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바둑담론 안에 요순설만큼이나 허전한 담론이 유성룡 에피소드일 것이다. 유성룡이 바둑의 고수였다느니 선조임금과 이여송(李如松)의 바둑을 우산 틈으로 쏟아지는 햇빛으로 훈수했다느니 하는 말은 아무런 근거와 출처 없이도 끈질긴 생명력(?)으로 오늘날까지 맹위를 떨친다. 불과 얼마전에 출간되어 대학바둑학과 부교재로 쓰이는 책자 속에도 유성룡의 바둑담은 살아 기능한다.

유성룡의 바둑에피소드는 박종화 정비석 김성한 등의 역사소설에 전설을 근거로 등장하는 것이 전부로 바둑사를 생산하는 필자들의 게으름과 무지는 도를 넘어선다. 유성룡이 우리 역사설화로 등장하는 최고점은 '어유야담'이다. 이여송이 13세 때 아버지 이성량을 따라 요동지방에 왔다가 의주를 유람하고 갔다는 것이다. 이 말을 이여송이 선조임금에게 "내가 어렸을 때 귀국을 유람한 적이 있다(俺幼時嘗遊貴地)" 했다는 것이다.

유몽인의 이 기록은 이여송 유성룡의 바둑담에 비교하면 약과(?)다. 유몽인은 당대의 조선에 전하는 모든 야사를 끌어모아 야담집을 만들었는데 이여송을 빼놓지 않았다. 이여송 야담은 그가  조선의 혈맥을 끊은 장본인이다는 등 몇가지가 더 전한다. 물론 아무런 근거와 출처 없는 말들이다.

이여송은 만력20년(1592) 12월 말에 조선에 들어와 다음해 9월 명나라로 돌아간 장수다. 필자는 이여송과 유성룡의 조우관계를 조선실록과 징비록(懲毖錄)에서 찾아보았다. 징비록은 유성룡의 저작으로 시경에서 따온 말이다. 원문은 내가 잘못을 뉘우치고 경계를 삼아 훗날에 화가 없기를 바라네(予畿微而毖候患)이다. 이여송과 유성룡의 조우관계는 다음과 같다.

가) 만력21년(1592) 1월 안주성에서 첫 대면을 하다. 유성룡은 이여송의 풍채가 아주 좋다 했다. 이여송이 만남을 기념해 부채에 시를 한 수 적어 보내 주었다.

나) 만력22년(1593) 3월초 파주에서 두번째 만남. 전투에 소극적인 이여송에 대한 좋지 않은 감정 피력.

다) 3월말 개성에서 다시 만남. 명군에 대한 도움이 미약하다며 분노한 이여송 앞에서 유성룡 무릎을 꿇음.

라) 4월7일 평양에서 개성으로 돌아온 이여송을 다시 만남, 황제깃발에 예의를 표시하지 않았다는 죄(?)로 다시 문책을 받음.

마) 4월20일 한양 수복.

바) 9월 말 이여송 조선을 떠남.

이여송은 임진왜란 초기 10개월 정도를 조선에 출병했다가 돌아간 사람이다. 7년여를 끈 임진왜란사에 명나라 장수로 활약한 양호, 진유정 등에 비하면 활약상이 미미하고 조선의 평가도 전반적으로 좋지 못한 사람이다. 그러함에도 이여송이 이름을 얻은 것은 전쟁의 초반부에 나타나 평양성을 탈환한 전과가 강렬했던 때문인 듯하다.

이여송과 선조임금의 조우는 더욱 소략하다. 선조임금이 여러번 이여송의 사람됨과 활동상을 보고받은 기록은 있으나 두 사람이 직접 만나 무엇인가를 도모한 기록은 찾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이여송과 선조의 바둑담은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한가하다. 이여송은 명나라 자료로 추정할 때 바둑을 조금 아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성룡의 바둑을 얼마나 이해했는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필자가 알기로 유성룡과 바둑의 직접적인 접점은 조선실록의 언급 한 줄이다. 유성룡은 호남 방어책을 묻는 선조임금에게 요새를 지키는 것은 바둑의 포석과 같다(守險阻鬪碁置子) 했다. 유성룡과 이여송은 임진왜란의 개전 초기에 조-명군 양진영에서 각자 분주했던 사람들이다. 이 두 사람이 바둑을 전혀 몰랐다고는 할 수 없으나 이들이 바둑의 고수였다는 식으로 나가는 것은 근거 부족이다. 이런 현실을 망각하고 두 사람의 바둑담을 창작하는 것은 소설가의 작업이지 역사가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고 시정되지 않는 곳이 우리의 바둑계다.

                                        (현현기경 이필이 바둑론)

현현기경만 해도 그렇다.

필자가 알기로 국내에 온전한 모습의 현현기경은 단 한번도 출간된 적이 없었다. 그저 판매를 위한 묘수풀이를 끌어모아 만든 책만이  있었을 뿐이다. 현현기경의 원본을 확정하고 분석과 해석을 통한 완전한 모습의 현현기경을 구현하는 것이 정답인데 능력도 그럴 마음도 없다보니 그저 눈깜 땡깜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바둑팬이 본다. 그리고 종국에는 부실하고 허접한 바둑문화라는 오명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