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금북정맥의 한 산골 장마당이다. 나는 마을의 뒷산인 갑산의 정기로 잉태하여 마을의 옆구리를 끼고 흐르는 양의 창자 같은 구곡지천의 포외(怖畏)로 세상에 나온 산의 입김이자 지천의 사생아다. 마을이름은 답밥골. 인근 30리에 유일한 시장인 탓에 장날은 흥청거렸고 포만했다.

장마당엔 명물이 한 명 있었다. 땅꾼 강씨로 불리던 40줄의 사내는 갑산 어느 계곡에 살면서 산과 지천을 타고 다니며 한 장 동안 잡은 온갖 산과 물의 미물들을 채취해 팔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는 신묘한 물손으로 온갖 종류의 뱀과 자라 청거북 가물치 동자개 등을 한 자루씩 잡아와 장마당에 풀어 놓았다.

나는 그에게서 뱀에 대한 식견[?]을 넓혔다. 물가 저습지엔 살모사가 살며 산의 중턱엔 쇠살모사가 새끼를 낳고 깊은 산속에는 살모사 중의 살모사인 칠점사가 산다는 식물도감(?)을 실물로 학습했다. 강씨는 잡아온 것들을 모두 팔면 장기판을 내놓고 박포를 하다 그것도 재미가 없으면 판을 뒤집어 19로 바둑판을 펼쳐 놓고 바둑알로 여러가지 문제를 내며 사람들과  막걸리 내기를 했다. 나는 그때 오목을 배웠고 단수와 축으로 먹는 사활을 배웠다.

"상대의 돌을 잡아 먹을 때는 '아다리' 하고 말해주고 먹는 거야. 그게 바둑의 예의지."

엉성하기 짝이 없는 바둑선생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산에서 새벽을 밟고 와 어둠이 깔리는 저녁에 비틀비틀 술취한 걸음으로 산으로 돌아갔다.

나는 그의 거처를 궁금해 했으나 마을 사람들이나 내 부모님도 시원하게 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산속 어디에서 산다는 말인가. 어디에 살기에 어둠 속에서 와  어둠 속으로 가는 것일까. 끝내 나의 궁금함은 산으로 그의 거처를 찾아갔다가 온 마을 사람들의 수색으로 귀가하는 일도 있었을 정도였다.

강씨에 대한 나의 궁금함은 어느 여름 절정에 다다른다. 엄청난 홍수가 진 여름이었다. 지천을 무너트리기라도 하려는 듯 황토물이 산골마을을 쓸어내려 세간이며 집돼지 등이 떠밀려 내려오는 어느날이었다. 동리사람들 틈에 끼어 다리 위로 물 구경을 갔던 나는 실로 놀라운 장면을 보게 된다.

"강씨다. 저기 강씨야......"

사람들의 손가락 끝에 정말로 강씨가 황토물 속에서 무엇인가 퍼덕거리는 것을 틀어쥐고 떠내려오다가 유속이 느려지는 다리 밑에서 물가로 나와 사람들 앞으로 걸어나오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백사만큼이나 귀하다는 '흑질백장'이 산 채로 들려 있었다. 거대 구렁이를 쫓아 저 죽음의 여정을 헤쳐온 것이었다.

나는 그를 차라리 갑산의 신령이라 생각했다. 그는 물속 귀신이며 산속 신령이었다. 내 마음의 신령은 내가 부모를 따라 대처로 이사를 하면서 끝이 났다. 아주 먼 훗날 그가 지천 계곡에서 시체로 발견되었다는 말을 풍문으로 전해들었을 뿐이었다. 나의 지난 시간과 강씨의 시간에는 어떤 간격이 있었던 것일까.

지금 나는 고향 근처의 어떤 산속에 산다. 가끔 이미 고향의 산이 되신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그곳을 찿아 그 시절의 기억을 추억한다. 얼마전에 아버님의 기일이어서 산소를 찾았다가 지천의 어름판 위를 걸었다. 그 시절 물속엔 다슬기며 피라미며 갈겨니 등이 참으로 많았지.

나는 얼음 위에서 하얗고 아름다운 눈의 갑산을 보며 강씨를 떠올렸다. 땅꾼 강씨가 산위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듯했다. 그리고 말하는 것 같았다.

