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항주에 왔던 조선사신단
2. 청국 국수 서성우
3. 출가를 한 청나라 황제
4. 사고전서 속의 바둑책들
5. 대 기성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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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사고전서 속의 바둑책들


기록없이 미래 없다.

순치제 복림의 등장과 함께 조선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심양에서 귀국한 후 소현세자의  죽음과 함께 왕위에 오른 효종(봉림대군)의 재위 5년 1654년 7월13일, 궁궐안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국청이 열린다. 제주도로 귀양을 갔던 소현세자의 부인인 강씨를 구명하는 상소를 올렸던 황해도 감사 김홍욱(金弘郁)이 체포되어 끌려와 모진 고문을 당하다 다음과 같은 발언을 쏟아낸다.

어찌 말하지 않으랴? 어찌 말하지 않으랴? 옛날부터 간언한 사람을 죽이고 망하지 않은 나라 없다. 신은 용방이나 비간(중국의 간언자들로 모두 참혹하게 죽었다)을 지하에서 만나 놀겠소이다. 내가 죽으면 나의 눈을 빼어 도성문에 높게 걸면 나라가 망하는 것을 보겠소이다.(胡不言 胡不言 自古殺言者 而國家有不忘者乎 臣願與龍逢比干 同遊于地下 死後抉吾目 懸都門 其國家之危亡矣) -효종실록.

소현세자의 죽음과 함께 그의 직계를 제거하여 후환을 끊어내려 한 효종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다가 친국장에서 고문 중에 사망한 김홍욱의 최후의 모습이 장렬하지만 그 장면을 가감 없이 기록한 사관(史官)의 모습도 선연하다. 중국의 사서인 25사를 일독했다 자부(?)하던 필자도 25사에서 이런 생생한 장면을 보지 못했다. 중국을 떠도는 강직한 신하나 협객담들도 그들이 죽은 수백년 후 매명 필자들의 창작욕구를 기반으로 첨삭된 것이 대부분이고 보면 김홍욱의 모습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효종 앞에서 나의 시신에서 눈을 빼내어 도성문에 걸어두면 나라 망하는 꼴을 보겠다던 김홍욱의 담대한 모습은 '사기열전' 에 등장하는 '오자서'의 빰을 치고도 남는다. 효종은 이 장면에서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이다. 북벌군주 효종과 조선 성리학의 거봉(?)이라는 송시열이 궁합을 맞추던 시대에도 이런 부조리한 모습이 있었던 것이다. 이날 실록의 사관은 아무런 평가 없이 담백하게 기록하고 있다.

사고전서 속의 바둑책들.

강희제 옹정제를 뒤이은 건륭제는 건륭38년 1773년  고대부터 당대에 이르는 서적 8만여 권을 모아 한곳에 보관하는 작업을 한다. 책임자 '기윤'과 380여 명으로 구성된 실무팀은 중국의 모든 책을 구입, 분류하여 북경에 보관하고  따로 봉천 항주 열하에 '서고'를 설치하여  보관한다. 기윤은 조선의 박제가를 높게 평가하는 등 조선에 우호적이었던 인물이다. 사고전서 속에는 조선의 강산, 수도, 국수 등 많은 조선자료도 있다.

이 서고에 중국의 바둑자료들이 모아진 것은 당연하다. 규장각을 설치하고 성리학에 반하는 책자를 모두 내치고 불태우기까지 한 조선의 도서관 정책이 아쉽게 떠오르는 장면이다. 사고전서 안에는 80여 종 수백 책의 바둑자료들이 있다. 다음의 자료가 그것이다.


[林鴻 編 .碁經 . 忘憂淸樂集 / 李逸民(宋) 撰 . 適情錄 / 林應龍(明) 撰 .秋仙遺譜 / 저克明(明) 撰 . 奕史 / 王穉登 撰 . 奕藪 / 蘇之軾(明) 撰 . 仙機武庫 1 / 陸玄宇(明) 輯 -- 仙機軾庫 2 / 陸玄宇(明) 輯 .潞藩輯纂萬彙仙機碁譜 1 / 吳貞吉(淸) 輯 .兼山堂奕譜 / 徐星友(淸) 輯 .  官子譜 / 陶式玉(淸) 輯 .官子譜 / 林則徐(淸) 輯評 -- 奕妙 / 吳峻(淸) 輯 .桃花泉奕譜 / 范世勳(淸) 撰 .奕理指歸圖, 1 / 施襄夏(淸) 撰 ; 錢長澤(淸) 繪圖 .奕理指歸圖 2 / 施襄夏(淸) 撰 ; 錢長澤(淸) 繪圖 .奕理指歸續編 / 施襄夏(淸) 撰 . 過伯齡先生四子譜 / 過文年(淸) 撰 .奕程 / 張雅博(淸) 撰 . 餐菊齋棋評 /  周嘉양(淸) 撰 -- 寄靑霞館奕選 寄靑霞館奕選續編 1 / 王存善(淸) 輯 -- 寄靑霞館奕選 寄靑霞館奕選續編 2 / 王存善(淸) 輯 . 瀋景齋奕譜約選 / 楚桐隱(淸) ; 章芝楣 輯 .  橘中秘 / 朱晉楨(明) 輯 .適情雅趣 / 徐芝(淸) 輯 .心武殘編四卷首 / 薛丙(淸) 輯 .竹香齋象戱譜]



(1830년대 만들어진 일본의 기보집)


자료는 내용이 다양하고 방대하다. 일본의 자료들을 능가하고 남는다. 겸산당혁보 적정록 선기무고 기청하관혁선 등 중국의 바둑자료는 엄청나다. 내용도 찰지고 튼실하다. '청초오국수'의 쟁투는 일본 사안가(四安家)의 담론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오늘날 일본 바둑문화가 한국은 물론 중국을 뛰어넘는 이유는 19세기 초에 발달한 일본출판문화의 힘이다. 사실 중국의 바둑출판도 한국과 비슷한 실정이다. 출판시장이 거의 제로인 한국에 비해 조금은 낮다 할 수 있겠으나 이런 척박한 풍토에서 바둑문화의 꽃이 피어나기란 난망일 것이다.

그렇다 해도 기록이 없고 자료가 없어 못한다는 말은 필자는 인정하지 않는다. 필자는 여러번 국내에 수많은 기록과 10여 종이 넘는 바둑책이 존재한다고 말한 바 있다. 국내의 기록과 자료 속에는 김홍욱 같은 빛나는 기록과 자료도  있다. 성의가 부족했다. 관심도 부족했었다. 그러나 그런 이유와 반성만으로는 부족하다. 누가 이 일을 해주나. 바둑문화의 척박을 논하는 필자와  바로 당신들의 몫이다. (다음편, 대국수 황룡사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