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바둑사에는 조선과 관련된 전설같은 에피소드 두 건이 전해진다. 하나는 본인방 산사(1559-1623)와 조선통신사 이약사(李約史)의 석점 대국이고, 또 하나는 본인방 도사쿠(道策1645-1702)와 조선통신사 이약사(李約史)의 석점 대국에서 넉점까지 치수가 고쳐진 에피소드다. 
약사(約史)라는 호칭은 조금 더 연구가 필요하겠지만 남자의 존칭으로 본다면  산사와 도샤쿠 시대를 관통하는 조선인 이약사의 출현이, 기록의 착오나 오류로 판단할 필요는 없을듯 하다.

도사쿠는 1645년에서 1702년까지 57세를 산 인물로 그 기간에 일본에 간 조선통신사는 을미사행(1655년)과 임술사행(1682년) 두번 있었다. 따라서 도사큐가 조선사람 이약사와 대국을 벌인 것은 1682년에 있었던 임술사행 때의 일로 생각된다.
통신사는 500여 명의 대규모 사절단으로 그 안에는 고위직 삼사를 비롯하여 봉사 역관 선전관 나장 내금위 등 사신단의 행정 보급팀 외에 각 분야의 예능인들이 포함되어 문화외교의 첨병으로 활용된다. 박지원은 '우상전'에서 위의 내용을 증거한다.

-사행단은 조정 문신 중 3품 이하에서 정선하여 뽑고 이에 삼사를 갖추어 보냈다. 관원들과 보좌 막객들은 모두 뛰어난 문장과 박학인데 천문, 지리, 산수, 복식, 점술, 관상, 무예는 물론 취적, 탄헌, 가무에 바둑, 장기, 궁술, 마술 등에 능한 나라 안의 으뜸을 뽑았다.  -우상전.

 (일본 기타가와우타로 1790년 작품 관정오녀도)

도사쿠가 이때 상대한 조선 관원은 이언강(李彦鋼, 1648-1716)으로 추정된다. 이언강은 정사 윤지완(尹趾完) 다음의 부사로 사신단 안에서 중요한 인물로 도사큐보다 네 살 아래다. 필자가 이언강을 주목한 이유는 당시 사행단 명단에서 간추린 10여 명의 이씨(李氏) 중 바둑과 관련한 작은 실마리를 보여준 사람으로 그가 유일한 때문이다. 동시에 당대의 바둑계의 일인자인 도샤큐가 나서 직접 바둑을 둘만한 중요한 인물로 그가 걸맞다고 보았다.

일본바둑사는 도사쿠가 조선바둑을 압도했다 기록하고 있으나 이 기록은 자국중심주의가 깃든 애교(?)다. 오늘날로 보면 '장쉬'가 한국외교부의 아마3-4단 정도의 국장을 넉점 잡아 주었다는, 뭐 그런 에피소드로 프로가 아마를 넉점 잡아 준 것이 전혀 자랑거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필자는 사행단에 이언강보다 바둑 기력이 출중한 조선인이 분명 있었다고 본다. 그런데도 정작 바둑을 둔 사람은 사행단의 리더다. 외교의 장에서 이 점도 어느 정도는 이해도 된다.

이 비슷한 시기에 일본은 유구와 바둑대항전을 벌일 정도로 바둑을 국가의 외교에 이용하고 있었다. 유구사료 '역대보안'은 일본과 유구의 바둑외교를 실감 나게 기록하고 있다. 일본은 조선 인조에게 바둑판과 바둑알을 선물하기도 했었다.

이언강은 1678년 문과급제로 등과하여 사헌부 홍문관 등 청요직을 거쳐 도승지, 충청도 관찰사, 병조참판을 역임했고 특히 통신부사, 동지정사로 일본 중국을 왕래하는 등 외교에 강점을 보인 사람으로 바둑시를 한편 남길 정도로 바둑과 거문고 등에 취미가 있었다.

조선사행단의 한 사람과 바둑을 두어 이긴 일본바둑계의 최고수들의 모습과 그들과 바둑을 두는 영광(?)을 누리고도 무덤덤했던 조선 선비들의 모습이 여실하다. 당시 선진문물 수입 창구로 조선을 적극 이용한 일본이 조선을 이길 수 있었던 분야는 바둑이 유일(?)했던 탓일까.  이언강과 당시 통신사행단에 포함되었던 이씨 성을 가진 사람들, 그들이 궁금하다.