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이었다.

1945년 5월25일, 공교롭게도 65기 본인방전과 같은 날짜에 있었던  미 공군의 도쿄 대공습은 일본의 수도를 초토화 시켰고, 일본바둑의 상징인 일본기원 건물도 완파시켰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집을 잃은 신세가 된 일본바둑은 히로시마(廣島)의 한 후원자의 도움을 얻어 3회 본인방전을 히로시마 시내의 한 별장에서 열게 된다.

그날은 7월24일,  무더운 여름이었다.  1차전 승자는 '이와모토 가오루(岩本熏)'였고 패자는 2대 본인방 '하시모토 우타로(橋本宇太郞)'였다. 이날 3회 본인방전을 주도하고 입회인을 자청한  '세고에 겐사쿠'는 전쟁에서 참패의 수순으로 접어든 조국의 황혼을 보면서도 바둑까지 등불을 끌 수 없다는 심정으로 본인방전 유지를 소원했고 그의 바람대로 일차전이 갈무리된다.

7월24일 아침부터 26일 점심까지 벌어진 1차전은 히로시마 하늘을 무상으로 날아드는 미군기의 출현으로 공습경보가 발령되어 대국자와 관계자들이 방공호로 대피하는 등 어수선하기 그지 없었다. 2차전은 8월4일 히로시마 시내에서 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작은 마을 '이스까시(五日市)'에서 열렸다. 히로시마 상공에 출현하는 미군기의 동태를 심상찮게 여긴 히로시마 경찰서장의 경고(?)를 받고 이스까 시로 대국 장소를  옮긴 것이었다.

8월4일 시작된 본인방 결정전 2차전은 봉수와 봉수를 거쳐 6일 아침을 맞는다. 오전 8시 여름 햇살이 따갑게 내려 쪼이고 청아한 매미소리가 정적을 깨는 본인방전 결정전의 대국장소는 정적으로 가득했다. 다다미 위에 앉아 바둑판을 마른수건으로 닦고 그 위에 어제의 대국기보(碁譜)가 죽 놓여지는 찰나 이스까 시의 동쪽 하늘에서 섬광이 번쩍였다. 섬광은 3초나 계속되었다. 마른하늘에 내리치는 번개와는 모양과 형태가 달랐다. 대국장에 앉아 있던 세고에, 하시모토, 이와모토 등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 !!"

3초 정도가 더 지났다. 버섯모양의 거대한 구름이 히로시마 하늘 위로 떠오르더니 비명도 지를 사이 없이 대국장의 유리창이 모두 박살났다. 이날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진 원자폭탄은 발악으로 치닫던 일본 군국주의의 허망한 꿈을 수포로 돌려 놓았다.

그래도 대국은 계속된다. 다섯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유리창이 깨진 대국실을 정리한 후에야 3일간의 대국을 모두 마친 것이다. 이날은 하시모토의 승리로 3대 본인방전은 1대1이 된다. 이날 히로시마 원폭으로 세고에의 아들과 조카가 사망하는 참사가 발생한다. 세고에의 아들은 방사능에 피폭되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전쟁은 이토록 참혹하다. 전쟁의 시대를 거친 일본바둑계는 본부건물의 파괴와 당대 일본바둑계의 유력인사의 아들과 조카의 사망이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뤄야 했다. 그래도 바둑은 두어졌다.

이와모토 가오루는 부산 출생(본 칼럼 부산바둑을 말하다 참고)이다.

이와모토는 사업가로 부산 조계지역에서 부를 키운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열세살 때 일본으로 돌아가 3대,4대 본인방이 된 사람이다. 훗날 사가들은 그의 이력서를 토대로 일본 출생을 주장하나 필자는 이 점에 문제를 제기한다.

3대, 4대 본인방 이와모토 가오루.

지금, 일본에 큰 사변이 일어났다. 지진과 쓰나미 그리고 원자력발전소의 파괴로 인한 방사능 누출이 일어나 정신적 공황은 물론 금전으로 환산하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피해가 발생하여 일본을 혼미상태로 몰아가고 있다. 이런 상황 아래서 일본바둑도 움찔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몇개 기전의 중단과 연기라는 뉴스가 잇따른다. 재난 상황이 전(全) 일본적이고 시시각각 전달되는 피해의 느낌이 공포스럽기까지 해 기전 중단과 연기 결정이 이해가 간다.

사망자의 위로와 실종자의 조속한 복귀 그리고 살아남은 이재민들의 생활복귀가 시급하게 해결되면 좋겠다.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의  십시일반도 필요할 것이다. 그리고 일본바둑계에 위로와 충고(?)도 한마디 하고 싶다. 충고는 일본바둑의 명사 이와모토 가오루의 말을 반복해 드리는 것으로 대신한다. 이와모토는 68년 도쿄신문 인터뷰에서 말했다. '중단으로는 발전을 이룰 수 없다.' 당시 일본기전의 하나가 스폰서 문제로 갈등을 빚을 때였다.

원자폭탄이 6킬로미터 정도 떨어진  곳에  떨어져 대국실의 유리창이 모두 박살 난 혼란의 순간에도 종국을 하고 계가를 마친 대국 당사자의 말을 반면교사로 삼아 오늘보다 빛나는  내일의 일본바둑을 일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