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 항주에 왔던 조선사신단
2. 청국 국수 서성우
3. 출가를 한 청나라 황제
4. 사고전서 속의 바둑책들
5. 대 기성 황룡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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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청국 국수 서성우


서성우(徐聖友)는 황룡사 범서병 시양하로 이어지는 청대 고수들의 계보에서 정점에 서 있던 인물이다. 서성우는 1652년 항주 출신인 황룡사보다 몇살 아래로 황룡사의 실력에 눌려 힘을 못쓰다가 비교적 일찍 죽은 황룡사 이후 30여년을 중국바둑의 최고수로 군림한다.

서성우는 다소 경망스럽고 거만하며 독선적인 성격으로 알려져 있다. 끝없이 황룡사에 도전하던 서성우의 청년기 에피소드는 결코 그에게 우호적이지 않았다. 이 시대 서성우는 상대적으로 고수였던 황룡사에게 '토혈 십국(十局)'의 기보를 남길 정도로 독하고 치열했다. 훗날 기청하관혁선(奇靑霞館奕選)으로 정리된 황룡사와 서성우의 23국 기보는 실로 유명하다.

서성우에 대한 마타도어는 '기청하관혁선'이 시발이다. '기청하관혁선'  1897년대 바둑인 왕존선(王存善)이 편찬한 책으로 그는 황룡사의 열혈 팬으로 서성우에대한 악의적 비방을 서슴지 않는다. 서성우가 황룡사를 꺾기 위해 날마다 주색을 접대하여 건강을 해쳐 사망케 했다거나 서성우가 내기바둑에 미쳤다는 등 책자의 출판 의도를 의심케 하는 발언이 실려 있다. 이런 점은 중국 문화계의 병폐다. 서성우를 지지하는 입장에서 쓰여진 기록 중에는 황룡사가 어릴 때 몽고 귀족의 남색(?) 대상이었다는 황당한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다.

인재에 대한 시기질투는 어느 시대 어느 분야를 막론하고 있기 마련이다. 하물며 같은 시대 중국바둑의 패권을 놓고 수십년을 다투던 라이벌 관계였던 서성우와 황룡사이고 보면 이 정도의 에피소드는 이해가 된다. 서성우 황룡사가 살던 시대 중국에는 '왕한년(汪漢年)' '주동후(周東侯)' '주라예'라는 걸출한 고수들이 있었고 이들의 용쟁호투에 열광하는 후원자들과 마니아들의 뜨거운 호응이 상대를 깎아내리는 감정을 촉발시킨 것이라 하겠다.

필자는 40권 정도의 중국 고대 바둑자료를 읽었다. 5년전인가 중국에서 복사해온 자료들이다. 국내의 모 유력신문의 칼럼에서 열을 내며  바둑을 논한 중국 자료 한권은 바둑이 아닌 장기임을 알고 쓴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현현기경' '관자보' 등 몇권의 자료에 의지하는 국내의 바둑문화 풍토가 한심하다. 그토록 한국바둑계가 기려 마지(?) 않는 현현기경의 완역본도 국내에 단 한 종도 없다. 이런 풍토에서 바둑의 발전은 공염불이고 연목구어다.

(왕한년의 실전보)


서성우와 황룡사가 군웅을 다투던 시대 중국 자료를 종합해 보면, 황룡사와 왕한년이 치열하게 다투며 황룡사가 우위를 점유하다 서성우에게 패권이 넘어간  모습이다. 필자는 서성우를 단순한 기력만을 들어 최고라고는 평가하고 싶지 않다. 서성우는 '겸산당혁보'에 왕한년을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왕은 (주라예)에게 여러판 졌다. 이 패배를 약으로 삼아 바둑의 사고방식을 바꾸어 높은 단계로 나아갔다.  (汪陽州之數敗 而發憤累磅碁習 爲高手也)

서성우는 겸산당혁보라는 책을 통해 중국바둑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열어 보여 주었다. 서성우는 마타도어의 시비대상일 정도로 졸렬한 사람이 아니다. 서성우는 당대 라이벌이기도 했던 왕한년을 평가하며 그의 기재가 독창적이고 신선하다 말한다. 왕한년의 바둑은 오청원이나 섭위평 등도 왕한년이 '버림돌을 활용한 새로운  바둑을 둔 시발자'라 발언하여 서성우의 의견에 동조한다.

서성우가 활동하던 시대 일본에는 도세끼(道悅)와 야스이산지(安井算知) 등이 활약하던 시대다. 한마디로 동양바둑의 백화쟁명이 열린 시대인 것이다. 그에 비해 아쉽게도 조선은  한가했다. 명나라의 항복과 청나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성리학에만 몰두하던 조선 주류 풍토 때문일까. 필자는 서성우 황룡사의 등장을 중국을 지배하며 배타적이고 보수적인 유학 근본주의인 성리학을 인정하면서도 물질의 가치와 실용을 주창하는 사회기풍을 불어넣은 청나라의 문화정책 덕으로 본다.

백년쯤 후 조선에 김종귀 김한흥 정운창 등의 바둑고수들의 에피소드가 만들어진 것도 물질의 가치와 실용을 중시하는 사회기풍이 조성된 덕에 가능했던 것이다. (다음편, 출가를 한 중국 황제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