'왔니. 살아보니 좋던. 아다리에 몰리고 아다리를 쳐보니 살만하대... '

산에서 와 산으로 간 사람, 어둠 속에서 와 어둠 속으로 간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일까. 물에서 와 물로 간 사람을 궁금해 할 일이 아니다. 온 곳이 있기에 돌아갈 곳도 있는것, 어설펐던 나의 바둑선생이 그립다. 그리고 신년의 벽두에 바둑을 배우는 지난날의 어린 나를 본다.



아이들이 희망이다

바둑은 사양문화라 한다. 진입은 없고 은퇴만 있는 역피라미드 산업구조가 바둑이라고 말한다. 미래가 없다고 한다. 희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희망 없고 미래가 없는 세계에도 한줄기 뿌리를 가꾸고 보듬는 사람들과 그 토양에서 파릇파릇 새싹을 피우는 미래가 있다.  

한겨울 추운 날씨와 세상을 하얗게 덮은 눈이 산사의 아침을 깨우는 시간에 바둑판 앞에 앉아 열심히 묘수풀이를 하는 아이들이 있다. 아이들은 인천과 서산의 바둑교실 아이들이다. 겨울방학을 맞아 서광사 바둑템플스테이를 찾은 아이들의 열기는 뜨겁다.

인천과 서산. 거리는 멀어도 아이들은 금방 한동아리가 되어 즐겁기만 하다. 기공체조, 탁본체험, 발우공양체험 등 생소하기만 하지만 아이들은 흥미를 갖고 적응하며 바둑강의와 자체리그전에 온힘을 다한다. 잘 어울리다가도 투닥거리며 싸우고 우는 모습까지도 귀엽다. 20여 명의 아이들이의 2박3일을 지켜보며 즐겁고 행복했다.

"누가 희망이 없다고 합니까? 누가 바둑을 불황사업이라 합니까? 미친 듯 해보셨나요? 온힘을 다해 미친 듯 해보고 나서 불황이라 말한다면 그 말을 고려해 보겠습니다."

      (서산 유창혁도장 원장 최기남)


아이들을 인솔해 온 서산 유창혁바둑도장의 최기남(56) 원장의 말이다. 20년째 작은 소도시에서 바둑교실을 운영하며 네 명의 아들딸을 모두 훌룡하게 키워낸 최원장의 바둑교실에는 지금도 70명의 원생이 있다. 바둑교실 운영 외에도 세 곳의 방과후 학교를 뛰며 하루가 삼일이라도 모자랄 정도라 말한다. 충남바둑협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가는 행정도 그의 몫이다.

서산은 바닷가의 작은 도시다. 문화수준도 학부모들의 학업열도 결코 타도시보다 높다고 할 수 없다. 다만 바둑을 대하는 최기남 원장이란 상표의 성실성이 지역을 감동시킨 그것일 것이다.

인천에서 소수정예 도장을 지향하는 박상룡 원장과 함께 온 아이들은 기력과 도전정신이 놀랍다. 박원장 밑에는 나약한 아이들은 없는 듯하다. 두 바둑교실 아이들을 보며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이틀이었다. 서광사 바둑템플스테이는 조계종의 "불교문화사업단" 에서 정보공개를 요구할 정도로 특화된 사업으로 주목받는 듯했다. 전국의 1백여 개 템플스테이 사찰에서 바둑이라는 독보적인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일 터이다. 

여러 사찰에서 한번 벤치마킹 하겠다는 것이다. 템플스테를 3회차 하면서 불교계의 주목을 받는 문화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는 거다. 일이 이곳까지 오는데 사이버오로의 지원이 컸다. 근거자료의 제공과 언론사 홍보에 도움을 준 지원 등이 그렇다. 잘하면 한두 곳 큰절에서 서광사를 벤치마킹 하는 일도 가능하다고  본다.  모든 걸 떠나서 바둑인들이라면 한번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본다.

기공체험을 하는 아이들


내가 먹은 식기는 내가 치운다를 실천하는 아이들


밥은 한톨도 남기면 안되지 ^^;;  인천에서 온 소녀 지다인(9세)


기공체조 중인 소년


본격 바둑 강의학습. 강사 박성균 7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