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끝난 삼성화재배 대국에서 삼패빅이 나와 재대결을 벌이는 사건(?)이 있었다. 통합예선 3회전 이원도 3단과 린수양 3단(中)의 대국에서 3패빅이 출현한 것이다. 대국은 무승부처리되고 곧바로 제한시간 1시간의 재대국을 벌여 승부를 가리게 된다. 이날 두판, 무려 8시간의 사투 끝에 한국의 이원도 3단이 이겨 6일 벌어진 예선결승에서 원성진 9단과 만났으나 전날의 피로(?)로 패퇴한다.

삼패빅은 거의 1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희귀한 대국으로 단연 그날의 초점 대국이라 할만하다. 그러나 그 대국은 잡다한 예선전의 한판으로 치부되고 말아 아쉬움이 있었다.

사실 바둑에서 삼패빅은 불길(?)한 조짐(幾微)으로 알려졌다. 한중일의 바둑사에는 바둑의 현상을 들어 조짐을 판단하는 문화가 있었다. 당태종이 '현무의 변'을 일으킨 사건이나, 방간이 방원을 치기 위한 정변의 이유를 '비오는 날 바둑을 둔 인연'에서 찾아낸 것도 그런 인식의 하나다.

과학이 발전하지 못한 시대를 살던 옛사람들은 날마다 당면하는 현실의 불안을 주변의 사소한 것들의 움직임에서 위로받고 경계 받고자 했다. 조짐은 일월의 운동과 별자리의 변동 등 천문에서부터 일상의 사소한 것까지 가리지 않았다. 이것을 아주 잘 인식하고 표현한 사람이 있다. 주세붕(周世鵬, 1495-1554)이다.

작은것에서 큰 의미를 보는 사람은 흥하고,  쉬운일에서 어려움을 잊는 사람은 망한다 (圖大於細者興 忘難於易者亡)

주세붕은 이 글을 쓰며 제목을 이상잠(履霜箴)이라 했다. '이상'은 주역 곤괘의 '서리가 오면 곧 얼음이 언다'는 말이다. 큰 일이 다가오려면 먼저 작은 조짐이 보인다는 말이다. 군자는 바로 이 조짐과 기미를 잘 아는 사람이라 말한다. 조짐은 언제나 작은 걸음을 하기 마련이고 옛사람들은 이것을 중요시 했다.

혼노지(本能寺)의 변(變)이 이런 경우다.

전국시대의 강자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됴쿄로 돌아와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혼노지로 바둑의 고수 닛카이(日海)와 리겐보(林賢坊)를 불러 대국을 시킨 후 감상을 한다. 그날의 대국에서 공교롭게도 '삼패빅'이 나온다. 바둑판은 찜찜한 기분 속에서 작파되고 닛카이와 리겐보는 혼노지를 나와 거처로 돌아온다. 그날 새벽 사건이 일어난다.

오다 노부나가의 무장 중 한명인 '아키치 미쓰히데(明智光秀)'가 일단의 병력을 움직여 주군인 오다 노부나가를 살해해 버린 것이다. 이 사건은 '토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반격으로 진압이 된다. 이 에피소드는 신빙할만한 출처는 없으나 '난가당기화(欄柯堂棋話)' 같은 유력 저작물은 금과옥조로 담아내고 있다.

빅은 '현현기경'에서 면(芇)으로 표현된다. 현현기경은 패의 반복을 금정녹로(金井轆轤)라 하고 면(芇)으로 쓰고 빅으로 읽는다. 우물 속의 물타래박 두개가 끝없이 오르내리는 형세란 의미다. 삼패빅이 흉조로 인식된 것은 확률상 쉽지 않은 일이 이루어진 현상에서 착안한 술사들의 무언(巫言)에서 나온 것이기에 의미 없는 것이지만, 금년 한국바둑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뒤집어 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