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
1부. 전영선을 찾아가다
2부. 강호전류(江湖田流)
3부. 바둑을 넘어 저쪽
4부. 눈물의 사부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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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전영선을 찾아가다
나의 절에서 잠이 드시면
눈이 내리지요.
사랑이 오지요.
(余寺宿眠 雪來 精來)
돌아보니 햇수로 4년여를 본 칼럼을 써 왔다. 바둑담을 공부하는 과정에서 얻어진 파편들을 1차 정리하는 작업으로 필자에게는 유용했으나 회원들에게는 지루하고 난해한 고통을 드린 듯해 송구하다. 칼럼의 대미를 준비하는 단계에 한 출판사와 책으로 묶는 계약을 했다. 책으로 출간이 되어도 회원님들의 아낌없는 관심을 부탁 드린다.
필자는 '사화기략(史話碁略)'이라 제목을 단 책의 원료가 된 본 칼럼을 쓰면서 항상 이 한수(這一著)를 궁리했다. 이 한수라는 말은 허당록(虛堂錄)에 나오는 말로 불가 화두의 '말후의 견고한 관문' 중의 하나다.
두 대국자가 흑과 백으로 돌을 가려 대국에 임하면서 첫수를 궁리하고 끝내는 한판의 바둑. 그 한판의 바둑을 끝내려는 마지막 한수를 고민하는 방편으로 '화두(話頭)를 깨고 나오라'는 은산철벽 앞에 필자는 언제나 춥고 어설펐다.
'백화산'가는 길도 그랬다.
무척이나 추운 날이었다. 내려가는 기온은 차의 시동에 시건(?)을 걸어 한참을 애를 먹을 정도였다. 백화산(白華山)은 태안(泰安)에 있는 그리 높지 않은 산이다. 그러나 온통 암산으로 되어 있어 사철 많은 등산객들이 찾는 산이다.
백화산에는 '마애삼존불'이 있고 부근에 석국(돌바둑판)이 있어 더욱 유명한 산이다. 마애삼존불은 백제시대의 유물로 서산마애삼존불보다 고증연대가 높아 국보( 307호)로 지정된 문화재다. 석국은 삼존불이 내려다 보이는 곳에 만들어져 있었다. '태안향토사료'는 1920년대 초 근동인 김씨가 만들었다는 기록이 전한다.
(백화산 돌바둑판)
백화산을 찾은 날은 눈이 많이 와 석국은 눈속에 숨겨져 있었다. 필자는 초행길이어서 등산객(태안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석국을 찾아 눈을 헤치고 친견(?)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눈속에서 백년전의 돌바둑판이 무언의 악수를 청하는 듯했다.
필자가 백화산을 찾은 이유는 석국 아래에 자리잡은 태일암(太一庵) 때문이다. 태일암은 단군을 모셨던 '태을전' 자리에 근대에 세운 사찰이다. 대웅전과 종무소 요사채 등이 백화산과 잘 어울려 공부를 하거나 심신의 수양을 위해서는 안성맞춤인 듯싶다. 절에서 내려다 보이는 서해바다의 풍광은 그림이 따로 없다.
이 태일암의 주지 스님인 '흥법'스님이 고 '전영선' 사범의 유품인 바둑판을 소장하고 있었다. 흥법스님은 서광사 도신스님과 오랜 세월을 함께 수행해온 도반으로 형제 같은 인연을 맺어온 분이었다.
"서울에 살 때 제가 이동이 심해 전사범님의 유품인 바둑판을 맡겼습니다. 제가 부침이 조금 있었습니다."
바둑두고 노래하고 그림 그리며 금기서화에 능했던 도신스님의 말이 수긍이 간다. 도신스님이 88년 전영선 사범과 인연을 맺어 수천 판 바둑을 둔 에피소드는 너무도 유명하기에 생략한다.
"친구가 잘 지켜 줘야 돼. 나의 가장 소중한 물건이지만 지금부터는 친구 거야. 그래서 이제껏 제가 보관하고 있지요."
도신스님의 말에 흥법스님이 설명을 한다. 이심전심이 따로 없다. 바둑판은 대여섯 겹의 종이와 보자기에 싸여 보관되어 있었다.
한겹 보자기를 풀고 겹겹의 종이를 가위로 잘라내자 그 속에서 붉은색의 형용한 19로의 괘선이 선명한 바둑판이 나왔다.
(전영선사범의 유품인 바둑판)
"아....!"
필자는 공개되는 바둑판에서 괴기스런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오랫동안 봉인되었던 금등(金謄)을 여는 느낌이었다.
바둑판은 온통 붉은 색감이었다. 필자는 바둑판 앞에서 전율을 느꼈다. 역사는 만들어지는 것이고, 때로는 생산되는 것이기도 하다지만, 필자는 바둑판 앞을 한참이나 떠나지 못했다.
말년의 한 순간을 절집에서 보냈던 전영선 사범의 유품인 바둑판을, 그가 떠난 지 10여년 만에 충청도 서해안의 한 암자에서 대면한다는 것은 사건(?)이었다.
바둑판은 이상하게도 선홍색으로 붉었다.
바둑판에 세상에서 홀로 춥던 기객 전류(田流)의 전설이 묻어 있는 탓일까. 아니면 아직도 못다한 풍운의 기객(碁客)의 한이 서려 있는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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靈山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