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都彌, 百濟人也. 雖編戶小民, 而頗知義理. 其妻美麗, 亦有節行, 爲時人所稱. 蓋婁王聞之, 召都彌與語曰: "凡婦人之德, 雖以貞潔爲先, 若在幽昏無人之處, 誘之以巧言, 則能不動心者, 鮮矣乎!" 對曰: "人之情, 不可測也, 而若臣之妻者, 雖死無貳者也." 王欲試之, 留都彌以事, 使一近臣, 假王衣服馬從, 夜抵其家, 使人先報王來. 謂其婦曰: "我久聞爾好, 與<都彌>博得之. 來日入爾爲宮人, 自此後, 爾身吾所有也."

遂將亂之. 婦曰: "國王無妄語, 吾敢不順? 請大王先人入室! 吾更衣乃進." 退而雜　一婢子薦之. 王後知見欺, 大怒, 誣都彌以罪, 　其兩眸子, 使人牽出之, 置小船泛之河上. 遂引其婦, 强欲淫之. 婦曰: "今良人已失, 單獨一身, 不能自持. 況爲王御, 豈敢相違? 今以月經, 渾身汚穢, 請俟他日, 薰浴而後來." 王信而許之. 婦便逃至江口, 不能渡, 呼天慟哭, 忽見孤舟, 隨波而至, 乘至泉城島, 遇其夫, 未死掘草根以喫, 遂與同舟, 至高句麗　山之下. 麗人哀之, 　以衣食. 遂苟活, 終於 羈旅.
- 삼국사기열전 도미조.

백제에는 일찍이 바둑이 들어와 있었다. 삼국사기는 물론 25사의 동이전(東夷傳) 곳곳에 백제의 바둑이 보일 정도로 유행했다.  25사에 전하는 한반도 바둑관련 기록은 주서, 구당서, 수서, 신당서 등으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주서는 이들 사서들 중에서 백제에 대한 매우 충실한 기록을 보여준다. 이런 대목이 특히 그렇다.

백제는 책을 좋아하고 글을 잘짓는 사람들이 있다. 혼례와 예법이 중국과 비슷하고 부모와 남편이 죽으면 3년상을 치른다.

도미설화는 백제 20대왕 개로(蓋鹵)왕과 연결되어 그의 체모를 여지없이 깎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 논지는 문제가 있다. 삼국사기 열전은 개로(蓋鹵)가 아닌 개루(蓋蔞)라 분명하게 특정하고 있다. 개루는 백제의 4대왕이다. 개루(? -166)는 '기루왕'의 아들로 삼국사기 기록은 간략하다. 한강에 두 마리 용이 나타났다는 기록과 성격이 공손하고 품행이 방정했다는 정도가 전부다. 재위기간은 38년으로 비교적 길다.

개로왕과 개루왕의 사이에는 대략 3백년 간의 시간차이가 난다. 개로와 개루왕은 비슷한 이름이지만 삼국사기의 기록을 혼동시킬 정도는 아니다. 그럼에도 도미설화가 개로왕의 만행(?)으로 낙점된 것은 순전히 '이병도'의 작품(?)이다. 이병도는 도미설화에 나오는 도미부부가 배를 타고 고구려땅으로 갔다는 대목을 들어 개루왕 때의 일이 아니라고 했다. 작은 배로는 바다를 건너 백제와 고구려 사이에 있는 낙랑국을 지나칠 수 없다는 것이다. 개로왕의 또 다른 이름이 '근개루'라는 점과 개로왕의 허랑방탕한 이미지도 참고되었을 것이다.

도미부인의 사당.

그리고 이 설화를 논하는 더이상의 논지는 없다. 그저 이병도가 말했으니 그것으로 끝이라는 식이다. 필자는 이 대목에서 이병도보다는 김부식을 더 믿고싶다. 적어도 김부식이 '삼국사기'라는 사서를 편찬하면서 백제의 왕계와 왕의 이름을 혼동하거나 착각했다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작은배를 타고 바다를 건널 수 없다는 이병도의 판단도 독단이다. 작은 나무판자를 의지해 현해탄을 표류하여 일본에 상륙한 사례도 빈번한 상황에서 불과 기백 리 길의 연안을 항해할 수 없다는것은 추측에 불과하다.

큰 고민없이 한 노학자의 발언을 깊게 따져보지 않고 더이상의 의문도 갖지 않는 논자(論者)들의 인식도 허망하기는 매한가지다. 개루왕은 2세기 사람이다. 2세기 한성 백제 부근에는 마한, 낙랑, 고구려 등이 고대국가를 지향하며 한껏 경쟁을 하던 때로 문화도 자못 뜨거웠다. 개루왕은 바둑에 여인을 내기로 거는 지경까지 이른다.

도미열전은 도미박득지래(都彌博得知來)라 한다. 도미를 바둑으로 얻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박(博)이 주목된다. 박은 원래 바둑과 비슷한 또 다른 종류의 반상게임으로 '박혁'과도 같은 말이다. 박혁이 언제부터인지 바둑과 장기를 포함한 의미로 인식되기 시작했지만 원래의 의미는 그것이 아니었다.

필자는 이와 무관하게 도미의 기사의 '박'을 바둑으로 본다. 이 시대 백제의 놀이를 기록한 25사와 삼국사기에 바둑과 무관한 '박'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 까닭이다. 김부식 시대에 '박'은 분명 바둑의 의미로 쓰였음을 근거로 도미기록의 '박'을 바둑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본다. 이렇다면 한반도 바둑기록은 정사(正史)의 기록으로 2세기까지 소급할 수 있다.

우리는 한국바둑 2천년을 말한다. 우리가 천년의 소리라 말하는 판소리(唱)도 소급연대가 조선후기를 벗어나지 않는 것과 비교하면 바둑은 실로 알찬 기록의 지원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국바둑 2천년.

오늘날 우리 곁에 있는 것들 중에서  2천년 역사가 있는 것이 무엇이 있는가? 그것을 한번 곰곰 생각해 보시라. 무엇이 있나. 한자, 종이 불교 그리고 강압적인 사랑(?)과 그에 상처받는 소시민... 이곳에 한 두가지를 더 첨가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도 역사학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