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는 누구인가.

일본의 학술원 회원이며 중의원을 지낸 학자  '와다나베 요시미치(渡部義通)'는 논문 '고대위기의 세계'를 통해 바둑이 중국고대철학의 근간인 음양사상의 소산이라 하고 주역과도 관계 있다고 했다. 이 논문이 나온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에도 바둑이 주역의 어떤 점을 반영하고 있고 음양사상과 어떻게 연관이 있는지 등에 대한 검증은 없었다.

검증할 능력이 없거나 관심대상이 아닌 탓이겠지만  바둑과 동떨어진 사람들이 아닌 입장에서 조소(?)를 날리는 사람들은 있다. 그 조소도 한두 페이지의 리포트 형식도 아닌 그저 기자들과 술 한잔 마시는 자리에서 "그런 이론은 하루면 만들 수 있다"든지 "바둑 안에 동양철학 없고 바둑 안에 문화 없다"는 식의 토설로 바둑담론의 싹을 뭉개는 풍토의 존재 말이다.

아무런 상식도 공부도 없이 마니아를 자칭하는 사람들이 있다. 바둑마니아를 자칭하는 필자도 그들 중 한 사람이다.

(이승우'李承雨' 선생)

마니아는 무엇인가를 광적으로 좋아한다고 마니아라 할 수는 없다. 마니아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가치(idea)를 두고 그 가치에 힘을 보태는 사람이 마니아다. 하여 마니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도 탄생하지도 않는다.

무조건 바둑이 좋았다.

이런 점에서 이승우(李承雨 80) 선생은 진정한 바둑마니아다. 선생의 바둑사랑은 참으로 유명한 것이기에 사족을 달 필요는 없겠다. 선생은 팔순의 나이에도 바둑문화의 천착에 쉼없는 저력을 보여준다. 이번에 출간한 '바둑의 역사와 문화'가 그렇다. 선생은 공무원으로 군수, 시장, 도의 기획관리실장, 운수연수원장 등을 거친 경력보다 퇴직 이후의 모습이 돋보인다. 직업인으로 선생의 삶은 단단하지만 퇴직 이후의 20년은 멋지고 아름답다.

(양지현현각 발행 339쪽)

 
'청석기담' '바둑을 사랑한 사람들' '이승우의 바둑이야기' 등을 출간하고 '바둑과 문화'라는 학술지를 창간한 선생의 바둑문화 활동은 백지와 같았던 한국바둑 문화사의 지남(指南)이자 등불이다. 3년전 경주에서 선생을 만나 대전까지 동행을 하고 청주행 버스로 갈아타시는 뒷모습을 본 이후 책 출간을 통해 다시 근황을 듣는다. 그때 선생의 말이 새삼 떠오른다.

'바둑 좋아하는데 이유가 있나."

맞다. 바둑 좋아하는 사람치고 이유를 말하는 사람 못봤다. 이유를 댄다면 그것이 이상한 일일 터이다. 바둑을 좋아하는 사람이 마니아가 되고 그런 마니아 한두 사람의 힘이 바둑을 튼실하고 살찌게 한다. '바둑의 역사와 문화'의 출간은 선생의 그동안의 바둑문화 활동의 결정판이라 하겠다. 많은 자료가 첨부되어 바둑문화 관심자라면 큰 도움이 될 듯하다.

그리고 주목되는 대목이 있다. '현현기경(玄玄碁經)' 1부의 해석이 그것이다. 그동안 국내는 물론 일본 중국도 현현기경의 1부에 해당하는 서지부(序之部)는 정확한 해석본이 없었다. 수법편에 해당하는 세지부(勢之部)의 367제(題)만이 현현기경의 전부인 줄 알던 그동안의 인식을 이번에 선생이 불식시켜 주었다. 현현기경의 서문 사론 위기부 기경 10결 등의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큰 성과다.

또 한가지는 선생은 현현기경의 서지부를 해석하기 위해 주역의 공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주역선생을 모시고 사독(四讀)을 했다고 한다. 과연 공부의 끝은 어디인가.

바둑책이 안 팔린다. 얼마간 명맥을 유지하던 바둑신문은 물론 바둑월간지 등도 죽을 맛인 듯하다. 한국기원도 출판사업을 완전 접은 지 오래다. 이런 때에 바둑책을 출간한 출판사가 있다는 것이 기적(?)이다. '현현각양지'가 그곳이다. 관심을 가져 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