 |
아예 문단에 데뷔를 하셔야 할 수준이라는 게 솔직한 감상입니다. 단편집 모아서 출간하세요. 농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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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간에선 바둑계의 재치만땅 필봉이라고도 하더군요. 양씰짱님은... 새로운 글을 준비중이신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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윽! mildwind 님께서 과찬을... 가끔은 이것저것 제가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있는 분야의 글을 써보곤 합니다 ^^; 좋게 보아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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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촙촙칙님 .... 그 필봉이란 표현은 도무지 .... 으윽 !!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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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작22 |
｜ 2004-11-27 오전 10:03: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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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의견에 한마디 |
스크랩 기능이 있군요..스크랩.. 근데 제가 무척 무지해서..필봉이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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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봉은요^^筆(붓필)棒(몽둥이봉) 우로 사료 됩니다 .물론 웃자는 이야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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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생각은 다릅니다.筆(붓필)峰(봉우리봉) 으로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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十年積功
양실짱
양실짱
자일색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