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항주에 왔던 조선사신단
2. 청국 국수 서성우
3. 출가를 한 청나라 황제
4. 사고전서 속의 바둑책들
5. 대 기성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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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출가를 한 중국 황제


청사(淸史)는 중국의 마지막 왕조이면서 사서(史書) 편찬의 덕목에서는 가장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다. 원세개 등이 편찬자로 나선 '청사'는 망국 과정의 혼란한 정세 탓에 여러가지 문제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흐리멍텅한 편찬 과정의 청사는 여러종류의 야담을 생산하게 되는데 그중 가장 대표적인 에피소드가 '순치제(順治帝 1638-1664)'의 출가다.

순치제 복림(福臨)은 '강희제'의 아버지로 심양에서 홍타이치의 뒤를 이어 1644년, 일곱살 나이로 만주여진의 황제로 등극하여 동년 3월19일 북경성으로 입성을 한 인물이다. 이 나이어린 황제는 야담을 생산할 수밖에 없었다. 에피소드는 말한다. 어머니 장비(壯妃)의 영향으로 영특하고 감수성이 풍부했던 복림은 불교에 흠뻑 빠져 있었다. 일곱살에 황제에 올라 18년동안 재위를 하다 27세 되는 해 홀연히 중국 오대산으로 출가를 했다는 것이다. 그가 남긴 출가송은 이 에피소드의 중요한 단서로  회자된다.

곤룡포를 가사로 바꾸어 입은 것은

애당초 품었던 생각과 별 차이 없다네.

내 본래 서쪽을 떠돌던 납자거늘

인연세를 거쳐 황가로 왔었네.

아 나의 본래 모습은 무엇인고

이 처럼 큰 사람이 된 이유는 무엇인고

백년의 일은 한바탕 꿈이고

만리강산도 하나의 바둑판일세.

(黃袍換劫紫袈娑 . 兄爲堂初無念羞. 我本西方一納子. 緣得何落在皇家. 未曾生我誰是我. 長大成人方是誰. 百年世事三更夢.萬里江山一局碁)

(중국 자료. 설법을 듣는 순치제 복림)

장시(長詩) 중의 일부인 이 시는 한 사람의 출가송으로 손색이 없다. 동시에 복림의 불교사랑도 정평이 나 있다. 만주, 건주, 흑수 등 여진 6부족은 문수신앙으로 뭉쳐진 부족으로 누루하치, 홍타이치, 복림, 협엽까지 청 황실은 불교에 심취해 있었던 것도 맞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복림은 못 볼 꼴을 많이 본다. 여진족의 태양 같던 홍타이치가 급서를 하면서 부족 전체에 불어닥친 정치투쟁의 대안으로 일곱살에 황제에 올라 자신의 황제자리를 지켜주기 위해 작은아버지에게 시집을 가는 어머니를 목도(?)하기도 한다. 이런 사건은 감수성 예민한 어린 복림을  정신적으로 괴롭혔을 것이다. 그리고 복림은 27세로 사망한다. 일련의 이런 우울한 과정이 복림의 출가설을 그럴 듯하게 만들었던 듯하다.

그러나 사실의 역사는 그렇지 않다. 청사는 천연두로 그가 사망했음을 알리고 있고 왕희가 지은 '왕희정년보'는 '복림이 죽자 그의 시신을 경산 수황전(壽黃殿)에서 다비장으로 치뤘다' 기록하고 있다. 복림은 서예와 바둑이 취미였다. 출가송으로 알려진 그의 시 몇 구절은 동양 승려들의 애송구(愛誦句)가 되었고 오청원이 즐겨 인용하는 구절이기도 하다. 여진족은 바둑을 '미그망(微罔)'이라 했다. 13줄 기반을 사용했고 몽골지역도 비슷했다.

복림에게 황위를 물려 받은 강희제 '현엽' 초기에 중국에는 청초오국수(淸初五國手)가 활동하던 시대다. 황룡사, 왕한년, 주송후, 주라예, 서성우가 그들이다. 복림은 예민한 감수성과 함께 인간에 대한 사랑도 깊었던 인물이다. 심양에 볼모로 잡혀와 있던 소현세자와 복림대군을 군신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귀국시킨 사람이 복림이다. 특히 작은아버지이자 양부(?)였던 '다이곤'에게 시집을 와 있다가 과부가 된 조선의 의순공주(義順公主)를 고향으로 돌려보낸 적도 있다.

복림의 뒤를 이은 강희제는 중국사회에 큰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 바람은 중국역사에서 보기 힘들던 역동적인 것이었다. 그런 배경 속에서 '청초오국수'가 출현한 것은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바둑사에도 큰 축복이라 할 수 있다. (다음편, 사고전서 속의 바둑책들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