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바둑판 위의 시간
|
|
|
|
|
바둑판 위에서 시간을 보라.
강이천(姜彛天, ?-1801)은 그의 문집에 윤덕희(尹德熙)가 바둑판의 명장이라 했다. 윤덕희는 자를 대지 않고도 바둑판의 줄치기를 거뜬히 했다는 것이다. 윤덕희는 당대의 화가로 세필화에 능해 바둑판의 줄치기에 장점이 있었을 듯하다.
바둑판 만들기에서 줄치기는 화룡정점이다. 강호시대 막부(幕府) 최고의 기반사(碁盤師)로 손꼽히던 후쿠이 간베에(福井勘兵衛)는 줄치기 작업을 할 때 아무리 추운 겨울이라 해도 알몸으로 작업에 임한 것으로 유명하다. 옺줄을 치는 과정에 혹시 의복에 묻은 먼지가 떨어질까 두렵고 그런 사소한 감정이 집중력을 해칠까 염려한 탓이라 하니 바둑판 장인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
필자는 좋은 바둑판은 비자나무반이고 알은 경아(고래뼈)가 으뜸이다 하는 말은 존중은 하면서도 그다지 신용은 하지 않는다. 1억원을 호가하는 경매장에 나온 바둑판을 보고는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었다. 도무지 1억원을 호가하는 바둑판이 세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조선시대 홍직필선생 간찰, 홍선생은 친구에게서 바둑판과 바둑알을 선물받고 기쁜 마음을 내어 기반명을 적기도 했다)
필자는 1억원 가치가 있다는 천년목으로 만든 바둑판보다는 시골장판을 대를 이어 지키며 아버지와 아들이 두어온 접이식 바둑판에 더욱 마음이 끌린다. 세상의 물건은 시간과 역사가 묻어나야만 가치가 있다고 믿는 허튼(?) 믿음 때문일 터이다.
얼마전 회목(檜木) 바둑판을 보았다. 적당한 두께에 시간의 손때가 은근한 기품으로 오동나무 덮개까지 있는 작품이었다. 회목은 편백(扁柏)나무로 일본에서는 히노끼라 부른다. 한국에서 일본으로 건너가 그곳의 토종 수종이 되었다고 백과사전은 적고 있다.
'비자'판도 있었다. 일곱 치 바둑판이었다. 세상이 명반이라 말하는 바로 그 바둑판이었다. 그러나 필자의 눈은 회목반에 머물렀다. 백년이 넘어 보이는 역사 때문이었다. 바둑판 위에서 지나간 시간이 아득했다. 만들어진 지 얼마되지 않은 비자판이 도무지 넘볼 수 없는 무형의 '가치' 리라.
적당한 두께의 배꼽에 향혈(向穴)과 잘 조각된 네개의 다리는 가히 예술적이다. 바둑판 위에 착점하는 돌의 손맛도 일품이다. 바둑판과 덮개에는 횡구(橫溝)라 서명이 되어 있다.
'마쯔모도'
바둑을 좋아 했던 마쯔모도 세이초(橫溝正史, 1902-1981))가 떠오른다. 바둑판 살인이란 유명한 소설을 쓴 작가다. 이 바둑판이 온 곳이 일본이기에 해 본 생각이다. 하지만 바둑판의 최초 주인을 찾는 실마리는 중요하다.
좋은 바둑판에 기명(碁銘)이 없다면 그도 예의가 아니다. 하여 필자가 기명을 적어 주었다. 새해가 밝는다. 어둠이 가면 다음은 여명의 차례다. 그리 아침이 오고 새해도 온다. 바둑판 위에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 이 바둑판 평평하고 이 바둑판 선 곧고 바르니 좋도다. 이 바둑판 천명을 얻어 세상에 나왔다가 길을 잃고 해외로 떠돌다가 오늘 한국의 '국수'를 만나 다시 태어 났음을 새긴다.
(平爾基直其行 善裁也 碁盤得天命 六甲出現而悼忘 海外流浪 方今逢 韓國 國手均 再誕生 銘以識其意.李靑)
|
|
|
|
|
|
|
|
|
|
|
|
|
|
|
| ┃꼬릿글 쓰기 |
|
|
편지 검은 건 글자 횐건 종이 ㅠㅠ
 靈山靈 |
가로세로로 엉망으로 쓴 이유는 ? 새해 복 많이 받으셔유 들
|
|
|
 AKARI |
｜ 2011-01-04 오전 11:50:15 [동감0] 
|
|
이 의견에 한마디 |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이청선생님도 새해 복 많이 받으셔요...
꾸벅...
|
|
읽을 때 마다 많은 것을 배웁니다. 화룡점정이든 화룡정점이든..
새해에도 건강하세여...
|
|
|
향나무 바둑판이 하나 있는데 향기도 좋고 쓸만 합니다.
|
|
|
|
|
|
.gif){kind=logo}
靈山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