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항주에 왔던 조선사신단
2. 청국 국수 서성우
3. 출가를 한 청나라 황제
4. 사고전서 속의 바둑책들
5. 대 기성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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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대 기성 황룡사


명말 청초는 변혁의 시대다. 홍타이치의 만주 8기군이 북경성 입성을 시도하던 때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의 앞에서는 치열한 천문논쟁이 벌어진다. '탕양망'이 서양에서 들여온 지동설을 주장하며 이제까지의 역법을 폐기하고 새로운 역법을 시행해야 한다 주장했고 이 주장을 놓고 중국의 천문학자들과 열띤 토의를 벌인 것이다.

숭정제는 탕양망의 손을 들어준다. 이때가 1641년으로 1790년 조선에서 지동설과 땅이 둥굴다는 천문 이론이 나오자 '그렇다면 땅 반대편에 사는 사람들은 땅밑으로 떨어지나?"를 묻던 사람이 정조임금이고 보면 군주에게 과학의 상식을 묻는 것이 무색해진다.

역사에서 무능력의 상징인  숭정제와 개혁문화 군주의 상징인 정조에게 덧씌워진 역사의 인식을 생각하면서 '황룡사(黃龍士)'를 돌아보게 된다. 황룡사는 강희제가 청초의 명사 14인중 한명으로 지목할 정도로 유명한 인물로 후대의 기록자들의 덧칠(?)이 불필요한 인물이다. 강희제가 꼽은 14인은 고염무, 왕부지, 황종희 등이니 바둑인 황룡사의 성가(聲價)가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이 칼럼에서 황룡사의 활동 상황을 부언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그에대한 일반적인 에피소드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의 한다하는 필자들도 황룡사의 생애에 대해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지 못하고 몇가지 설(?)에 의지하여 적당히 넘기고 있는 점은 유감이다. 황룡사를 거론한 수많은 필자들의 논조는 부유한 집 아들과, 밑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아들로 출발하는 두개의 상반된 출생담으로 일관한다. 이 두개의 성장담을 거론하고 그의 기보 몇점을 적당히 늘어 놓고 끝을 내는 것이 전부다.

황룡사가 부유한 집의 아들이란 소리는 서성우가,  밑이 찢어지게 가난한 집의 아들이란 말은 명나라 시인 '두준'이  최초 발설자다. 이 기록들도 팩트가 아닌 유언(流言) 형식을 취하고 있다. 그 속에서 황룡사가 몽고 귀족의 동색(童色)의 대상이었다는 황당한 에피소드로 발전한 사례도 있을 정도다.

                       겸산당혁보에는 황룡사의 기보가 10여 국 수록되어 있다.

그러니까 황룡사의 진면모는 황룡사의 20대에서 40대 그가 남긴 120여 국의 '기보'와  기보 생산 과정에 부산물로 치부된 약간의 에피소드가 전부인 것이다. 다시 말해 기보 외에 황룡사의 인생은 아무것도 없는 꼴이다. 바로 이 점이  바둑고수로 주목할만한 성과가 있다면 그 사람의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을 실오라기 한점 남기지 않고 기록 보존하는 일본과 다른 중국바둑의 모습이다.  

그러나 중국바둑의 역사적 자료들은 찰지고 튼실하다. 황룡사의 이력이 깃든 자료도 의외로 많다. 청말에 쓰여진 백화소설 '난가징(爛柯徵)'은 황룡사의 비화를 가득 담아내고 있다. 난가징에 대해서는 훗날 말할 때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중국바둑사의 자료는 일본을 능가한다 말하고 싶다. 필자들의 관심부족만이 있었을 뿐이다.

필자의 생각은 그렇다.

중국바둑사도 우리의 그것과 비슷하다. 중국바둑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마니아가 나타난다면 일본바둑사를 능가하는 풍성한 바둑담이 생산될 것으로 본다. 중국바둑은 울지 않는 무성종(无聲鐘)이다. 무성종이란 말은 명나라 시인 '윤세(尹世)'의 시에 나오는 말이다. 만년한철로 만들어져 두드려 소리가 나지 않고 마음으로 두드려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구절에서 필자가 취해온 말이다. 무성종 중국바둑담론의 종(鐘)이 울릴 날을 기대한다.

아마도 그 종소리는 맑고 여운은 길 것이다.


주:  난가산 (조선실록)  如賀藍山前略而不甚者有何愼武相逢賀蘭山前, 聊博戲, 臣何懼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